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찰리 채플린의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마도 미즈시마 가를 그저 곁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면 나는 그들이 평범한 하나의 가족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나의 삶은 고단함과 아픔으로 가득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에는 어찌 그리 따스한 햇살만이 가득한지, 그러한 모습들을 보노라면 초라해지는 나의 삶이 서글프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동경하는 누군가의 삶에도 고개를 내밀어 들여다보면 그 나름의 문제들이 파리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고로 찰리 채플린의 이야기처럼 누구라도 그들의 삶을 살아보지 않는 이상 그 삶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즈시마 가를 마주하기 전에 <별을 담은 배>라는 제목에서 이 책의 이야기가 참으로 유려한 이야기들만이 담긴 것이라 내심 기대했었다. 실상 그 안에는 그들 각자의 아픔이 담긴 별들, 그러니까 가족 구성원들 나름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고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각자의 별이 되어 빛나고 있던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줄기로 모아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별은 담은 배>라는 제목은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벗어날 수 없는 구성원들의 하나하나를 집중하여 조명하고 있었고 그렇게 각자의 군도가 다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지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울 줄은 몰랐어.” 항아리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살짝살짝 만져본다. “하지만 정말 잔인한 의식이다.” 사에가 말했다. “죽은 사람의 뼈를 가족이 주워야 하다니.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단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아키라가 그렇게 대꾸하자, 둘은 꼭 닮은 얼굴을 들었다. “뼈까지 줍고 나면 단념하지 않을 수 없잖아.” –본문
이 가족의 이야기를 하려면 어디서부터 꺼내야 하는 것일까. 시즈코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게유키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병이 되어 이름 모들 이들을 향해 총칼을 휘둘러야만 했던 그 시간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있기는 하나 뿔뿔이 제각기 흩어져서 살고 있었던 이들은 시즈코의 죽음을 통해서 다시 한 자리로 모이게 된다.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있던 사에는 아키라를 통해서 그 아픔을 치유 받게 된다. 아키라는 자신의 어머니였던 하루요의 죽음 이후 가정부로 들어온 시즈코의 딸인 사에는 그저 그녀의 딸로만 알고 있었고 그것은 사에가 바라본 아키라 역시 그저 주인집의 아들로만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드러난 현실은 이복 남매였으며 이 사건의 발단은 아키라를 떠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시게유키와 시즈코의 자식이라 믿었던 미키는 아키라가 떠나는 순간 사에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고 시게유키와 시즈코를 연결하기 위한 유일한 존재라 믿었던 자신의 자리가 유일하지 않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현재 비뚤어진 만남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집안의 가장인 미쓰구는 중년의 나이이지만 무엇 하나 안정되었다기 보다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자신의 딸이나 마찬가지인 마나미와의 불륜이 자행되고 있었고 미쓰구의 딸인 사토미는 그녀 나름대로 자신이 가고 싶은 길과 부모님이 원하는 길 사이에서의 거리감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고 이러한 문제는 그녀의 학교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시게유키는 그의 마지막 세대인 사토미를 위안하면서 그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게 되는데 끝과 처음이 연결되는 이 장면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요한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다.
고향 말을 한 죄,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쓴 죄, 자신은 개가 아니라고 외친 죄. 그런 죄로 미주가 죽임을 당한 것이 바로 엊그제 일 같기만 한데. 그녀가 죽은 후 시게유키는 오래도록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했다. 그녀가 무심결에 ‘아이고’란 말을 내뱉었을 때 가차 없이 혼을 냈어야 했다. 진짜 이름도 묻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과 있을 때만이란 어중간한 동정을 한 것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그녀가 애써 잠재우려 했던 것을 들쑤셔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본문
참혹했던 전쟁은 한 소년을 괴물로 변모시켰다. 어린 시절 전쟁에 참전해야만 했던 시게유키는 그 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동물이며 자신이 살기 위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잔혹한 살인 병기가 되어야만 했던 그 곳에서 그는 야에코, 그러니까 일본인 위안부로 끌려온 강미주를 마주하게 된다. 시게유키와 야에코가 그들의 바람대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주변의 환경들과는 무관하게 그들이 이뤄졌더라면 이 가문의 역사는 달라 졌을까. 나와는 상관 없는 일본의 어느 한 가정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그 이야기 속에 우리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기에 쉬이 넘어갈 수가 없게 된다.
각 개인들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가 하나의 배로 모이면서 전해지는 깊은 이야기들은 한 가족을 넘어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행복이라 말할 수 없는 행복도 있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며 산다는 것이 모두 이러한 느낌일까, 라는 자문을 해본다. 특히나 일본인 위안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 하고 있는 그들에게도 세상을 왜곡하지 않고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마주했기에 먹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위안을 받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