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들의 자살에 대한 소식이 하나 둘씩 들려오던 뉴스를 보며 아직 피어날 것이 한창인 아이들이 왜 저런 끔찍한 결말로 도달해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물론 나는 그 학생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이 그저 뉴스에서 처음 마주한 이 사회에 속해 있는 일개 어른 중 하나이지만 그 무수히 많은 어른 중 한 사람으로서 한 생명이 꺼져가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곤 한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인 제너드 피콕의 자살을 예견하는 메시지를 보며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렇게 생을 마감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고 깊단다, 라는 이야기를 읊조리며 그렇게 급하게 책을 읽어내려 갔다.
난 그냥 어른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은 것 뿐이예요. 그게 다예요. 그래서 가장 우울해 보이는 어른이 출근하는 걸 따라가죠. –본문
고등학생 때 꽤나 멀리 학교를 다녔던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일찍 전철을 타고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했다. 이른바 러시아워 시간에 직장인들과 함께 출근을 해야만 했는데 전철에 자리하고 있는 직장인들 중 그 누구도 멀쩡히 눈을 떠서 가는 이들 없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정신 없이 잠든 그들을 보며 직장에 다니는 건 저렇게 힘든 걸까? 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었다.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장만 잡으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실제 마주한 세상은 제너드가 마주한 대로 의문투성이일 수 밖에 없는 어른들의 삶이었다.
18번째 생일을 맞이한 제너드 피콕. 그는 부모님의 사랑도 그렇다고 친구들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외톨이이다. 생일이라는 것만으로도 은근히 기대되는 그날의 시작이 제너드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로부터 획득한 권총으로 예전의 단짝이었던 애셔 빌을 죽이고 자살하려는 계획으로 그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 계획을 하고 잇는 제너드는 다행이도 폭주하는 전차 같은 느낌이 아닌 제발 단 한 명이라도 자신에게 ‘생일 축하해’라는 말을 전해준다면 이 모든 계획을 순순히 포기할 의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누구라도 알아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네 명의 인물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전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존재를 마지막으로 알아주길 바라며 그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제너드의 이런 행동이 당혹스럽게만 다가온다.
한때 유명한 음악가였던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너무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제너드의 어머니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너드는 부모로부터 어떠한 전화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하지만 그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하나 씩 선물을 배달하고 있다.
보가트 영화를 보며 제너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월트 할아버지. 그는 제너드에게 있어 유대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제너드는 영화 속 주인공이 썼을 법한 모자를 선물하게 된다. 또한 제너드에게 유일한 휴식과 같은 시간을 전해주었던 바백에게 할아버지가 남겨준 학자금을 전해주는데 애셔에게 당하고 있을 때 도와준 것은 물론 바이올린 선율로 헝클어진 그의 마음을 다독여 줬기에 제너드는 그에게 이 돈을 전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나름 설렘 가득한 첫사랑이 있었으니 바로 로렌이다. 그녀와의 첫 키스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제너드는 그녀에게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은 십자가를 전한 후 그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선생님과 같았던 실버맨을 찾아가 할아버지가 건네 준 훈장을 전하게 되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그 모습을 보고 그는 규정에 어긋나지만 전화번호를 건네게 된다.
아마도 그건 오직 아이들만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황홀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수백 명의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도박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만, 분명 그들 중 누구도 애셔와 나처럼 황홀한 느낌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마약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스스로 빛나지 않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그런 능력을 잃어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셔는 확실히 그렇게 돼 버렸다. –본문
단 한 명의 손길이라도 있었더라면 제너드 피콕이 이런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영원한 친구가 되기로 했던 애셔가 돌아서 오히려 그에게 적이 되어버린 순간, 제너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그 암담함이 제너드를 이러한 궁지로 몰아넣었으리라. 이 엄청난 계획의 결말도 결말이지만 이와 같은 아이들이 더 이상은 발생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햄릿의 대사를 모두 외우고 그 안의 인물들의 마음을 모두 읽을 줄 알았던 아름다운 아이가 이 세상 속에 계속해서 빛날 수 있도록 이제 어른들이 그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시간이여야만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