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대한 칼럼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책이 알레고리 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저 읽어보고 싶다, 라는바람만 가지고 있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아주 천천히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관한 책만 벌써 몇 권 째 사 두고서는 맴맴 돌고 있는데 이 책 덕분에 한걸음 가까워진 듯 하다.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현실과 함께 니체가 말한 동물, 동물을 투영한인간의 모습을 한대 엮어 이야기 하고 있기에 꽤나 집중해서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매일을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왜동일한 시간 속에서 여유라는 한 줄기 빛이 없는 암흑과 같은 공간에 빡빡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 일까. 한장 엽서 속의 풍경처럼 한 번 하늘이라고 바라보며 한 박자 쉬어갈 수도 있으련만, 하루 한 번 하늘을바라보며 몇 초의 시간도 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 개인개인이 모인 한국이라는 사회는 대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남보다 더 일찍, 남보다 더 멀리 날아야만 하는 계속된 레이스 속에서우리는 언제나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덩어리를 이루는 한국은 때로 급격하게 뜨거워지고 때론 냉혈하게 식어버리는 냉혹함도 가지고있다. 내가보는 나와 내가 속한 우리가 동일하지 않은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이질문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정체성'이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하는 것, 즉 '자기 인식'이라면, '국민성'은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의 정체성의상실과 혼란 상태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를 파란과 격동으로 이어진 근대역사의 경험에서 찾는다. 식민 지배와 전쟁, 분단의 모진 세월을 겪으면서 심리적 분열과 정체성의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본문 낙타에서부터 거머리까지. 그어느 하나 고개가 끄덕거리지 않는 것들이 없었다. 매일 아침 두 어깨 무겁게 일터로 향하는 아버지는언제나 YES를 말하는 낙타와 같은 모습이었다. 가족을 위해삶을 책임지고 있다는 그들은 어느새 냉장고의 존재보다도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린 채 돈을 벌어오는 기계로만이 자리잡고 있다. 아버지들이살아 있어야 가정과 사회가 더 건강해 질 수 있다. 아버지는 단순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자가아니다. 아버지는 “정신적인 중심축”이고 “형이상학적 최고의 원리”였다. 그러나 가족의 중심에서 밀려난 아버지는 더 이상 기적의 중심축이 아니고 문명의 위대한 건설자도 아니다. 그들은 종들의 경쟁에서 패배자들이다. –본문 책을 읽다 보면 매번 마주했기에 이제는 별 다른 느낌이 없이 생각했던것들에 대한 논쟁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얼마 전 대선에 있어서 한창 이슈가 되었던 반값 등록금에대한 내용도 있는데, 저자는 반값등록금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닌 대학생들을 위한 등록금에 대한 혜택을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혈세로서 그 몫을 감당해야하며, 우리나라 20대들의 대학 졸업이 80%이상을 기록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학을 다니지 않는 나머지이들인 20% 이들에게 이러한 혜택은 그들만의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 보다는 학벌만을 우선시 하는 시대상을 뒤바꿔야 한다고 하는데, 그래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만연해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한숨만 짙어질 뿐이다. 생각없이 세태를 따라가고 있는 그 모습들을 저자는 원숭이에 비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날지 못하는 무늬만 있는 날개를가지고 있는 낙타와 비슷한 동물로 비유되고 있는 낙타는 그 어느 때보다 이기적인 가족상을 담고 있다. 타조의비극은 무엇보다도 조류의 일종이면서도 공중을 활공하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타조가 날 수없는 것은 크고 무거운 몸통에 견줘 지나치게 작은 날개 탓이다. 무거움이야말고 타조의 수치가 아닐 수없다. 무거운 몸은 중력의 악령들에게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무거움은개인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줄을 몰라 몸의 표정 속에서 굳어버린 영혼이다. –본문 자신들만 잘 살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현재의 모습은 이웃사촌이라는 단어의 존재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는 다는 것보다는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만이 유일무이한 우리네 삶을 보면 얼마 전 대기업 가문의 외국인 학교 부정입학 사례만 보더라도 가족 이기주의가팽배해져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일 것이다. 이렇듯한국 사회를 고위험사회, 혹은 불안증폭사회로 내몬 것은 내 가족만은 잘 살아야 한다는 가족 이기주의이다. 가족 이기주의에는 타자에 대한 배려나 정의, 사회적 기회의 균등따위가 들어설 틈이 없다. 가족이란 한 사회를 떠받치는 최소단위의 집단이다. 가족이 건강한 공동체로 바로 서야 공멸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 사회라는 이 폭주기차를 정지시킬 수 있다. –본문 동물을 투영한 알레고리를 통해서 이 나라의 현재가 얼마나 꿉꿉한지에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니체가 말하는 동물들의 문제는 동물들의 것이 아닌 우리의 모습이었다. 원숭이를 비난하고 거머리를 힐난하고 있는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그저 니체의힐난을 그저 힐난으로만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동물원 속 동물의 모습으로 전락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해야 할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면서도 뜨끔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추악한 면모를 보인 한국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던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도 멈춰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