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말마따나 이미 그리스 신화에 대해 출판되어 있는 책들은 널려있다. 구전으로든 활자로든 이미 넘쳐나고 있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그는 다시 그리스 신화를 선택했다. 이미 레드시장으로 가득한 곳에서 왜 또 그리스 신화인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성공과 실패가 하나의 물결처럼 서로를 교환하는 것,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모멸이 온몸을 휩싸는 일에 뛰어드는 것, 모든 신화를 바로 무수한 모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신화 읽기를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그런 류의 책들은 너무도 많다. 이 책은 모험의 선동을 위해 쓰였다. 모험에의 초대,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다. –본문
무엇보다도 서문에 그가 발췌해 놓은 이야기들이 마음에 들었다. 똑같은 이야기들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또 다른 새로움을 전달하려는 그의 부단한 노력은 컨설턴트라는 그의 직업에도 잘 부합할 만큼, 이 책 전반적인 성격이 그를 닮아 있었다.
“가장 가치 있고 정의로운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그 비난당한 삶을 스스로 살지 않는 것.” 이라 말했다는 탈레스의 이야기로 입맛을 돋구며 신 안에서 태어난 인간의 이야기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제우스가 아닌 인간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그의 목적대로 이 책을 읽을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에 의해서 탄생한 인간의 남자는, 인간에게 너무나 편애한다는 이유로 제우스가 내린 형벌인 매일 독수리에게 제 자신의 간을 파먹히는 고통을 안으면서까지도 그는 인간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이 형벌로도 제우스는 스스로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인간에게 주는 형벌로 여인 판도라를 파생시킨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가 가지고 있던 판도라의 상자는 이 세상을 참혹히 만드는 무수한 고통의 근원이자 불행의 기원이었으며 이것이 제우스가 인간에게 주는 형벌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판도라 상자 마지막에 있던 희망을 안고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들이 대지의 뼈인 돌멩이를 등 뒤로 던지자 땅에 떨어진 돌들이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수많은 새로운 인간이 만들어졌다. 드디어 돌의 종족의 시대가 열렸다. 그들은 굳건하고 참을성이 많은 종족이었다. 이렇게 인류는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본문
더 이상 떨어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시금 일어나서 어떻게는 시간을 버텨내는 인간의 근성이 바로 이 판도라의 상자 안에 담겨 있는 희망을 닮은 듯 하다. 제우스의 심술 맞은 형벌과 같이 알 수 없는 인생 속의 파란만장한 일들이 닥쳐오더라도 일어나게 하는 힘. 그 힘이 제우스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힘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괴물로만 알고 있었던 메두사에 관한 고찰이 인상적이다. 머리에 뱀을 달고서 무시무시한 형상을 하고 범접할 수 없었던 모습일 것만 같은 그녀가, 이 책 안에 소개된 혀를 베문 얼굴상을 보면서 장난스러우면서도 익살스러운 표정에 그 전에 알고 있던 그녀의 모습 보다는 귀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 속의 메두사는 두 개의 대극적 가치를 모두 붙들어 품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메두사는 괴물이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여인이다. 죽음이면서 또한 부활이다. 희생된 자이면서 죽인 자와 결코 다르지 않는 동질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본문
어느 때는 사람을 살리는 약으로, 때론 사람을 죽이는 독으로 사용 되었다는 메두사의 피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동맥과 정맥이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그 누구도 이러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나 역시도 메두사처럼 이면의 모습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 포장하고 드러나지 않게 묶고 있기에 평이한 인간처럼 보이는 것이겠지만, 그 누구보다도 나는 내가 안고 있는 메두사의 모습을 알고 있기에 어쩐지 그녀의 흔적들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가장 그리스적인 그리스인인 오디세우스를 만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시대상의 변화에 그 당시의 당대 가장 이상적이라는 인물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트로이전쟁의 영웅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에게서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고서는 시대를 풍미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모습까지도 제대로 알아야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영악하고 치밀한 사기꾼이며, 거짓말쟁이인 오디세우스는 당시 가장 모범적 인간이었다. 시인들은 그를 영웅으로 노래했고 아테네 여신조차 그를 좋아했다. 여신은 손으로 툭툭 그를 치고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신이라도 그대를 이기려면 교활한 망나니가 되어야 할 거야. 영악하고 치밀한 사기꾼인 그대는 고향에서도 마음속 깊이 품은 계략과 속임수를 멈추지 않겠지.” –본문
예전에는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 그 안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름을 외우고 그 관계도가 어떻게 되고 그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어디인지에 대해, 그러니까 나를 위한 책 읽기 보다는 타인에게 나의 유식함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리스 신화를 읽어왔다. 길지 않은 기억의 수명 때문에 다시금 이런 책들을 보면서 아, 그래 이 이야기 읽었어, 라며 넘어가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그런 부담 없이 철저히 내가 생각하는 대로 보고 생각하며 읽어서 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무언가 좀 더 인간적인 느낌의 그리스신화랄까. 그들만의 이야기를 탐닉하던 한 인간이 아니라 내가 중심에 서서 그리스 신화를 바라볼 수 있기에 했다면 생각이고 잡념이라면 잡념일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