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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인문학을 읽고 나서 이 책을 바로 읽게
되었다. 청춘인문학에 대해 종종 들어오는 왔으나 왠지 모르게 구미가 당기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지만, 몇 페이지를 읽어보고서는 바야흐로 신세계를 만났듯 유레카를 외치며 빠져드는 나를 보면서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청춘일
때 마음껏 즐겨라 혹은 청춘일 때 제대로 다 잡아야 인생이 평온해진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어보곤 했으나 청춘인문학은 그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타고 있다. 대체 청춘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현대 속에서 그들의
모습이 어떻게 녹아져 있는지, 현재 우리의 모습이 실제 어떤 것인지에 대해 통렬하게 주창하고 있다면
삶으로부터의 혁명을 그 보다 더 깊이 들어가 청춘들을 구제하기 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청춘인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이라면 삶으로부터의 혁명은 어떻게가 아니라,
살아야 하기 위해 이야기 하는, 보다 근본적이면서도 보다 더 깊이 있는 담론을 끄집어 낸
것이다.
이
책의 요점을 한 마디로 하자면, 그것은 자살하지 않는 방법,
우리 삶을 다르게 상상하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우리는 모두 획일화된 현실에 갇혀서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읽어버리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 문제는 사회구조나 노동
강도와도 관련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망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현실, 그 어떤 세계, 즉 ‘나’이다. 그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고,
비교당하고, 대중매체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져 뼛속 깊이 병든 ‘나’이다.
–본문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고민하기 위해서 일단 산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 근래 사회 족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안타까운 기사들이 가득하다. OECD 가입국 중에서 자살률이 1위라는 영예의 자리에 오른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저자는 청춘인문학보다 우선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느낀 듯 하다. 살아있어야 그 이후에 대해 고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전의
책에서도 그렇듯 저자의 책을 보면 여기저기 포스트 잇이 수두룩하게 붙어진다. 보는 내내 주옥거리게
되는 내용들 때문에,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읽었음에도 이 모든 것들이 단 하나로 정리되지가
않는다. 모르는 것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그 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단 하나로 귀결시킬 수 없어 몇
번 계속 읽어봐야 할 듯 한데, 일단 이번에 처음에 느낀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역시나
저자는 이전 책에서와 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자기계발서와 그에 심취해 있는 이들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타인과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한다고 주구장창 이야기는 하지만 언제나 타자들의 삶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남들과
다른, 자신에게만 집중해 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처럼
열심히 위로해서 다시 치열한 현실 경쟁에 뛰어들도록 하는 일은 일면 닭과 사육사를 떠올리게 한다.
일부 대규모 양계장에서는 밤에도 불을 환하게 밝혀 놓는데, 이는 밤을 낮으로 착각한
닭들이 계속해서 알을 낳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청춘은 열정 멘토들에 의해 잠시 눈을
감으면 다가오는 공허함이나 방황, 정지의 시간을 당장 물리치도록 요구 받는다. –본문
성공이라는 꿈을 향해
10대를 문제집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살다 대학이라는 간판을 걸자마자 휘청거리며 청춘을 즐기거나 혹은 그 청춘을 기반으로 멋들어진
인생을 살기 위한 주춧돌로 하는 이들은 다시금 20대 후반 취업이라는 문턱에 들어서고, 그렇게 시작된 사회 생활 속에 휩쓸려 결혼을 하고 지나다 보면 어느 새 휘영청 인생의 반이 상이 지나가
버리게 된다. 무엇을 위해서 이토록 달려왔던 것인지에 대한 목적의식 없이 지나온 시간 속에 그리고 또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보며 의미 없는 길 위에서 방황을 하거나 때론 그 곳에서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단종시키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내가 정말 스스로 선택한, 상상한, 만들어나간
삶이 있었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나의 인생은 현실에 휩쓸려 산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의 것이
된다. –본문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우리는 왜 독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청춘인문학에서와 같이 저자는 현대라는 틀 안에서 이러한 병폐의 원인을 꼬집어 내고
있다. 타인을 존중하기에 그 존중의 대가만큼 나 역시도 존중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는 점차 나의 모든
기준이 옳다라는 변종으로 탄생하게 되고 근대를 지나오면서 계몽주의를 철폐하고 오롯이 감정에 중심을 두다 보면서 나의 순수한 감정이 아닌 타자들의
감정에 휩싸여 그것이 나의 감정이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며 그러한 것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그 안의 내 생각마저도 타인과 동일해야만 안심하게 되는 이 모순적인 행태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속의 우리네 모습인 것이다.
종교에
의해 이러한 문제들을 덜어내보려 하는 노력도 잠시 되려 시간을 뫼비우스의 띠로 보는 것이 아닌 단절된 것으로 봄으로서 그 안에서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삶의 연장을 위해서 종교적인 힘을 빌리게 되는 역전 현상마저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앞에서 지목한 ‘종교’ 즉 ‘신’의 문제는 이러한 ‘죽음’의 문제로부터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원래 우리에게는 오직 ‘삶’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 더해 ‘죽음’이 염려되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신’ ‘종교’를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도피이다. –본문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구석구석을 분석하면서 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쉬이 볼 수 있는 나의 인생을 응원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책과는 전혀 달리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이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인문학을 통해서 세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제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 안의
염원이나 운 따위가 아닌 진정으로 내 안의 나를 제대로 적립하고 내가 있는 이 자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인문학이라는 망원경을 통해서
인생을 바라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 해야 한다는 그가 말하는
인문학은 그 동안 읽었던 베스트셀러들을통렬하게 꼬집으며 투쟁하고 있다. 이번 한 번 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마냥 부품 꿈을 꾸며 지냈던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