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인덱스 테이프를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한 페이지를 넘기면 그 안에 또 뜨악 할 만한 현실들이 쏟아져 내리니,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이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이것이 내가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에 서글픔마저 밀려온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너무나 불합리한 일들이 만연해 있다는 것에 대한 불쾌감과 이 현상들에 대해서 나는 너무도 모르고 있었구나, 라는 자괴감이 함께 더해져 페이지가 더해질수록 가슴 속 뜨거운 것이 밀려 올라오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건 이 모든 것들을 알아야만 하는, 더 이상은 침묵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종종 집안에 판검사 한 명은 있어야지,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고서는 으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라고만 여겼다. 법대에 대한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만큼의 성적도 안됐으니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었고 아직까지는 별 문제 없이 지내고는 있다만 만약에 법적인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접한 사건들의 예를 보면 너무나 엉터리 같은 기소가 있었고, 누명 쓰고, 나중에 항소심에서 뒤집어진 사례를 많이 보거든요. 그런데 1심에서는 안 그렇단 말이예요. 1심 판결 자체가 엉터리로, 형식적으로 진행되다 보니까 대부분의 경우 ‘항소심에서 붙자.’ 이렇게 되는 거예요. 1심에서는 돈이 없고 가난해서 국선 변호인을 썼던 사람도 항소심에서는 국선 변호인에게 의뢰를 못해요. 땡빚을 얻어서라도 전관을 찾아가는 거죠. –본문
전관예우금지법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여 몇 억 원씩을 지불하고 그들을 데려 가려는 로펌의 이야기는 여전히 남아있는 앙금의 씁쓸함을 맴돌게 한다. 대체 몇 억 원씩 지불하고 그들을 데려가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그늘 속에서 울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그들을 위한 리그에 차마 끼어 들 수 조차 없는 나는 그저 허탈할 뿐이다.
로펌은 전관들 수억을 주면서 데려가는데요. 그들에게 왜 수억의 돈을 주겠어요? 재직 기간도 몇 달 안 되는 것 같은데요. 그게 아무런 해악이 없겠냐는 말이죠. 모든 소송 건에는 당사자가 있단 말이예요. 피고일 수도 있고, 원고일 수도 있어요. 전관들에게 수억을 주면서 어떤 것인가를 했다면, 전관을 살 수 없었던 상대방에게는 엄청난 불이익이 가해졌을 거란 거죠. 이게 우리 사회의 정의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어요. –본문
혹자는 그럴 수 있다. 그런 혜택을 누리고 싶다면 그들처럼 당신도 공부해서 그 자리에 오르라고. 그리하여 그 안에 모든 것들을 당당히 손에 넣으라고.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그리하겠다. 하지만 이 내용에서의 주는 그들이라는 리그 안에 있던 아니던, 예를 들어 축구 선수이든 아니든 누구든 경기장에 있는 한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듯이 법 역시도 그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과연 이곳은 누구를 위한 방패를 세우고 있는 것일까?
특히나 이 책 속에서 그 동안 지나치거나 혹은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접할 수가 있는데 법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상식으로도 통하지 않는, 무언가 합리적이지 않다, 라는 느낌들이 많이 들었다.
어느 가정집에서 살인사건이 발행했다. 현장 보존을 위해서 그 가족들은 경찰들이 오고 수사를 하는 동안에 그 장소를 보존해야 한다. 아무리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것들을 보았다고 한들 현실에서 이 끔찍한 사건을 목도한 이들에게는 그 현장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현장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절차가 지난 후, 집안에 남아있는 그 흔적들. 그것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일까?
지 : 살인 사건이 났을 때 경찰들이 가고 나면 집 안의 피도 본인들이 닦아야 한다고 하던데, 맞나요?
표 : 현재는 그렇죠. 보도가 나니까 대신 닦아주겠다고 민간단체에서 자원봉사 신청했다가 너무 힘드니까 중단되고 없어졌어요. 외국에서는 그런 것들을 전문으로 하는 용역 회사가 있어요. 국가에서 범죄 현장 치우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비용을 주는 거죠.
지 : 까다로운 것을 둘째 치고, 범죄 피해자 가족이 그 피를 닦고 치운다는 것이 그냥 치우는 청소의 의미가 아닐 텐데요. –본문
살인의 추억이나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등 여전히 미궁 속에 사건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토록 과학이 발전한 나라가 왜 여전히 사건들을 해결하지 못할까, 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미국 드라마 CSI에 너무 심취해 있어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CSI와 같은 인재를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또 하나 커다란 문제는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질 때면 살며시 고개를 들고 나오는 ‘공소시효’에 관한 문제이다. 현재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다고는 하나 과연 이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아까 말씀 드렸던 반인륜적 범죄, 살인, 아동 대상 범죄라든지, 성폭행이라든지 이런 부분에까지 공소시료를 적용하는 것은 사실은 법적 안정성이라는 미명 하에 범인 찾기를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중략)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인권유린적 범죄나 살인, 아동 대상 범죄나 성폭행 등은 공소시효를 안 두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고민이 없었던 거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개개의 국민, 특히 범죄 피해자가 겪었던 고통과 그에게 안겨진 피해들에 대해서 국가 단위에서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오직 행적 편의만 생각해 왔던 거죠. –본문
공소시효가 있기 때문에 증거를 계속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는 시스템. 언젠가는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문제로 남겨두는 이 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체계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는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사회 전체를 위해서 한 사람의 희생쯤이야’ 하고 치부해왔던 경향이 있는데,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 ‘사회 전체’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애매했을 뿐 아니라 대개 권력자를 위한 것인 경우가 많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닐까? –본문
영국에 있던 표창원 교수가 국내로 들어오고 나서 그의 DNA를 채취하러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유인 즉, 그가 있었던 주변에 강간 사건으로 희생당한 여고생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함이었는데, 영국에서 한국까지, 단 한 명의 용의자를 끝까지 추적하기 위해서 이런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부러우면서도 과연 역으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조치를 취했을까, 란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케이스를 찾아보자면 아무래도 이태원 살인 사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둘 중 한 명은 살인범인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사법부. 현재 피의자로 지목된 그들은 우리나라의 사법부의 공정성을 꼬집어 자국민을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국제적인 망신으로 개탄스러울 정도이다.
이러한 사법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며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이다. 힘 있고 돈 있는 가해자들에게는 더 없이 약한 처벌을 내리면서 반대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매몰찬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은 과연 공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 혹은 가장 비난받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권리를 보호받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얼마 전에 수십 명을 학살했던 테러범 블레이비크에게도 유기징역형을 내렸단 말이죠. –본문
법치국가의 테두리 안에 모든 국민들이 있다기 보다는 그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변형되는 테두리의 모습이 과연 적법하고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 그야말로 정도란 것일까.
이 책 안에 있는 것이 진정 내가 있는 서 있는 곳이라니, 어디를 향할 지 모르는 분노가 차 오르면서도 그만큼 내 스스로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해 본다.
이 안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은 상당히 위험한, 아니 아슬아슬한 내용들이 많다. 현재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대한 내용에서부터 과거의 신창원의 범죄에 대한 내용들까지 구태여 가리지 않고 모두 드러내고 있기에 읽는 동안 이렇게까지 이야기 해도 괜찮을까? 라는 걱정이 될 정도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이 안의 이야기를 좌파니 우파니 하는 선 긋기가 아닌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나부터 생각을 제대로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 책을 통해서 더 이상은 외면하거나 방관하지 않는, 진정한 내가 바라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싹 틔울 수 있는, 좀 더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