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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소설 40 -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개정증보판 ㅣ 수능.논술.내신을 위한 필독서
박지원 외 지음, 권정현 엮음 / 리베르 / 2013년 1월
평점 :
문학시간에 고전을 배우게 되는 날이면 깨알 같은 글씨로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던 기억이 난다. 한문으로 쓰여진 것일 작품일 경우에는 그야말로 책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 주석을 달아놓기에 바빴는데 한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안의 단어들을 모두 이해하고 앞, 뒤 문장과의 연관관계를 함께 보아야 했지만 한 단어를 해석하고 나면 그 다음 단어에서 또 막혀버리기에, 암호와도 같은 난제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그 당시에 나는 고전을 배운다라는 것은 학습하다, 라는 의미보다는 암기의 영역으로 받아들였고 시험기간이 지나고 나면 그 동안 나름 공들여 저장해놓았던 기억들이 일회성 휘발유마냥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곤 했다. 누군가 DEL키로 내 머릿속의 데이터를 조작이라도 하듯이 고전은 배우고 배워도 남아있는 것이 없이 매번 새롭기만 하니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졸업을 하고 나서 그 누구도 나에게 고전에 대해 물어보거나 고전을 꼭 알아야만 한다며 학습의 당위성에 대해 주창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수능이라는 입시 관문도 지나왔고 소위 내가 가고자 하는 직업군에는 고전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들이었기에 근 15여년 간은 단 한번도 고전을 찾아 볼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블로그 검색을 하다 박지원의 호질을 보게 되었다. 평소였다면 지나쳤을 법도 한대 그 날 만큼은 그토록 싫어하던 고전이지만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만나게 되니 희한하게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학창시절에 배웠다, 라는 기억과 대략적인 줄거리가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한 번 읽어나 볼까? 라면 읽기 시작했던 화면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소설에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분량은 A4용지로 3~4장 정도였지만 한문 소설이기도 하거니와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단어들을 찾다 보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의무감 혹은 압박감에 그토록 보기 싫어했건만 지금은 오히려 그 고되기만 했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둘 고전 소설을 찾아 읽다 보니 이전과는 달리 그 나름의 재미를 찾아가고는 있으나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혼자서 고전을 이해하기에는 난관에 봉착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한다는 고전소설의 제목으로 출간된 책으로 총 40여 작품이 실려있다. 단순히 작품만을 모아둔 모음집이 아니라 한 작품마다 작품정리, 줄거리, 작품 내에서 생각해 봄직한 문제들이 함께 정리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어려운 단어마다 주석이 친절하게 달려있어서 읽을 때마다 검색을 하며 단어를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덜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단군 신화에서부터 박지원의 허생전까지, 상고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대표할 수 있는 작품들을 한 번에 만나 볼 수 있다니, 어린 시절에 전과가 있으면 그 어떤 문제나 숙제도 두렵지 않았던 것처럼 고전 소설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이번 일독에는 책만 집중해서 읽었는데 다음 번에는 MP3파일과 함께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