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자마자, 피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임신이라는 현상 자체가 실제 드러나는 것은 여성에게 나타나기 때문에 2차 성징이 지난 여자들이라면 ‘몸 조심 해야 한다’ 라는 이야기들을 한 번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아마도 이 의미 속에는 함부로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 혹은 피임을 잘 해야 한다 라는 의미 등 여러 개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겠지만 이전의 나의 기억들을 되돌아 보면 어떻게, 라는 과정이 아니라 조심해야 한다, 라는 결과만을 던져주며 ‘그래야만 한다’ 라고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던 것 같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나 출산보다는 피임을 제대로 하는 것이 모두에게, 그러니까 남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다큐멘터리에 종종 등장하는 제 3국가 안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가난한 살림살이에 더불어 7~8명은 정도의 식구들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삶을 조명하고 있기에 식구 수라도 조금 덜 했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마도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그들에게는 피임이라는 것에 대한 지식이 보급되지 않거나 혹은 안다고 한다 하더라고 피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당장 오늘을 살기에 더욱 급박했기 때문에 쉬이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아직까지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한정되어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피임하면, 임신을 피하다라는 의미로 그 당사자들의 자의에 의해 선택하는 권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첫 페이지를 넘기자 마자 피임에 대한 끔찍했던 한 역사가 조명되고 있으니 바로 미국의 ‘벅 대 벨소송’이다.
1927년 10월 미국 여성 캐리 벅은 강제로 나팔관을 절제 당했습니다. 그녀가 살던 버지니아 주에서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불임 시술을 하는 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지요. 캐리와 버지니아 주가 맞붙은 재판은 주 법원을 거쳐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1927년 캐리는 패소했습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버지니아 주의 단종법이 다수의 안전과 복지를 추구하는 연방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어요. 이렇게 벅은 버지니아 주 단종법의 첫 희생자가 되었답니다. –본문
자의에 의해 후세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벅 대 벨 소송의 판결을 읽으며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에 공포감마저 들게 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한 개인의 의견이나 권리를 넘어 이러한 결정을 할 수 있다니. 그것도 불과 한 세기도 안된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 당시의 최첨단 과학이라 신봉되던 우생학을 기반으로 한 판결이라곤 하지만, 그래, 그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서도 이러한 판결문을 근거하여 우리가 제대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알려주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이전의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피임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피임에 관한 역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 시행되고 있는 피임의 방법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시대가 변하면서 피임에 대한 인식들의 변화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종교에서 보는 피임의 의미는 어떠한지 등 단 피임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하여 총체적인 문제와 현상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러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태어나지 않은 아기도 여러분고 나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인간이라 생각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일부러 한 생명을 파괴할 수 있는가?
-1994년 10월 유엔 카이로 국제회의에서 마더 테레사
원치 않는 임신과 불법 낙태, 원치 않는 자녀로 인해 엄마가 겪는 고통이나 죽음은 감수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도덕성은 한낱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1994년 10월 유엔 카이로 국제회의에서 그로 할렘 브룬툴람 노르웨이수상–본문
가장 흔히 알고 있는 콘돔이나 경구피임약 이외에 가임기를 진단하여 자가로 피임을 하거나, 여성의 질 안에 피임용 기구를 삽입하거나, 자궁 내에 장치를 설치하거나 불임시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낙태를 선택하는 것까지, 생각보다 많은 방법들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들 하나하나의 문제점 또한 시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자연스레 피임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는 체내 호르몬 조절로 인해서 배란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피임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피임을 둘러싼 찬반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며 이러한 생각들도 해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에 대해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세더잘 만의 매력인 듯 하다.
특히나 ‘재생산의 권리’라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피임이란 하나의 권리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실제 존재하는 것이었다는 것과 유엔에서 지지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벅 대 벨소송이 벌어지지 않겠구나, 라는 안도감이랄까? 여하튼 인간이 가지는 권리로서 인식을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녀를 낳을 것이지, 낳는다면 언제 얼마나 낳을 것인지 결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피임법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재생산의 권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본문
하나의 생명을 탄생을 두고서 논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피임이라는 것은 쉬이 어느 것이 옳다, 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끝없는 논쟁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떠한 논쟁을 위해서는 제대로 알고 그에 맞는 토론이 거쳐져야 하기에, 알고는 있지만 깊이 있게는 알지 못하는 문제이기에 세더잘의 피임에 대해서 한 번 읽어보면 좋다고 생각된다. 단순히 쾌락을 좇기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