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에는 그저 조선의 임금들이 하기고 있었던 잔혹했던 면들을 드러내는 책이려니 하고 생각했었다. 금상의 얼굴에까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에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기에 더욱 삼엄함 무언가가 느껴지는 와중에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잔혹한’ 임금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임금이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던 ‘잔혹했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은 총 4개의 테마로 나뉘어 ‘왕으로 선택된 남자’,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왕으로 태어난 남자’, ‘왕이 되지 못한 남자’ 의 구성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구성 안에는 3~5명의 왕들의 이야기를 담아 놓고 있다.
조선시대의 성군이라 불리며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은 대왕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레 따라붙는 왕 중 한 분이다. 조선의 4대 임금으로 자리했던 그는 사실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으며 그 자리를 차지하는 대에도 인고의 시간들을 넘어 후대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피 바람이 불던 왕자의 난을 지나고 나서야 역사에 기리 남을 성군으로 추앙 되고 있는 그이지만 그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존재하고 있었다.
세종은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이, 어머니 원경왕후의 친정과 자신의 처가인 소헌왕후의 친정까지 몰락시키는 것을 지켜보며 자라왔다. 그런데 자신의 자신 세대에서도 되풀이 된 근친 살해의 비극은 세종에게 말할 수 없는 불행이었을 것이다. 이런 불행한 가정하는 완벽한 군주 세종대왕이 아닌 인간 세종이 짊어진 약점이었다. –본문
임금이라는 조선 최고의 권력자인 그들이 마냥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다기 보다는 그들의 손 안에 쥐어야 하는 권력의 힘만큼이나 따르는 고통들이 어마어마했던 것들을 보면서 과연 왕이라는 자리가 그들에게는 행복했을까, 라는 생각들도 들게 된다.
특히나 시대에 편승하지 못했던 왕들은 내세에 그들이 했던 행태들마저도 모두 좋지 못한 쪽으로 전해지는 것이 안타깝다, 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광해군’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책 안의 ‘미완으로 사라진 성군의 영혼, 광해군’을 가장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연산군과 마찬가지로 광해군에 대해서도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제작되었는데 작년엔가 보았던 <광해, 왕이 된 남자> 속의 광해군은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광해군의 모습이 아니었다. 적자도 아니었지만 임금에게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노력을 하면 할수록 되려 미움을 받기만 했던 외로웠던 왕이 그가 아닐까, 라는 생각들을 해보았는데 모든 면에서 우수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는 왕위의 후보인 다른 이들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기에 형제뿐만 아니라 주변의 종친들에게까지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던 그는 늘 외로웠을 것만 같다.
결국 광해군의 노력은 통했다. 적진의 한가운데서 고통을 함께하며 이겨내고자 격려하는 젊은 세자의 모습은 왕실이, 조정이, 그리고 조선이 아직 건재함을 상징했다. 조선 역사상 이토록 험난한 시기에 세자가 된 사람도 없었고, 백성와 이토록 가까웠던 세자도 아무도 없었다. 노숙조차 마다하지 않고 가장 험하고 가장 낮은 곳을 찾는 광해군을 보며 병사들과 백성들은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찾았다. –본문
당시 선조의 재위 기간이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자 책봉이 미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신하들은 선조에게 세자 책봉을 서두르라는 요청을 드리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왕을 위한 충언이라기 보다는 그들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어떻게 해야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내세가 정해질지에 따라 머리를 쓰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권력의 참 모습은 이런 것인가, 회의감도 들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 터진 임진왜란 속에서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하여 전쟁을 회피하려던 아버지 선조와는 달리 전쟁 속의 분조를 이끌어 백성들과 함께 하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가 이런 왕이 진정한 왕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후대의 우리가 보기에는 그의 선택들이 옳은 것일 수 있었으나 당시 성리학이 지배하고 있던 조선의 시대에서는 실리주의 외교가 아닌 사대주의를 종용하고 있었고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던 광해군은 더 이상 신하들에게 필요치 않는 왕으로 전락해버린다. 비변사를 통해서 그토록 당부했던 실리주의의 원칙은 제 멋대로의 행보로 전락하며 결국은 반정까지 도모하게 되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과연 광해군이 ‘군’이라는 호칭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자아냈다.
조선의 폭군이었던 연산군은 너무도 평안했던, 모든 것을 가진 자였지만 그 평온함이 오히려 연산군을 잠식해가는 것을 보면서 역사라는 것이 그저 하나의 톱니바퀴만이 열심히 돌아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연산군이 여색을 밝히는 임금이라 전국의 기생과 미녀 수백 명을 강제 징발했다는 기록은 연산군이 폐위된 후의 편파적인 기록이다. 만약 연산군이 제안대군이나 월산대군처럼 왕위에 욕심을 갖는 대신 풍류에 집중하는 일을 사명으로 주어졌다면 그는 꽤 괜찮은 종친으로 이름을 남겼을지 모른다. 만약 예술을 즐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았더라면 연산군은 행복한 삶을 살았을도 모른다. –본문
사랑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역사에서도 타이밍, 그러니까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책을 읽는 내내 깨닫게 된다. 피 끓는 20대를 보내며 폭군이 되었던 연산군에게 정치를 혐오하게 하지 않을 시간들이 있었더라면 그의 역사도 달라 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안으며 책을 읽어내려 간다.
이미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으나 동일한 시간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다르게 기록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기에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또 다른 시각에서의 역사를 바라보는 일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