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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어, 곁이니까 - 아이를 갖기 시작한 한 사내의 소심한 시심
김경주 지음 / 난다 / 2013년 2월
평점 :
내가 태어난 날 처음 나를 안아 들고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좋아서 싱글벙글하던 아빠의 모습을 회상할 때면 엄마는 늘 “네 아빠가 너를 처음 안았을 때 그 작은 아이를 안고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꼭 도둑이 아이를 훔쳐 안은 것마냥 어색하면서도 그 표정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단다.” 라고 늘 말씀하시곤 한다. 자신들의 분신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아마 그 기분은 지금 내가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이나 벅차 올랐을 것이다. 부모님조차도 그 순간에 비로소 엄마, 아빠라는 이름을 실감했을 테니 그 기분이 어떠한 것일까? 라고 상상해 보려 해도 어느 정도의 벅참일지는 도무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나는 잠시 동안 멍했습니다. 들고 있던 풍선을 놓쳐버린 소년처럼 말이지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몇몇 내 눈 속의 등장인물들이 아련했지만 나는 말없이 당신을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영화 대사처럼 “이제부터 우리가 서로 안으면 셋이 안고 있는 거네” 라고 말했지요.- 본문
홀홀 단신의 몸으로 두 분이 만나 지금을 어엿한 가정을 꾸리기까지 나의 부모님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짧기만 했을 것이다. 고단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태교 일기를 남긴다는 것은 당시에는 사치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 어릴 때의 모습들을 기억하시는 엄마, 아빠를 보면 그들의 기억 속에 나라는 모든 기록들을 안고 계시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나는 참 행복하구나, 라는 생각들을 한다.
태교일기, 나의 태교일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부모님의 태교 일기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내가 속해있는 태교 일기는 현존하지 않지만, 으레 태교 일기라 함은 엄마의 손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임신이라는 축복의 현상이 비단 한 여자 혼자로서는 불가능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태교 일기, 하면 엄마가 쓰는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 모성애 하면 엄마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 인가보다.
왠지 아빠가 쓴 태교 일기는 무언가 딱딱하기만 할 것 같고 그 내용도 짧으면서도 투박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아빠, 하면 묵묵하면서도 잔 감정들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윽하게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인지 아빠에 의해 쓰는 태교 일기는 왠지 짧으면서도 묵직할 것만 같았는데 저자가 쓴 태교 일기를 보면서 ‘그 어느 아빠라도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그 모두의 아버지를 대변하여 써 놓은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그제서야 모든 아버지들 역시 이 생경한 태교라는 시기를 함께 해온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 정말이지 나는 인간은 모두 태내에 있는 동안 두 개의 심장으로 지내는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경이를 품고 있습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몸이 엄마의 몸이기도 하므로 우리가 자궁에 있는 동안 한 몸 속에서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숭고에 가깝습니다.- 본문
딱딱할 것이라는 생각을 단숨에 쓸어버리듯 그의 문체는 다정하면서도 살가웠다. 그 숭고한 순간들을 즉시하는 관찰자이면서도 이 모든 과정의 참여자인 그는 그의 아내에게, 그의 아이에게 참으로 따스한 이야기와 자신이 느낀 모든 것들을 고운 언어로 전해주고 있었다.
네 눈동자에 대해서 상상하는 밤이다. 너는 어떤 눈동자를 가졌을까? (중략) 네가 태어나면 나는 제일 먼저 너의 조그맣고 까만 눈동자에 가만히 손을 대어보고 만져보고 싶구나. 삶이 허약해질 때 마다 우리의 의지가 너의 눈동자를 따라가기만 해도 흐릿한 미래가 맑아졌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본문
열 달이라는 시간 속에 엄마는 아이를 품고 있다. 한 몸에 두 개의 심장이 공존하고 있는 그 순간을 엄마는 실제 자신의 몸으로 체감하고 있을 때 아빠는 그 시간 속에서 아이와 엄마의 세계를 공전하고 있다. 바라보는, 라고만 하기에는 아빠들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그 위치에서의 역할에 대해 소소한 일상으로 풀어 이야기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빠도 이러셨겠구나, 라는 생각에 몇 번이나 울컥하는 눈물이 차오르곤 했다.
있지,
있잖니,
네가 만일 사내아리라면 내 발등에 네 발을 올려놓고 길고 긴 아름다운 여행에 대해 평생 애기해줄 참이야.
네가 만일 딸아이라면 처음 네 몸을 씻겨줄 때 가장 부드럽게 거품을 내던 비누처럼 평생 너에게만은 언제나 미끄러질 참이야. –본문
언제나 좋은 것들만, 예쁜 것들만 보여주고 싶기에 매일을 아등바등 지내오신 부모님의 노고는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시작 되었을 것이다. 아침의 구역질이라는 입덧 때문에 새벽에 한 달음에 딸기를 사러 가셨다던 아빠나, 이 현상을 어떻게 하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공부하는 저자나 이 책을 통해 세상의 모든 아빠들의 마음을 알게 된 느낌이다.
동물들이 갓 태어난 자기 새끼를 핥듯이, 엄마도 네 울음소리를 알아듣고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게 되겠지. 무사히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엄마의 품에 안길 때까지 네 눈은 엄마의 눈을 따라 움직이기를. 지켜보렴. 나는 그 곁에 머물 것이다. –본문
묵묵하지만 언제나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빠가 내뱉는 고백과도 같은 책이기에 읽는 내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기가 참 아쉬우면서도 동시에 가슴 가득 뜨거워지곤 했다. 그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을지, 자신의 곁에 있는 아내와 아이를 보살폈을지, 그 묵직한 따스함을 느끼는 내내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예쁘고 또 아름다운 아빠의 동행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주변 지인들에게도 전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