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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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책을 읽으면서, 문자가 영상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제대로 배운 책이다. 그 어디에서도 느껴볼 수 없었던 공포감이란. 보는 동안 심장이 조여온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계속 주변을 돌아보면서 낑낑거리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250페이지 남짓 읽었을 때,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까? 이러다가는 오늘 밤 가위 눌림은 물론이고 당분간 어느 공간아래 혼자 있는 것 조차 두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무서워를 연발하여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족들이 곁에 있을 때에만 읽어 내려갔던 이 책의 마지막을 보면서 중도에 포기했다면 공포만이 계속해서 내 주변을 맴돌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끝까지 읽기로 결심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소개 글을 읽으면서 심은하 주연의 드라마 ‘M’이 생각났다. 초록색으로 눈빛이 변하고 중 저음의 기계음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꽤나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낙태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던 때에 한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죄라는 것을 공포로 배웠었는데, 시간이 한창 지났기에 그 때보다 수월하게 이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자만이었는지 책을 읽는 내내 뼈저리게 감내해야 했다.

 문자로 전달되는 공포는 영상보다 위력이 엄청났다.

 내가 누군지 알아? -본문

 보이지 않는 실체의 등장, 이는 말미암아 서서히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슈헤이와 가나미. 그들은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은 아름다운 부부였다. 얼마 전 슈헤이가 출간한 책은 많은 판매부수를 올리게 되었고, 그 덕분에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가지게 되었다. 남부럽지 않게 다시 그들의 행복을 찾아가려는 순간, 그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임신소식. 과연 이것은 그들에게 행복을 전조일까?

한 부부의 사랑의 결정체인 임신은 결과적으로는 한 여자의 몸을 우주로 하여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시작되게 된다. 남녀가 함께 이뤄내는 것이지만 한 생명의 존재를 10개월 동안 느끼는 것은 여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여자라면 한 번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 같다. 내 안에 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그 신비로운 현상은 여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기에 나 역시도 언젠가 그 날이 도래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과연 남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까? 그들도 여자들만큼이나 간절히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들을 할까?

어째서 이렇게까지 임신하기를 바라는 걸까? 여자는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강박 관념이 스며들어 있는 걸까? 아니면 이런 여성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떤 문화의 영향과도 관계없이 그저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감춰져 있는 걸까? –본문

누구보다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슈헤이에게 임신소식은 난제로만 다가오게 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 즉 하우스 푸어로 전락해버릴 수 있는 그들의 현실 속에서 그들에게 남은 단 하나의 선택. 바로 낙태를 결정하면서 이 모든 사건은 시작되게 된다.

 “네. 임신부 네다섯 명 중에 한 명 꼴로 중절을 택하는 셈이죠. 배 속의 아기를 인간으로 인정한다면 일본인들의 사인 1위는 암이 아니라 인공 임신 중절이 되겠죠.

 슈헤이는 입을 꾹 다문 채 살처분을 당하는 반려동물을 생각했다. 주인이 내버려 안락사를 당하는 개와 고양이 수는 각 약 30만 마리였다. 이 나라에는 처분되는 개나 고양이보다 중절당하는 태아 수가 훨씬 많은 걸까? -본문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만, 어찌되었건 자의적이던 타의적이던 낙태 수술이 집행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세더잘의 낙태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도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낙태율을 낮추고 안전하게 시술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보면서 동의하곤 했는데, 이 책 속에서 보여주는 공포를 느끼는 동안에는 절대 반대를 외치면서 보았던 것 같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이성을 통째로 휘감아 버린 순간 이랄까. 이 책에 취해있는 동안, 공포는 그 어떤 것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이 책 속의 등장하는 세 여자는 모두 아이를 원하고 있었다. 아이를 지키고 싶었으나 낙태를 강요 받았던 구미는 홀로서라도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간절히 임신을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자신의 몸을 던져버린 마이코. 낙태를 결정하고 나서 빙의 현상을 겪게 되는 가나미.

그들은 그저 평범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그 작은 소망이 일그러진 순간, 그들은 독기 어린 여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생명이자 그토록 그녀들이 원하는 순간이었기에 그 무엇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라는 이름의 모성애는 세상 그 무엇도 부서트릴 수 없는 난공불락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슈헤이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 대답은 뭐였죠?”

 나는 엄마야.”라고 구미가 말했어요. 굉장히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배 속에 있는 아기의 엄마야.’ 라고요” –본문

원치 않는 임신이 낙태로 이어질 경우,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는 그들은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의 본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어 나오게 되나보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여자들은 슈헤이의 이 독백을 보며 분노가 차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남자란, 한 순간의 쾌락만은 좇는 인간인가, 라는 생각을 슈헤이를 통해 모든 남자에게 화살을 던지게 만드니 말이다.

 문득 가나미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자신이 피임 기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만약 그렇다면 가나미도 같은 죄를 지은게 아닌가. 왜 가나미는 먼저 자신의 몸을 지켜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나중에 눈물짓더라도 이미 늦어버린 일이 아닌가. –본문

 어찌되었건 이 K.N의 비극이 오버랩 되면서 두 부부는 물론 의사였던 이소가이까지. 아니, 연인이라면, 부부라면 아마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를 이 소설 속에 저자는 담아 묻고 있다. 공포를 넘어선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며 과연 우리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 소설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다시 이 저자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싶다. 정말 빠르게 읽어내려 가기는 한다지만, 글로서 이렇게 사람을 공포에 종종거리게 할 수 있다니. 물론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는 그 모든 것들이 이해된다고 하긴 하지만, 그의 글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글에 담아내는 실력이 대단한 것이겠지만, 이 공포를 다시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르's 추천목록

 

『아름다운 흉기』 / 히가시노 게이고저

 

 

 

독서 기간 : 2013.07.04~07.0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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