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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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린 중고 서점의 책장 여기저기를 뒤지다 발견한 이 책은, 글쎄 그 어떠한 화려한 표지보다도 제목만으로 끌려서 구입하게 된 책이었다. 짧지만 놀라운 삶이라, 대체 어떠한 삶을 그린 것일까 라는 막연한 호기심과 제목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화려하면서도 멋스러운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에 쉽사리 집어 든 책이었는데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너무 쉽고도 만만하게 보았다는 것을 말이다.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렇다고 현실로 믿기에는 되려 믿고 싶지 않은, 믿기에는 너무 거북스러운 것들이었다. 픽션과 논픽션의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이 소설을 이해하기에는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한 배경 지식이 턱 없이 부족했고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내심 대체 이러한 일들이 지구상에 아직까지 현존할 수 있단 말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으로 현실과 상상의 딜레마에 빠져 꽤나 고된 시간들이었다.

 푸쿠. 그들은 그들이 지나왔던 그 어둠의 터널을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어두운 장막 속에서 마수와 같이 그들의 삶을 짓누르는 그 모든 것들을 저주,  푸쿠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순히 푸쿠라는 두 글자에 담기에 그들이 겪어야만 하고 지내온 삶이 너무도 가혹하다 만은 그들 스스로는 단지 푸쿠일 뿐이야 라는 태도로 그들의 삶을 꿋꿋이 이어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그 곳에서 태어났기에 그들이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생을 이어오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하거나 피할 수 없었기에 이미 내 손에서 해결 할 수 없는 저주로 받아들임으로써 달관한 듯이 그들은 오늘을 살고 있었다.

 원하는 버튼을 누르는 것 마냥 내가 살고 싶은 나의 삶을 고를 수만 있다면야 그 누구든지 역경 없이 평탄한 삶을 고를 것이며 그들 역시 지금이 푸쿠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닌 평이한 인생을 누리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생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푸쿠라는 것이 그들과 떼어낼 수 없는 하나가 되어 버림으로써 이미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만약 그들로 태어났다면 나 역시 이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에 대해 수 차례 반문해보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푸쿠를 그저 한낱 푸쿠로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모두 독재자인 트루히요의 소유가 된다. 그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이것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는 운명인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을 트루히요에게서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이자 아버지인 아벨라르는 나름의 운명을 저항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보았지만 그에게 남겨진 현실은 황망하기만 하다. 사랑의 결실을 원하던 벨리에게 돌아온 것은 사탕 수수밭에서의 끈질기고도 모진 매질이었으며 그 아들마저 벗어날 수 없었던 푸쿠의 되물림은 오스카에게 이어진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암담했던 역사를 되새김질 하며 그 안에서 살았던 그 이야기를 하는 유니오르는 저자를 대변하면서도 철저히 그 시대를 살았던 증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담대하게 고백하고 있다. 너무도 끔찍한 상황에 놓여 있음에서도 그 스스로는 되려 별거 아니야, 라는 식의 어조는 되려 강하게 뇌리에 스치게 된다. 대체 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닐 수 있는 거지? 그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대체 무엇이길래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스카를 처음 만난 그 시점부터 그를 보내야 하는 때까지도 멈출 줄 몰랐다.

한 편의 소설이라기 하기에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물을 마시는 기분이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고는 있지만 마시는 내내 왠지 더 숨이 턱턱 막혀 오는 듯한 느낌이다. 푸쿠를 동반자로 하여 암울했던 시대를 살았던 그들의 삶을 소설로 각색하여 미화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천연 그대로의 빛을 만날 수는 있으나 그 빛이 영롱해 지기까지는 내 나름의 이해를 위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도미니카의 푸쿠. 과연 지금은 사라졌을까? 오스카처럼 그 누군가의 인생은 푸쿠로 인해 멍에를 안고 살지 않기를, 그들의 살아야만 하는 삶이 오스카처럼 굳건히 지키려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푸르게 빛나길 바라며 그들의 푸쿠가 이 소설에서 마지막 등장이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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