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모든 기록은 새로이 기록했다는 영화 <명량>을 보고 나서야 그 당시의 명량 해전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이었는지에 대한 실감을 하게 되었다. 물론 역사 교과서나 소설 등을 통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오기는 했지만 실제 스크린을 통해서 그날의 명량 해전을 마주한 느낌은 뭐랄까. 그저 숫자 혹은 활자로만 알고 있었던 것들을 눈 앞에서 바라보며 실제 그 날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그 순간, 소름 끼칠 만큼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은 물론 이미 그 결말을 알고 있지만은 심장이 두근거려 보는 내내 가슴을 조리며 함께하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관을 나와 일상을 보내는 틈틈이 이순신장군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지금 우리는 이 모습 그대로 지내고 있었을까, 라는 질문들이 떠오르며 몇 번이고 도리질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고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시급한 것들이기에 어제를 돌아보는 일은 늘 ‘나중에’라는 핑계로 미뤄두기 마련이었다. 아마도 영화 ‘명량’이 아니었더라면 이순신 장군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역사에 대해서 찾아봐야겠다는 시도조차 계속 내일로 미뤄 두고만 있었을 것이다.
일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본적이 있었는데 23전23승을 거둔 그의 전략은 우리나라보다도 해외에서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외국에서는 이순신 장국의 전략들을 배우는 과목도 개설이 되었다는 것을 보았었는데, 우리는 잊고 있는 그날의 기록들을 우리보다도 외국에서 더욱 관심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경종을 울리게 한다. 이미 지나온 그날들은 역사라는 이름 안에 묻어 두는 것이 아닌 그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도 나는 이 책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조정우 작가의 <이순신 불멸의 신화>는 거북선 건조가 완료된 시점에서부터 이순신 장군이 타계한 노량해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한 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순신 장군의 백성들을 지키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은 물론 전투에 있어서 냉철한 그의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
“철갑을 씌운 저 육중한 거북선이 제대로 앞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소.” 이억기가 남공심의 말에 동의하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거북선은 바다 가운데로 나가자 마치 나는 듯이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질주했다. 수만의 군중들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은 거북선의 속도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남공심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본문
이순신 장군하면 거북선이 떠오르는 후대의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당시 거북선이 건조 되었을 당시만 해도 이 거북선은 생소한 외관은 물론 이전에는 시도해 본 적 없는 것이었기에 외려 근심어린 것이 아닐 수 없었나 보다. 그 안에 들어가는 원료의 수급은 물론 과연 이것이 전장에서 어떠한 활용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우려가 피어나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 위엄은 곧 존재만으로도 힘을 주는 것은 물론 왜구에 있어서는 두려움에 떨게 했으니 거북선의 탄생과 함께 시작하는 이 소설의 등장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하기만 하다. 허나 이순신 장군인 이 거북선을 개발한 것으로 멈추지 않고 비격진천뢰, 신기전 등의 무기는 물론, 전투를 위한 계책들을 계속해서 펼쳐내고 있었으며 그 순간순간의 변화들을 쫓아가며 따라가는 동안 숨죽이며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조선시대의 모습을 보노라면 답답하기 그지 없는 순간들에 이미 지나온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한탄만이 흘러나온다. 왜군이 쳐들어오는 그 긴박한 순간 속에서 조정의 명을 받지 않았기에 출병을 해야 하는지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라던가, 요시라라는 인물이 귀순이라는 명분으로 이중간첩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조차 그 한 인물의 이야기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들썩이는 것은 물론 당시의 선조가 조선이라는 나라의 왕으로서 행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그 당시의 정국이 얼마나 풍전등화와 같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답답하다 못해 참담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은 옥포해전부터 거북선이 출격하기 시작한 사천해전과, 배를 한 바퀴 회전시키는 기술을 보여줬던 당항포해전, 육지에서면 선보였던 학익진이라는 전술을 해상에 처음으로 도입했던 한산대첩 등 끊이질 않는 해전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조선 해군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수군은 일자진을 펼치며 왜군의 진영 앞으로 다가갔다. 200보, 150보, 100보, 80보, 70보…. 조선의 함선이 일자진을 펼치며 점점 다가오자, 도도 다카토라가 다급하게 명을 내렸다. “사격 준비!” 조선의 함선이 조총의 사정거리인 50보까지 다가오면 사격에 나설 참이었다. 승선해 있는 조총수 1000여 명이 조선의 함선을 향해 조총을 겨누는 순간이었다. 60보 거리에서 91척의 조선 함선이 일제히 멈추는 것이 아닌가! 왜병들은 어리둥절했다. 도도 다카토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조선놈들이 조총의 사정거리를 알고 있단 말인가!” –본문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이야기를 이순신 장군의 전투를 보며 다시금 깨닫게 되는데 매 전투마다 긴박했던 그 순간 그가 이끌어내는 전략들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라는 말 이외에 다른 것들을 덧붙일 수가 없게 된다. 긴박하다 못해 한 순간의 판단으로 자신을 포함한 수천의 수군과 그 뒤에 있는 수 만의 백성들의 목숨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매 순간 자신을 넘어선 무수한 기량을 펼쳐 매 전투에서 승리는 거머쥠으로써 조선을 지키는 것은 물론 왜군에게 있어서 그가 있는 동안 조선의 바다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전하고 있다.
이렇게 승승장구 하며 조선을 지키고 있는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를 시기하는 세력들이 드러나게 된다. 전장 속에서 외부의 적을 물리치기도 버거운 시간 속에서 내부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란. 자못 씁쓸하다 못해 안타까움만이 더해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백의 종군을 하게 되고 그의 어머니를 여의는 것과 동시에 이순신 장군이 그토록 지켜왔던 조선의 바다는 다시금 왜군의 손에 의해서 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당시의 이순신 장군이었다면, 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후 겨우 돌아온 것이 이토록 가혹한 결과라면, 아마도 다시는 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누구를 위해 이 전락을 이겨내야 하는 것일까, 라며 모든 것을 놓고 유유히 떠나갔을 텐데 그는 그 순간마저도 원망이 아닌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애초에 선조는 이순신이 이길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그 사실을 무인의 통찰력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이순신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임금을 원망하기보다는 상복을 입은 채 죽을 지 모르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있었다. 이 당시, 부모님의 삼년상을 치르지 못하는 것은 불효였다. 이대로 죽는다면 불효자가 될 것이었다. 이순신은 눈물을 글썽인 채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하늘이시여, 부디 저에게 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어머님의 삼년상을 치르고 죽을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본문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명량해전을 지나 그가 마지막 고요히 잠든 노량해전까지 지나오다 보면 가히 그가 지나왔던 숨가빴던 전투가 가슴 깊이 새겨지게 된다. 23전 23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의 결과도 결과이지만 그가 매 전투 속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은 승전보를 넘어서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해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한 인간이자 조선의 장군이었던 그가 있었기에 조선의 바다는 여전히 우리의 품 안에 있는 것일게다. 이미 지나간 역사로만 묻어두기에는 그의 이야기들이 넘실거리는 이 책을 도저히 가만 둘 수가 없었다. 그래,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역사이거늘. 이제서야 그 모습을 찾아본 나는 그저 송구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가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한참을 지난 지금에서야 그에게 감사함을 전해볼 뿐이다. 단편적인 그의 이름만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이 아련함을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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