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보고서, 20대 초반이라는 나이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아슬아슬하면서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남아있는 기억만으로는 이 모든 이야기를 이해했다기 보다는, 이럴 수도 있구나, 라며 안타깝게 보게 되었는데 그 이후 '화양연화'라는 이 단어는 왠지 모르게 아련하고 씁쓸하게만 남아있었다.
화양연화
花樣年華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또는 여자의 가작 아름다운 때 -본문
그리고 10여 년 후 다시 만난 이 책을 통해서 마주한 '화양연화'는, 어느 새 그 안의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10년을 주기로 긴 터널을 지나오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는 이제 막 두 번째 터널을 지나 세 번째 터널의 문턱을 넘어섰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이라는 말처럼, 10대와 20대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니 눈 앞에 있다 한 들 그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것들에 한 눈 팔려 지나왔던 시간들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지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세월의 경계를 거쳐 온 사람은 말합니다. 20대보다 30대의 세상이 더 넓어졌고, 30대보다 40대의 인생이 더 즐거웠고, 40대보다 50대의 사랑이 더 행복했다고......-본문
이미 3번째 터널을 지나 4번째 터널 앞에 와있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뭐랄까, 읽는 내내 참 편안하면서도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물론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우리의 일상이 마냥 행복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인생이라는 것이 동화 속의 유려함만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맛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사색이란 내 삶이 얼마나 감사한 일로 넘쳐 나는지를 헤아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꽃향기를 맡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도, 날 걱정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서 thank, '감사'의 어원이 think, '생각'에서 온 것일까요? -본문
그녀가 살아오는 동안에 마주했던 책이며, 음악, 풍경 등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담아 내고 있었다. 읽는 내내 아무도 없는 초원 위에서 편안하게 이 책을 읽으며 유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도 그렇고 이별도 그렇고, 순간순간 마주하는 난제들도 그렇고. 때론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평화로운 일상들만 가득할 것 같아 이 세상에 오롯이 혼자 떨어진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타인의 삶에 대해 보면 그들의 삶에도 그늘이 지기도 하고 때론 막막하게도 낯선 일들이 펼쳐지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 모든 것이 비슷하게, 서로 아등바등 하며 사는 일상.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피우는 화양연화가 아닐까?
"왜 사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눈물 한 방울 흘리려고 산다."
자꾸 슬퍼지는 것, 자꾸 눈물이 나는 것, 그것은 곧 우리가 생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울컥 치미는 눈물, 그것이야 말로 우리 생의 기쁨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울고 계신가요? 지금 흘리는 그 눈물은, 당신 삶의 상처에 붙이는 아름다운 반창고 입니다. -본문
그 때에는 그 찬란함을 보지 못하고 타인의 것만을 쫓아 오던 시간을 지나, 이제 나를 바라볼 여유를 갖게 된 듯 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하게만 보이는,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현재의 나를 사랑하고 만족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지나버린 시간 속에 나를 가두어 가혹하게 만들지 않고, 지금의 나를 즉시하면서 나를 사랑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지금의 모습에서 나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
그러나 스무 살 시절은 바닷속을 달리는 등 푸른 고등어처럼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던 시절이었음을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됩니다. 산책의 기쁨도 알지 못하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넬 줄도 몰랐던 그 시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스무 살..... 다시 스무살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를 베빈다는 노래합니다.
(중략)
내가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오직 다시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본문
읽어 내려가는 문장문장이 더해질수록 가슴이 따뜻해지고 생의 가장 젊은 오늘을 사랑하며 지금이야말로 화양연화, 구나를 깨닫게 해주는. 이 따스한 책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입니까, 라는 질문 대신, 당신은 지금 화양연화에 살고 있군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모두 그 아름다운 시간 속에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