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레드 시간을 여행하는 소녀
케르스틴 기어 지음, 문항심 옮김 / 영림카디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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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여행하는 소녀, 그웬돌린 셰퍼드. 유령과 대화가 가능하던 그 소녀는 내 눈에는 비범한 무언가의 능력을 가진 소녀로 느껴졌지만 그녀의 집안에는 그저 한 명의 소녀일 뿐이었다.

 그웬돌린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유전자를 타고 났다는 샬럿의 뒤를 따라 다니며 그녀가 시간 여행의 문턱 앞에서 보이는 증세들 속에 혹여 샬럿이 사라질까봐 분필을 들고 다니며 종종거리고, 그녀의 단짝인 레슬리와 함께 모든 비밀을 공유하는 10대의 발랄함을 가진, 이 소설의 조력자이자 주인공인 샬럿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소설의 화자로서만 그웬돌리를 바라보로 있었다.

 펜싱과 바이올린을 배우고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위해 교양은 물론 비밀 교육을 위해 일정시간만 되면 사라져버리는 샬럿은 그야말로 준비된 시간 여행자였으며 샬럿 역시도 자신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첫 번째 시간 여행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운명을 뒤집을 폭풍과 같은 해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 꼬여버린 시간의 매듭은 그웬돌린과 샬럿에게 준비되지 않은, 아니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미래로의 초대장이 전달되었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그웬돌린과 선택 받은 자의 삶을 준비해온 샬럿은 한 순간에 그들의 위치를 바꿔야만 하는, 체스의 폰과 퀸의 자리가 한 순간에 뒤바뀐 것이다.

너무나도 평범한, 그저 한 여고생이라 생각했던 그웬돌린은 시간 여행자들인 12명의 구성원 중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처음과 끝을 잇는 루비로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녀가 보여주는 시간 여행 속 그녀의 모습은 아직은 어설픈 모습이다. 하루 아침에 평범한 여고생에서 시간 여행자의 구성원으로 중요한 임무를 띄게 되었으니, 그것도 준비되지도 않은 채 꿈과 현실 조차 구분 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온 혼돈의 시간을 겪고 있기에 미숙한 그녀의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책을 펼친 순간에 내가 10대 소녀가 된 것마냥 책 속으로의 시간여행에 갇혀 버린 느낌이다. 왜 이 책을 펼쳐 보았을까. 기디언과 그웬돌린은 달달한 이야기는 어떻게 될 지, 그웬돌린의 외할아버지가 알고 있다는 녹색기사는 무엇인지, 그리고 백작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지. 게다가 루비가 가진 능력은 무엇일지. 끊이지 않는 물음만 남겨두고 그웬돌린은 사라져버렸다. 언제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런지. 시간 여행에 그녀와 함께 나마저 빠져버린 기분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빨리 펼쳐지기만을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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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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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린 중고 서점의 책장 여기저기를 뒤지다 발견한 이 책은, 글쎄 그 어떠한 화려한 표지보다도 제목만으로 끌려서 구입하게 된 책이었다. 짧지만 놀라운 삶이라, 대체 어떠한 삶을 그린 것일까 라는 막연한 호기심과 제목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화려하면서도 멋스러운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에 쉽사리 집어 든 책이었는데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너무 쉽고도 만만하게 보았다는 것을 말이다.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렇다고 현실로 믿기에는 되려 믿고 싶지 않은, 믿기에는 너무 거북스러운 것들이었다. 픽션과 논픽션의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이 소설을 이해하기에는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한 배경 지식이 턱 없이 부족했고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내심 대체 이러한 일들이 지구상에 아직까지 현존할 수 있단 말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으로 현실과 상상의 딜레마에 빠져 꽤나 고된 시간들이었다.

 푸쿠. 그들은 그들이 지나왔던 그 어둠의 터널을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어두운 장막 속에서 마수와 같이 그들의 삶을 짓누르는 그 모든 것들을 저주,  푸쿠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순히 푸쿠라는 두 글자에 담기에 그들이 겪어야만 하고 지내온 삶이 너무도 가혹하다 만은 그들 스스로는 단지 푸쿠일 뿐이야 라는 태도로 그들의 삶을 꿋꿋이 이어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그 곳에서 태어났기에 그들이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생을 이어오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하거나 피할 수 없었기에 이미 내 손에서 해결 할 수 없는 저주로 받아들임으로써 달관한 듯이 그들은 오늘을 살고 있었다.

 원하는 버튼을 누르는 것 마냥 내가 살고 싶은 나의 삶을 고를 수만 있다면야 그 누구든지 역경 없이 평탄한 삶을 고를 것이며 그들 역시 지금이 푸쿠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닌 평이한 인생을 누리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생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푸쿠라는 것이 그들과 떼어낼 수 없는 하나가 되어 버림으로써 이미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만약 그들로 태어났다면 나 역시 이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에 대해 수 차례 반문해보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푸쿠를 그저 한낱 푸쿠로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모두 독재자인 트루히요의 소유가 된다. 그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이것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는 운명인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을 트루히요에게서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이자 아버지인 아벨라르는 나름의 운명을 저항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보았지만 그에게 남겨진 현실은 황망하기만 하다. 사랑의 결실을 원하던 벨리에게 돌아온 것은 사탕 수수밭에서의 끈질기고도 모진 매질이었으며 그 아들마저 벗어날 수 없었던 푸쿠의 되물림은 오스카에게 이어진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암담했던 역사를 되새김질 하며 그 안에서 살았던 그 이야기를 하는 유니오르는 저자를 대변하면서도 철저히 그 시대를 살았던 증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담대하게 고백하고 있다. 너무도 끔찍한 상황에 놓여 있음에서도 그 스스로는 되려 별거 아니야, 라는 식의 어조는 되려 강하게 뇌리에 스치게 된다. 대체 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닐 수 있는 거지? 그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대체 무엇이길래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스카를 처음 만난 그 시점부터 그를 보내야 하는 때까지도 멈출 줄 몰랐다.

한 편의 소설이라기 하기에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물을 마시는 기분이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고는 있지만 마시는 내내 왠지 더 숨이 턱턱 막혀 오는 듯한 느낌이다. 푸쿠를 동반자로 하여 암울했던 시대를 살았던 그들의 삶을 소설로 각색하여 미화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천연 그대로의 빛을 만날 수는 있으나 그 빛이 영롱해 지기까지는 내 나름의 이해를 위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도미니카의 푸쿠. 과연 지금은 사라졌을까? 오스카처럼 그 누군가의 인생은 푸쿠로 인해 멍에를 안고 살지 않기를, 그들의 살아야만 하는 삶이 오스카처럼 굳건히 지키려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푸르게 빛나길 바라며 그들의 푸쿠가 이 소설에서 마지막 등장이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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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연구실 - 우주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상상의 요람 데이바 소벨 컬렉션
데이바 소벨 지음, 장석봉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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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동설과 지동설. 과학 시간에 단 몇 페이지의 분량으로 배웠던 이 교과서 속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되살아났다. 현대의 과학으로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이 옳다는 것이 이미 밝혀진 진리이기에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변모하는 그 역경의 시간에 대한 것보다는 결과론적으로 지동설이 옳다 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그 근거들을 배우는 대만 급급한 시간을 지나왔다. 천동설이 굳건히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수 많은 시간을 비집고 지동설이란 씨앗이 발아하기까지의 그 험난하면서도 격정의 순간들에 참관의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레티쿠스 :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라고 여호수아가 했던 말을요.

코페르니쿠스 : , 물론이지. 누구나가 아는 구절이 아닌가.

레티쿠스 :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

함께 : “태양이 머물렀도다!”

레티쿠스 : 맞습니다. 참사회원님. 태양이 머물렀지요. 그리고 그게 그의 요점입니다. 왜냐하면 참사회원님이 말씀하신대로 태양이 이미 머물러 있다면, 어떻게 여호수아가 태양이 머무르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었겠습니까? –본문

 

나라의 운명이 행성의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던 시대였다. 세계는 흙, , 공기, 불로 이루어졌으며 달이나 다른 천체는 에테르라는 변화하거나 파괴되지 않는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받들고 프톨레마이오스를 존경해 마지않던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을 뒤집어 지구는 우주의 한 조각으로 고정되지 않고 지구가 움직인다는 생각을 품기까지 그 스스로는 엄청난 혼돈의 시간을 보냈을 터이다.

 움직이는 지구에 서 있는 것은 그 혼자만이었다. 모두가 지구를 중심으로 이 세계가 움직이는 것이라 성경을 기반으로 하여 이미 진리로 받아들여져 있는 그 당시에 참사회원인 그가 그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만으로 지구 속의 세계뿐만 아니라 그가 믿고 있던 세계는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지동설이 맞다 라는 것을 오랜 시간의 관찰로 밝혀냈으나 그는 쉬이 그 내용을 세상에 알릴 수 없었다. 교구의 외압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반대론자인 루터파들에게도 이 내용은 그저 한낱 우스개 소리에 불과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천동설을 의심하지 않고 천명이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코페르니쿠스이 밝혀낸 진실은 유포되어 세상에 빛을 바라기엔 그 당시의 세상은 그의 속도에 비해 너무 더디게 돌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코페르니쿠스와 그의 유일한 제자였던 레티쿠스의 만남이 희곡의 대본과 같은 형식으로 쓰여져 있었는데 이 부분은 읽는 내내 그들의 진실을 향한 긴장되면서도 설레이는 현장에 함께 하는 기분이었다.

.레티쿠스 : 모든 별들이 움직였습니다. 별들이 돌고 도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코페르니쿠스 : 아니야, 별들은 움직이지…..

레티쿠스 : 굉장했어요.

코페르니쿠스 : 돈 것은 바로 자네야. 별들이 돈 게 아니지. –본문

 코페르니쿠스를 만나 세상의 이치를 다시금 깨닫고 배우는 그 순간들, 레티쿠스는 그가 그 동안 알고 있던 세상을 변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내가 알아왔던 세계가 실은 허구였다는 것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들을 마주하면서도 그는 마지막까지도 움직이지 않잖습니까!” 움직였다면 바람으로 느끼거나 자신 스스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며 끝까지 항변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수 백 년의 진리를 진리가 진리가 아닌 것으로 밝혀내기까지 코페르니쿠스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의 제자를 이해시키는데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세상 모두를 이해시키기까지 그 몇 갑절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숙고한 동안 창조주가 창조한 세계의 움직임을 철학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기 시작하여 연구를 매진하게 되었다는 그의 담대한 고백은 그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세상에 대한 도전이자 대항이었다. 한 줄의 진리가 자리잡기까지 그가 홀로 버텨온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진정 제대로 돌고 있는 지구 안에 자리잡고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일 게다.   한 문장의 과학이 탄생하기까지 시간을 역행하여 지동설의 산고를 몸소 느끼며 그 동안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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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후
기욤 뮈소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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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의 추천으로 처음 보게 된 기욤 뮈소의 구해줘. 남자이지만 너무나도 섬세하게 남녀의 심리 상태를 그리고 있었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어디에서인가는 정말로 일어나길 바라는, 누군가를 사랑해 봤다면 한 번 즈음은 간절히 바랐던 이야기이기에 책을 펼치자 마자 단 몇 시간 만에 그 속에 푹 빠져 한 권을 재빠르게 섭렵했다.

 ‘7년 후 2012년 그의 신작으로 그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 가슴 설레임으로 마주한 책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끌림이라는 말을 들을 적이 있다. 나와 다르기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기에 상대방이 가진 것들에 대해 매력을 느끼며 그로 인해 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너무 다르기에 그 호기심으로 시작된 호감이 서로에 대한 갈망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그 공식을 담을 책이 바로 그의 ‘7년 후이다.

 도무지 감성 따위엔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세바스찬과 모든 것이 자유분방한 니키는 의도치 않은 순간에, 사랑으로 시작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에 서로의 눈에 띄게 된다. 진정 사랑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인지, 내가 꿈꿔오던 사랑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이미 가슴이 그 상대를 애타게 애원하며 그 둘은 어울리지 않는 색이라는 틀을 깨고 결혼이라는 하나의 찬란한 빛을 드러낸다.

 너무나 각기 다른 색채를 띄고 있었기에 융화가 불가능 했던 것일까? 결혼의 틀 안에서도 각자의 방식을 고집하며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만 바라보던 그 둘은 결국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둘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시작했으나 그 사랑이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변질되어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그들은 더 이상의 생채기를 그만두고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시작은 그 둘이었으나 그들의 결정에는 그들의 아이들까지고 가족이라는 파편의 아픔을 공유해야만 했다.

 서로에게 반했던 끌림의 이유가 그것을 닮아 버린 아이들에게조차 다가갈 수 없게 하는 거리감으로 만들어버린 7년의 시간. 그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아이들이 행한 너무도 단순한 그들의 행복으로의 귀로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역시 그의 작품답게 가독력은 그 어느 책 못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구해줘를 읽었을 때 만큼의 잔잔하면서도 애잔한 느낌보다는 한 편의 액션을 본 듯한 느낌이다. 달콤한 로맨스에 푹 빠져 들고 싶었단 소소한 바람으로 펼쳐본 이야기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는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치열한 냉전이 담겨 있었다.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는 그 공통된 목적과 그것만이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겠지만 내가 기욤뮈소에게 원하던 달달한 한 편의 로맨스보다도 현실적인 문제들이 담겨 있었기에 쉽게 읽을 수 많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사랑이기에 모든 것을 나의 결정으로만 선택하기에는 그로 인해 파생되는 나비효과들이 너무 많았다.

 그저 한 편의 소설로만 존재했으면 하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결말은 또 다시 행복이기는 하나 그 과정이 너무나도 힘든 가시밭 길이었기에 그들의 슬픔은 그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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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영화 - 시간과 공간의 미로
나리만 스카코브 지음, 이시은 옮김 / B612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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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 교양 수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어디에서도 그의 영화를 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만약 기회가 있었다고 한들 그 영화보다는 내가 원하는 다른 영화를 골라봤을 것이다.

노스탤지어는 지금 다시 본다고 해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닐 것이다. 실향민들이 그리워한다는 고향의 의미, 향수병, 이 비슷한 느낌의 단어들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그것들이 주는 실제의 느낌은 그저 가늠으로만 느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영화가 바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영상이 집합이었다.

어렵사리 기회를 얻어 유학을 떠난 주인공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다 못해 결국은 그는 다시 귀국을 택한다. 그래, 여기까지는 이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에게 남겨 있는 것은 다시 노예라는 신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주인공이 택한 선택이 옳은 것일까를 잘 모르겠다. 그 주인공에게 고향이란 어떠한 의미일까 부터 시작해서 타르코프스키는 무엇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에 대한 쏟아지는 질문의 역풍을 피하기 위해 그의 책을 펼쳐 들었다.

노스탤지어라에 대한 해설을 바라고 책을 펼쳤지만 그의 다른 영화들의 이야기들이 가득히 담겨있었다. 무엇보다도 철학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깊이를 그려내는 시간과 공간의 일탈 현상을 그리는 그의 영화 세계가 한 권의 책 안에 압축되어 있었다.

이미 그의 영화를 한 편 본 터이기에 그에 대한 벽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 책 역시 녹록치 않게 페이지 마다 무게가 느껴졌다. 시간에 대해 그가 가진 근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그의 작품에 대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변화과정을 영화라는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영화라고 피력하는 그는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시간의 물질적인 흐름을 필름에 담아 시간 속의 시간을 담는 것이다.

이 책 안에서 노스탤지어를 구체적으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어떠한 생각으로 이러한 영상들을 찍으려 했는지 그가 담고자 하던 세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다시는 만날 기회 조차 없을 그와의 재회가 조금은 무겁지만 그때보다는 후련해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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