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알로 이미 유명한 가와카미 미에코를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사실 저자보다도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다름아닌 정선희라는 이유 때문에 읽기 시작했기에, 그런 의미에서 작가에게는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읽으면서 점차 그의 문장에 매료되었으니 어느 정도의 변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이 알려준 것들’이라는 거창한 제목보다는 그 위에 있는 부제인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삶의 편린들’이 훨씬 이 책을 잘 설명해주는 듯 하다.
사실 처음 읽다 보면, ‘응? 이게 무슨 내용이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첫 장을 들추자 마자 등장하는 일명 고상한 여인의 ‘빤쭈’이야기를 보면서 어색하다 못해 낯설다, 이것이 일본인과 한국인의 정서 차이인가, 라며 고상한 듯 생각하다가도 어느새 귀지를 대하는 동일한 태도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지만 그녀나 내가 느끼는 것들은 피차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응? 하며 시작된 반감 어린 불신이 사그라들며 오히려 세상 누구보다 고상한 듯 그녀의 글들을 깎아 내리려 했던 내 모습이 되려 부끄러워진다.
멍하니,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왜 이러고 있지’하면서도 시간을 좀 먹는 가욋사람 놀이는 작가든 일반 직장인이든 매한가지 인가 보다.
더 우스운 건 정신줄 놓고 지내는 덕분에 놀랐던 것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는 것! 결국, 이렇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으면 인생이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끝나는 건 아닐까라고, 이 또한 멍~ 하니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본문
매사에 꼼꼼하고 똑부러지게 일 처리를 할 것만 같은 작가라는 페르조나 대신에 나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급작스럽게 친해진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도 그저 넘어갈 수 있는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집어서 이야기 하는 그 소소한 것들에 대한 관찰력과 그 관찰한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필력이 편안하면서도 계속 매료되게 하여 휘리릭 책장을 넘기게 된다.
엄마의 조건. 엄마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엄마가 가져야 하는 소양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그 명쾌한 정답을 바비 인형이 알려주고 있었다. 실제 미국에서 ‘임산부’ 바비 인형 단기간에 판매 중지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바비 인형의 손가락에 ‘반지’가 없기 때문이란다. 반지의 부재가 나타나는 엄마의 조건은 바로 결혼이라는 것이다.
‘발매 중지를 하지 말고 그냥 부속품으로 반지를 팔 것이지’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여유라고는 하나 없는 꽉 막힌 보수적인 사고방식, 그 답답함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던 것이다. –본문
그저 웃고 넘어갈 만한 헤프닝으로 넘길 수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저 반지를 그려서라도 판매를 하면 될 것을 전량 판매 중단이 된 것으로 보면, 바비 인형과 결혼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가보다.
어린아이들을 주로 가지고 노는 바비 인형에게 있어서 미혼모라는 딱지가 적절하지 않게 비춰질 수는 있다지만, 사회 속에서 그들 자체를 사라지길 원하는 모양새라 왠지 씁쓸하다.
중, 후반에 접어들어서면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대 지진으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 폭발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 및 현재 상황에 대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전하다, 라는 이야기를 모든지 믿기에는 뭔가 찝찝하면서도 그럼에도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이기에 하나 둘씩 그 말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어느 새 아주 오래된 이야기 인 듯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참으로 안타까워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맞는 것일까? 정말 안전한 것일까? 매일 불안해 떨고 있는 이들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일까? 얼마 전 안전하다고 발표했던 힐링크림도 알고 보니 유해성분이 검출 되었다는 보도를 보며, 그들의 말을 믿었던 소비자들에게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갔던 사태를 보며 일단 먼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언론이 보여주는 세상이 옳았다면 상관없지만 만일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희생되는 건 언제나 언론이 보여주는 세상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본문
소소한 일상들의 편린들이 담겨 있기에 읽으면서 이게 무슨 인생에서 찾은 것들이야, 하며 너무도 거창한 제목에 걸려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초반에 그런 생각으로 읽어 내려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진득하니 읽어보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일상 속에서 나는 지나쳤던 것들을 그녀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글로 담아놓고 있기에 금새 빠져들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나쳐 가는 것들이 다반사 이겠지만, 잠깐 쉼표로 피식 웃음을 띄어보기도 하고 때론 심각한 고민에 빠져보게도 하고. 옆 집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는 듯 하지만, 배경만 일본인 이 책은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면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전환되는 순간을 맛볼 수 있는, 편안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