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선가 읽을 글귀에서 서커스 단에서 코끼리를 묶어 두는 방식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어마어마한 덩치의 코끼리에 묶인 가느다란 철사는 너무도 미약하게 보이지만, 코끼리는 그것이 엄청난 족쇄라도 되는 듯 벗어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유인 즉, 새끼일 때부터 자신의 발목에 감긴 철사는 당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인식한 뒤 자신의 몸이 커간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하고 그 철사는 평생 끊어 낼 수 없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짧은 글 속에서 코끼리 뿐만 아니라 사람들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그저 나의 운명이라는 듯이 체념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책 속의 가브리엘을 보면서 그 때 읽었던 코끼리가 떠올랐다. 물론 그의 경우 이 코끼리보다 더 가혹했지만 말이다.
“아빠! 사람이 나왔어! 이제 나와도 돼!”
아이는 남자가 친구를 돌보고 있는 하류 쪽을 눈으로 훓었다. 이제 아빠가 헤엄쳐서 저기 어디쯤에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는 가버렸다. 가브리엘의 영웅은 사라졌다.
구슬치기도 하지 않고, 작별 인사도, 포옹도 없이.
그냥 가버렸다. –본문
자신을 언제나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아버지는 한 순간의 사고로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의 가브리엘은 아버지의 죽음이 무엇인지 당시 제대로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점, 사건 당시 아버지가 구하려 했던 그 누군가는 살아 남았지만 그 대신 강 속으로 아버지는 사라졌기에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계속해서 슬픔과 자책 속에서 살게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강과는 전혀 상관 없는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다. 모험이라는 것은 전혀 없는 평범하고 안정된 일상 속에서도 아이는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명 좋지 않은 날들의 연속 속에서 줄타기를 하듯 위태위태하게 하루를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회색 빛의 날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의 인생에도 조금씩 밝은 햇살이 드리우게 된다. 이웃의 얼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콜링스위스 선생님과 그의 친구 지미까지. 그들은 천천히 가브리엘이 다시금 강과의 만남을 할 수 있도록 그를 이끌고 있었다. 아버지를 삼켜 버렸던 강을 마주하기까지, 그는 꽤나 10여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나보다 큰 무엇과 대면할 때는 항상 그런 느낌이 들 거야. 한편으론 그래서 삶이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해. 우리가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것들만 품고 산다면 아무것도 누릴 수 없어. 모험도 없고. 운명도 없고. 목적도 없지. –본문
강을 따라 여정이 시작되면서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마주하게 되고 강에서 가브리엘에게만 보이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는 점차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서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의 회귀를 준비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마주하는 장면은 이 소설 속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문득내가 가브리엘이었더라도 아버지 대신 살아남은 그 대상을 평생 원망하며 지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나의 아버지 역시 현재 지금 나의 곁에 있을 텐데, 라는 분노에 휩싸여 있을 무렵, 에즈라는 나와 가브리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아. 바위가 떨어져.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도 없고 떨어지는 걸 보지도 못하지. 다만 계속해서 흐를 뿐이야. 움직이는 거지…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그런 경험은 인생의 풍경에 아름다움을 더하게 되네. 모든 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어. –본문
제이컵을 보고 과거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는 대신 자네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는지 상기할 수도 있지 않겠나. 제이컵 필딩은 자네 아버지의 이타적인 희생의 살아있는 증거일세. 게다가 이보게. 제이컵이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면 태비사도 이 강가에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할 게 아닌가. 강이 우리는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해주었다는 것을. 그래서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걸세. –본문
누군가를 탓하며 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한 과거에서 허우적거리거나 혹은 왜 나에게만 이토록 가혹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에 관해서만 빠져 지금의 나의 시간들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가브리엘에게는 시기 적절할 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가 바른 길로 갈 수 인도해 준 것도 있었지만, 우리네 삶을 보아도 오롯이 혼자 살아가지는 않기에, 이야기를 읽어내려 가면서 이렇게 살아야 나의 삶을 쟁취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브리엘은 해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늘 더 나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 처음부터 자신의 목적지라고 생각했던 곳의 안락함을 과감하게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대열에 그도 합류했다. 더 이상 두려움과 슬픔과 원망의 사슬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의 자신이 아닌 미래의 자신을 부여잡았다. –본문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틀을 깨고 나오는 것. 비정형화된 타인이나 신에게 삐뚤어진 자신의 삶의 비관하며 낙담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며 그 안의 진심을 마주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 모두의 강을 뛰어 넘고 진정 강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하는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