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장이 들려주는 그리스 신화
최화선 지음, 그리스신화박물관 기획 / 케이론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그리스 신화에 대해 그 동안 막연하게, '알고 싶다' 혹은 '배워두면 어디든 쓸모가 있겠지' 등등 기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몇 권의 책을 읽곤 했었는데, 이 책처럼 보는 내내 ', 이런 거였구나' 하며 감탄은 자아내며 읽은 것은 실로 처음인 것 같다. 어린이를 위한 그리스 신화에 관한 책이지만, 나와 같이 그리스 신화에 대해 수박 겉핥기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뭐랄까, 왜 그리스 신화에 대해 여전히 사람들이 열광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말 쉽고 재미있게 그려냈기에 부담감 없이 읽으면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개인적의 견해로는 그리스 신화의 인문서로 이 책만한 것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책을 펼치자 마자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의 계보. 이것을 보자마자 왠지 이 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단 몇 페이지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은 기대를 넘어 그 자체로 현실로서 드러내고 있었다.

넘쳐나는 그리스 로마에 관한 책들 중에도 불구하고 왜 이 책에 이렇게 매료되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제대로 꼬집고 시작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많은 사람들이 읽으니까 읽어봐야지'가 아니라 신화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해서, 우주 만물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에 우리는 신화를 보고 접하고 끌리는 이유라고 한다.

이처럼 신화에는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깃들여 있다. 물론 오늘날 신화가 들려주는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이치를 설명해주는 과학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신화는 여전히 우리곁에 숨 쉬고 있다. 우리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들을 상상하면서 늘 신화와 함께 한다. -본문

무엇보다도 신화 속 신들의 모습이 언제나 완벽하기만 한 신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게 뭔가 부족한 듯한 모습의, 올림포스의 주신이었던 제우스는 여성에 대한 욕망이 들끓었고 여신들 역시 질투에 눈이 멀기도 하는 모습들이, 사뭇 우리 인간의 모습을 띄고 있기에 더욱더 정감이 가는 듯 하다.

여하튼 이렇게 정감 가는 신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만물이라 할 수 있는 카오스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이아, 에로스, 에레보스, 닉스의 탄생으로 세상은 창조되어 진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는 땅과 하늘, 산맥과 바다, 낮과 밤, 대기가 만들어졌다. -본문

메두사가 원래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포세이돈와 신전에서 사랑을 나눴다는 이유로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태어나서부터 괴물로만,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 모두가 돌로 굳는 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던 내게는 이 역시 신세계였다. 또한 메두사를 처치한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가 만나는 장면 역시 띄엄띄엄 알다가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된 내용이었는데, 이 책을 따라 가다 보면 계속해서 연결해서, 인간의 등장은 물론이고 고대 그리스의 자취까지 따라가게 된다.

정말 쉼 없이 읽어 내려가면서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있기에 즐겁게 본 그리스 신화.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그리스 신화를 처음 접하는 자들이라면 당당히 권해 볼 만한 이 책은 다음 번 다른 책을 통해 그리스 신화를 접하게 될 때에도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보게 될 만큼, 좋은 책이었다.

아르's 추천목록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 송정림저

독서 기간 : 2013.08.03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 대혁명 2
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자신들이 숭배하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나서, 언제나 그렇듯 커다란 사건의 발생이 아니라 그 이후가 중요하기에 2권은 바로 이 혁명적 사건 이후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고 있다.

 1권에서는 루이 16세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던 내용이 그의 부재로 인해 사실상 어느 하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 무언가 커다란 쓰나미가 지나가긴 했지만 여전히 복구가 안된 혼잡스러운 모습을 그래도 나타나고 있었다.

 

 증오가 파리의 대기에 스며들어 있었다.

이 도시의 온도계는 공포라는 온도에 고정되어 있어.” –본문

 

 백성들은 루이 16세만 사라지고 나면 자신들의 모든 문제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목표는 그의 죽음이었고 그 목표가 달성되고 나서 왕정정치 역시 막을 내리지만 그리고 나서, 그들에게 도래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이었다. 여전히 그들은 배고팠으며 여전히 그들에게는 유용한 돈이 없었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당위성을 찾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루이 16세를 처단했음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길은 오히려 민중들에 의한 권력으로 인해 공화당파에 의한 내란이 발생하고 로베스피에르에 의한 공포정치가 계속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거룩한 기요틴이 매일매일 힘차게 일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상퀼로트에 이끄는 에베르는 반복해 말하며 명령했다.

 입법자들이여, 공포정치를 의제에 올리시오!” (중략)

 공포정치를 의제에 올리시오. 그러면 여러분을 흔드는 왕당파들과 온건파들, 그리고 반혁명의 천한 무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것이오.” –본문

 

 왜 이토록 그들은 잔인한 공포 속에서 자신들을 밀어 넣었던 것일까. 본래 인간이 악하다는 성악설이 떠오르기도 하는 갖가지 장면 속에서 통제해 줄 수 있는 국가나 사회의 시스템이 없었기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그들의 손에 의해 이룩한 혁명 속에서도 여전히 백성들은 굶어 죽거나 혹은 기요탄 위에서 삶을 마무리 하는 것이나 진배 없을 만큼의 허덕이는 삶을 계속 이어나감에도 백성 그들이 지탄하고 바로 잡고 싶어했던 지배층은 여전히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었다.

 

 당통의 피투성이 머리를 보면서 인민들이 소리쳤다. ‘공화국 만세!’

 집행인이 사형대 주변으로 머리를 돌리는 동안, 그 머리의 눈썹이 격렬하게 움직였고, 눈은 형형했고 빛으로 차 있었다.

 여전히 보고, 숨을 쉬고, 군중들의 외침을 듣는 듯했다. 머리가 방금 떨어져 나온 몸도 그만큼 건장했고, 강건했다.” –본문

 

 이렇듯 끝나지 않을 기나긴 장막 속의 피의 축제 속에서 등장하게 된 구세주가 있었으니 바로 나폴레옹이다. 타국으로의 영토를 넓히며 승전고를 올리고 있다는 그의 행태로 하여금 프랑스는 지쳐있던 자신들의 안위를 고스란히 나폴레옹의 행진에 담아 잊고자 했을 것이다.

 달라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계급의 격차. 그 격차에 따른 현실을 부정하고자 시작된 피의 향연을 잊게 해주는 나폴레옹의 등장은 그야말로 그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설적인 면은 존재하고 있으니, 왕정 정치에 치를 떨며 그것을 무너트린 백성들은 다시금 나폴레옹을 황제의 자리에 앉히고 있었다. 피로서 이뤄낸 그들의 혁명적인 왕정 정치의 타도는 다시금 도돌이표가 되어 그들의 앞에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는 재앙의 장소일 뿐이고, 정치권에는 건강한 곳이 단 하나도 없으며, 그 지도자들은 동굴처럼 손으로 더듬어 가며 나아갈 뿐이고, 빛이라고는 그들 뒤에 있을 뿐이다.” –본문

 

 프랑스 혁명에 대한 다른 책들을 읽어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어떻다, 라고 비교하며 속단하긴 이르지만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밝은 면모라기 보다는 인간을 본성을 드러내며 혁명이란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부정적이 면들을 좀 더 비춰주고 있었다. 광기 어린 여론의 모습과 그러한 여론은 몰아가는 정치권의 행보를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으레 들어왔던 프랑스 혁명은 시민들의 평등과 자유라는 권리의 획득이라는 크나큰 업적에 비춰져 있다면 이 책은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이면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으로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아르's 추천목록

 

 『두 도시 이야기』 / 찰스디킨스 저


 

 

 

독서 기간 : 2013.07.31~08.05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 대혁명 1
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프랑스 혁명으로 개인들의 자유와 평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심오한 의미보다도 여전히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한 여인의 모습에, 솔직히 이실직고 하자면 여인의 모습보다도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에 나오던 그녀의 모습만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작은 요정으로 불렸던 그녀가 루이 16세와 결혼을 통해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지만 그녀의 허영과 사치는 결국 그녀를 단두대로 몰고 갔다는 이야기에, 프랑스 혁명하면 내게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죽음이 먼저였다.

 그러던 와중 얼마 전 본 레미제라블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의 배경이 프랑스의 6월 항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는 성공하지 못한 항쟁이었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발발했다는 이 항쟁 만으로도 그들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펄럭거리는 그들의 국기는 단지 한 나라의 국기가 아닌 개개인의 자유와 평화를 얻기 위한 모두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2권의 책은 받아 든 순간부터 묵직하니 다가온다. , 이건 또 언제 다 읽는담, 하며 푸념과 함께 시작된 책 읽기는 생각보다 쉬운 문체 덕분인지 꽤나 속도를 내며 넘어간다.

 그는 왕이었다.

 그의 상태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인간들이 아니었다. 오직 신만이 그럴 권한이 있었다.

 그는 왕이었다. 그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신성모독이었다.

 그는 스스로 옷을 벗고, 셔츠 깃을 풀었다. 흰색 멘턴 천으로 된 수수한 조끼만을 남겼다. –본문

 루이 몇 세, 라고 칭해지는 그들 나름대로의 호칭이 내겐 복잡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려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가? 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보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유추해 보자면 그녀가 루이 16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아마도 루이 16세의 왕권이 제대로 다져지기 전에 급하게 왕위를 물려받았고 이 때문에 왕권의 근간이 흔들렸으며 덕분에 어린 왕은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왕인 루이 16세 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초점이 맞춰친 듯 하다.

 왕으로서 가지게 되는 모든 결정권. 인간을 뛰어넘은 신으로의 위치에 있는 그가, 결국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얼마나 이 혁명이 대단한 것인지를 새삼 다시 실감하게 된다. 

 루이 15세인 할아버지 이후 루이 16세였던 그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루이 16세로 왕권을 계승 받았다면, 그 당시 발생했던 이러한 혼란이 가중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까지나 만약, 이라는 가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만약 겉모습만을 본다면, 자연에게 모든 걸 거절당하신 것 같습니다. 왕자의 몸가짐이나 언변을 볼 때 생각은 아주 꽉 막혔으며 모습은 추하고 감수성마저 전혀 없는 듯할 뿐입니다. 루이가 열 다섯 살 되던 1769, 오스트리아 대사가 쓴 내용이다. –본문

타국의 대사의 기록으로 말미암아 당시 그의 성격이며 주변의 시선들이 어떠했는지 고스란히 알 수 잇는 대목이다. 소심하면서도 나약하게만 보이던 그에게 갑자기 주어진 왕의 자리. 그는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도망치고 싶었을 게다. 왕위라는 신이 내린 자리는 그에게 짐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할 수 있었던 최후의 선택은 사냥을 마음껏 하며 그의 정신의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으로의 입성이었다. 일전에 듣기로는 루이 16세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지어준 궁전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보면 루이 16세에게 더욱 필요했던 공간으로 보인다.

 나약한 왕과 끊이지 않는 스캔들과 배고픔으로 인한 폭동이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백성들은 왕을 칭송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어느 순간 단절 될 것이라 믿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었기에 백성들은 투정 어린 눈으로 왕가를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존재에 대해 신뢰하고 있었다.

 루이가 1786 6월 셰르부르의 왕립 함대를 방문하러 갔을 때, 그는 여행 내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사람들이 그의 무릎을 꿇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선한 왕을 뵙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제 무엇도 바라지 않습니다.” –본문

모든 것들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고 삐그덕 거리는 찰나 어느 새 선한 왕을 뵙는다며 찬양하던 백성들은 점차 왕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각 계층별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도 문제였지만 자신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권력층의 모습에 그들은 점차 자신들의 주장을 외침에서 반란으로, 폭동으로 소요로,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2500만 명의 목소리가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국가와 국왕이 한목소리로 모든 계몽사상을 경합을 요구하지만, 소위 인기 있는 한 대신이 감히 뻔뻔스럽게 우리 생각을 봉인하려 하며, 거짓의 유통을 장려하려 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 –본문

그렇게 한 번 물꼬가 트인 자유와 평등으로의 외침은 제 3신분 대표자들과 시민들이 가세하여 왕에게 도전을 하게 된다. 조각상들이 부서지고 왕이라는 글자에 망치로 부시기를 시작한 그들은 결국은 자신들의 왕이었던, 그러니까 자신들의 신이자 모든 것이었던 루이 16세를 일개 백성으로 추락시키고 그를 기요틴 위로 세우게 된다

백성들이여, 나는 죄 없이 죽소, 나는 용서하오…. 를 남기고 사라진 루이 16. 막으려 하면 할수록 커져만 가던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요틴 위에서 마감해야 했던 그는 과연 아무 잘 못이 없었을까.

 

아르's 추천목록

 

『두 도시 이야기』 / 찰스 디킨스저


 

 

 

독서 기간 : 2013.07.26~07.30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약간은 구부정한 어깨와 백발머리를 한, 그와 대조적으로 검은색 선글라스에 카디건과 캐리어로 세심하게 색깔을 맞춘. 여기서 함정은 줄무늬 옷을 입고 있는 파자마라는 사실이다. 양로원에서 100세라는 성대한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알란은 창문을 통해서 당신을 위한 생일파티 따위는 버려두고서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게 된다. 대체 왜? 라는 궁금증과 한 세기를 산 노인이 떠나는 탐험과 같은 이야기에 끌려서 집어 든 책은 생각보다 꽤나 두툼하다.

 

 하기야 한 세기를 산, 살아있는 역사와 같은 이야기이니 이 정도로도 부족할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알란을 따라가다 보면 이 두툼함이 그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고개를 돌려 양로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곳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거처가 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꼭 여기서 죽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다른 때, 다른 곳에서 죽는다고 하여 문제 될 게 없지 않은가? -본문

 1905년에 태어난 알란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와 어린 알란을 두고서 정치적인 이유로 러시아로 떠났으며 그렇게 떠난 아버지는 결국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마 이 어릴 적의 사건은 알란에게 깊은 자국은 남긴 듯 했는데, 말미암아 그가 어느 것에도 소속되지 않기를 원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음식과 술만 있다면 어디든지 ok, 알란의 과거는 생각보다도 휘황찬란하다. 그는 그저 파자마를 입은 노인이 아니었다.

 

  전쟁이 유럽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대되는 동안 알란의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물론 기껏해야 하급 조수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아는 것을 써먹을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거기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흡수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니트로글리세린이나 질산암모니아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아이들 장난감이었다. -본문

 

어린 나이에 폭약회사에 취직한 알란은 그 누구보다도 폭약 제조에 있어서 두각을 드러낸다. 물기 하나 없는 스펀지를 바다 속으로 던져 놓은 것처럼, 그는 그 안에서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된다.

 

 한 세기라는 100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 역시 이렇게 많은 인맥을 쌓으며, 수 많은 나라를 누비며 다닐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과 소설에서나마 알라가 해줌으로써 뭔가 통쾌하면서도 유쾌한 느낌이 들었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피식 웃으며 읽게 되는 책, 아마 이것이 허무맹랑한 스토리 속에 담긴 힘인 듯 하다.

 

 알란은 자신이 나이가 듦에 따라 순진해지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은 원한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닌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도 여전히 알리스라는 이름의 저 끔찍한 인간이 자신을 깨우고, 여전히 저 끔찍한 죽이 차려져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어쩌겠는가.......? 백 살이 되려면 아직 몇 달은 더 남았고,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죽을 수 있으리라. -본문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처럼, 언제나 오늘에 익숙해져서 내일을 보낼 우리에게 알라는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치 그와 같이 살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제 끝났어, 라도 체념하는 그 순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과연 나는 오늘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묶여 있어야 하는가, 에 대해 읽는 내내 고민하게 만든다. 책상을 팽개치고 어디로든 떠나고프게 만드는 알란의 충동적인 이야기.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유쾌한 이야기였다.

   

아르's 추천목록

 

인생은 아름다워 / 조지 도슨저


 

 

독서 기간 : 2013.07.30~08.03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비비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처음 표지 속 여자 아이를 보고서 든 생각은 생경하다는 느낌이었다. 보통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혹은 그림을 보더라도 웬만해서는 이런 느낌이 잘 안 드는데, 뭐랄까. 겁에 질린 듯한, 그리고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마 혹은 내게 드리워진 그 시선을 치워줘. 여긴 내가 지켜야 하는 자리야, 라는 듯이 말하고 있는 듯한 이 책의 주인공인 도돌라를 보면서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느낌이 들었다.

 실제 책을 받아보고서는 생경함에 놀라움이 또 한 번 겹쳐진다. 660페이지의 두께도 두께이지만 겉으로 보았을 때는 여느 백과사전 못지 않은 위풍당당함이 드러나기에 읽기도 전에 정말 두껍구나, 언제 다 읽지.’라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지 채 2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림을 그려 놓은 듯한 아랍문자와 특유의 그림체를 보면서 역시나 낯설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체 하비비가 무슨 뜻이지? 라는 의문은 이 책의 마지막에서야 풀리게 되는데 여하튼 그런 낯선 것들에 한눈 팔리기 전에 도돌라에게 닥치는 첫 번째 시련을 마주하고선 울컥하는 마음에 다른 것들은 바라볼 새도 없이 빠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가난 때문에 팔려가야만 하는 작은 소녀의 이야기를 보면서, 여전히 조혼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과 그런 와중에 물론 어른들은 그러한 풍습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 가난이라는 굴레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이들을 지켜줄 수 없이 그저 책만 보며 한탄하고 있어야만 하는 현실이라니.

 무엇보다도 그런 어린 아이들을 자신의 어린 신부가 아닌 그저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그것이 결혼한 이들에게는 당연한 행위라는 듯 세뇌시키는 모습에서 울분이 터진다.

 갑자기 등장한 자객들에 의해 남편을 여읜 도돌라는 이란 어린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의 어머니 역시 가난으로 인해 노예가 된 사람으로 자신의 아들이 노예의 삶을 사느니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며 그의 생사 앞에서 외면하는 와중에 도돌리는 잠을 자신의 동생이라며 거둬들이게 된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얽히고 설킨 운명의 시계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켜야만 했던 도돌라는 비의 여신이라는 슬픈 운명 때문인지 그녀의 삶은 기고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사막의 마녀로서 잠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이 시간은 그녀에게 살아야 하는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마저도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오래지 않다. 고작 몇 년이었으니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그리며 떨어져만 살아야 했던 잠과 도돌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다시 함께하게 된다. 그들이 얼굴을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도돌라는 도돌라 대로 원치 않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야 했으며 잠은 중성 수술을 한 이후 그렇게 그들은 동생과 누나가 아닌 남편과 아내로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힘겹게 한 지붕아래 마주할 수 있게 된 이들에게 마냥 행복만이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도돌라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허덕이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이제 다시 잠이 보살피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미래에 대해 생각해 나갈 무렵 그들은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고 마는데 이는 어떻게도 풀 수 없는 문제이기에 잠은 그녀를 두고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고서 이 책의 제목인 하비비의 뜻이 등장하게 된다. 하비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 단어를 말하기까지 그들은 660 페이지라는 긴 시간 속에서 세상에 둘도 없이 가혹한 사건들을 견뎌야만 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가 누군가 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고, 어리다는 이유로 인간이 아닌 판매하는 물건처럼 취급되어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참 아리기만 하다. 마지막 순간에도 다행이다, 라는 생각보다도 어쩜 이리 가혹할까 라는 생각만 들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하비비, 라 부를 수 있는 서로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긴 하다만 제발 이 지구상에 더 이상의 잠과 도돌라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든지 하비비,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그들 스스로에게 있기를 소망해본다.

   

아르's 추천목록

 

『나 누주드 열 살 이혼녀』 / 누주드 알리, 델핀 미누이저 

 

 

 

독서 기간 : 2013.08.05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