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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 내가 무언가 답을 얻길 원했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객관식 문제를 풀 듯 이러한 상황에서의 답은 이것이다, 라는 결론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겨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하긴 했지만 마지막에 얻은 것은 그저 계속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 <제이컵을 위하여>라는 소설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소설은 어찌 보면 이 소설과 대조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살인마인 자신의 아들을 끝까지 변호하다가 결국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때 제이컵의 어머니가 선택했던 모습을 보며 그것이 자신이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계속 되뇌게 했는데 이 <살인자의 딸들>은 살인자를 부모로 둔, 그러니까 살인자의 아이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살아가야 하는 자식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둘의 비슷하지만 상대적인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 비춰보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안락하다거나 혹은 여느 드라마 속의 단란한 가정은 아니지만 메리와 룰루에게도 부모님의 아래 함께하는 집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과거형으로만 그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기억의 조각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고 지금 그 아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살인자의 딸들’이라는 주홍글씨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던 그들의 엄마 셀레스트는 다름아닌 그들의 아빠에 의해 살해 당하게 되는데 그 다급했던 현장에 있던 룰루는 윗집의 티니 아줌마에게 구원 요청을 하러 가는 사이에 이 모든 사건은 발생해 버리게 된다. 게다가 그녀의 동생 메리마저도 가슴에 상처를 얻게 되었으니, 아빠가 오면 ‘절대 문을 열면 안 된다’라는 말을 어긴 대가로 어린 룰루가 받아야 하는 상처와 고통은 너무도 큰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이후 메리는 병원 침대에 홀로 남겨져 있어야 했으며 룰루는 외할머니 댁에 머물게 되지만 그 누구도 이들 자매에 따스한 손길로 보듬어 주는 이들이 없었다. 물론 그 주변 이들도 이 모든 상황이 갑작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의 아끼던 딸을 잃게 된 루비 할머니와 갑작스레 동생을 잃은 실리 이모와 한 순간에 살인자로 감옥에 가게 된 아들을 두게 된 젤다 할머니. 그리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른 채 남겨져 버린 두 아이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감싼 모든 이들을 공황상태로 몰아 넣었으며 그리하여 이 가족은 서로를 마주하지 않은 채 외면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이 자매는 혈혈단신 그 누구의 딸들도 아닌 버려진 아이들마냥 보육원에 남겨져야만 했다.
내가 집에 있었다면 아빠는 나도 해쳤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메리와 엄마를 해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숨지 않았더라면. 아무튼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내가 아빠를 집 안으로 들였으니까. “아빠는 지금 힘들어?” 나는 손끝으로 팔에 ‘그만’이라고 적으며 눈물을 참았다. “무척 힘들어. 지금 구치소에 있어.” (중략) “엄마도 아빠랑 구치소에 있어?” 메리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동생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건 동생을 때리는 것만큼 비열한 짓 같았지만, 동시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엄마는 다쳤어. 아주 심하게. 엄만 죽었어.” –본문
자신이 아니었으면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메리 또한 다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보육원 생활을 하며 매 순간 날카롭게 눈을 치켜 뜨고 있어야 하는 경우도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유약한 메리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평범한 10대를 보냈을 것이다. 모든 비극이 나로서 비롯되었다는 압박감은 룰루를 평생 따라다니고 있었으며 오롯이 혼자 남은 메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또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양가적 감정은 룰루를 평생 따라다니게 된다.
그러면서 언니는 내 상처 자국을 손으로 만졌다. “너 머리가 이상한 거 아니야? 도애체 왜 가는 거야?” ‘할머니가 원하니까.’ ‘아빠에겐 내가 필요하니까.’ ‘내가 가지 않으면 아빠가 어떻게 할 것 같아, 언니?’ 나는 내가 가서 아빠를 기쁘게 해 주지 않으면 상황이 훨씬 더 나빠질까 두렵다는 걸 어떻게 언니한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언니는 그런 일에 관해선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본문
그와 반대로 피해자로 남겨진 메리는 여전히 그날의 아빠를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을 향해 칼을 내리 꽂던 아빠는 대체 무엇을 위해 그날의 일들을 감행한 것일까. 이 모든 것을 당시 너무 어렸던 메리가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메리는 그 순간의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두렵기도 하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메리는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지만 그 어렸던 나이에도 메리는 자신을 끔찍하게 아끼던 아빠를 매주 찾아가지 않으면 언젠가 언니인 룰루가 아빠로부터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빠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자매는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서로를 각자의 방식으로 지키고 있었고 그 방식은 서로에게 이해를 받고 여부를 떠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어막이었던 셈이다.
그녀들의 할머니는 물론 그들의 유일한 이모인 실라는 그 아이들을 마주한 순간 동생인 셀레스트가 떠오른다며 그들이 보육원에 있는 동안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세상에 홀로 내동댕이 쳐진 듯한 이 상황 속에서 룰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메리와 함께 이 곳을 벗어나는 것이었으며 그 유일한 동아줄은 당시 보육원에 봉사를 나오던 코헨 부인을 통해 그들을 그 보육원을 벗어나게 되지만 그것이 그녀들의 상처를 치유해주지 않는다. 단지 가족과 가족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인지하게 하는 나날들로만 변모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과거의 덫에 걸려 있었다. 마흔한 살과 서른 여섯 살인데도 오래전에 끝난 부모의 전쟁에 갇힌 죄수들이었고, 여전히 악몽 같은 기억에 갇혀 있었고, 은밀한 시선을 주고 받았고, 사람들에게 알린 비밀과 숨긴 비밀이 스치듯 지나갔다. –본문
이 소설은 메리와 룰루의 시각을 각각 보여주며 그녀들의 유년시절, 10대, 20대,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헨리 부부의 아래서 비로소 벗어날 꿈을 꾸던 룰루는 의과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이제는 어엿한 두 딸의 엄마이자 가정의 주인공이 된 그녀는 아직까지도 지난 상처에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를 두려움을 안고 있었으며 그 두려움을 인식이라도 하듯, 그녀의 큰딸인 카산드라는 이상 증후를 보이게 된다. 그럼에도 무언가 틀을 갖추어 살고 있는 룰루와는 달리 메리는 여전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때는 마약에 손을 대고 술에 취해 있던 그녀는 현재 자신과 같은 이들을 돕는 치료사로 활동하고 있으나 여전히 유부남 퀸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녀를 유일하게 감싸주려 하는 남자와의 관계는 흐지부지되고 있다. 여전히 언니인 룰루의 곁에 있어야만 자신의 존재가 인정된다 생각하는 그녀 역시도 아직 불완전한 상태였다.
사건은 갑작스레 발생하게 된다. 그녀들이 몇 십 년 동안 꾹꾹 봉해 놓았던 금기된 비밀이 한 순간에, 모든 곳을 통해 발설되게 된다. 결국 그녀들은 어떻게 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살인자의 딸들이라는 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며 그 동안 그녀들이 안고 있었던 문제인, 아버지에 대한 허심탄회 한 마음과 그들을 버렸던 이들에 대한 분노에 대한 문제를 즉시하며 그녀들을 다시 내일을 준비하려 하고 있다.
아빠는 내게서 너무 많은 걸 앗아 갔다. 엄마와 가족을 빼앗아 갔다. 내가 원하던 삶은 상상 속먼 곳에 있었지만 나는 지금 아빠의 집에서 내 눈동자와 똑 같은 아빠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도, 떠날 용기도 없었다. 언젠가는 조카들이 외할아버지를 만나려 할 것이고 아이들을 데려간다 해도 언니의 마음속엔 분노가 응어리져 있을 것이었다. (중략)
엄마 유품을 모두 집으로 가져오겠다고 말했어. 너와 날 위해서. 우린 준비가 됐고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본문
이제 드디어 그녀들은 스스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 안에는 살인마의 피가 흐를 것이라는 모든 이들의 시선에 벗어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도,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남편의 성을 따를 수 있는 결혼식 날에 가장 행복한 선물을 받았다며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도 아닌 오롯이 메리와 룰루만이 마지막에 남겨져 있다. 그들의 아버지의 죄는 그녀들이 살아가는 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었지만 이제서야 비로소 그녀들은 그 주홍글씨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래, 확실하게 이제부터 그녀들은 다른 삶을 살 거야, 하는 식의 이야기는 없지만 나에게 그녀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얽히고 설킨 그녀들의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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