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그 안에 있는 ‘우리’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그 뜻을 구하는 ‘철학’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작아지는 게 사실이다. 어렵다, 딱딱하다, 난해하다 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철학과의 조우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쉬이 친해지기 힘들게만 느껴진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뉘어있으며 각 장에는 부제가 붙어있다.
1. 형이상학, 무엇
2. 인식론, 무언가에 대해 알 수 있는 것
3. 가치, 무언가에서 중요한 것
4. 언어와 의미, 무언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 –본문
‘철학가게’라는 제목에 매료되어 이런 가게가 있다면 대체 무엇이 있을까? 라는 호기심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볼 것만 같은 호기심이 이 책을 선택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는데, 사실 위의 4가지 부제를 보는 순간 또 다시 얼어붙어 버렸다.
‘형이상학’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느껴지는 철학이라는 빠져나갈 수 없는 그 묵직한 느낌은 중, 고등학교 때 마주했던 것과 다름없이 여전히 버겁게만 느껴진다. 과연 이 책 읽어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계속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처음의 그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내려 어느 새 이 책 속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여느 철학을 다루고 있는 책과는 다르다. 철학자들을 논거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어떤 것이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빼곡히 적혀 있는 책들과는 달리 이 책 속에서는 상황에 따라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철학 속에 등장한 도넛 하나. 도넛을 보면서 안에 어떤 크림이 들어있다거나 혹은 크기가 어느 것이 더 크다든가, 때론 가격이 얼마인가 만을 고민했던 나에게 이 책 속에서는 도넛 자체가 아닌 도넛이 품고 있는 ‘구멍’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단 한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던 도넛의 구멍. 그것은 철학이란 어려운 말들과 복잡한 문장으로 구조화되지 않아도 우리 주변 곳곳에 충분히 잠식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다.
구멍이라는 이 하나를 가지고 꽤나 오랜 동안 씨름을 해 본다. 구멍은 도넛의 일부인가, 라는 질문에서부터 일부이다, 아니다, 라는 찬반을 가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구멍이 실재 하는 것인 것, 라는 질문과 그 다음페이지에 묻고 있는 ‘우리가 도넛을 먹으면 구멍도 먹는 것일까요?’ 라는 우스꽝스럽지만 또 생각하는 질문들이 계속 되고 있다.
조금 더 페이지를 지나다 보면 아이스크림에 대한 물음 역시 나오게 되는데,
1. 파란색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무슨 맛일까?
2.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은 무슨 말일까?
3. 아무 맛이 안나는 아이스크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무 맛이 안 나는 음식이나 음료가 존재하는가?) –본문
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파란색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민트초코 맛일 것 같고,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은 어린 왕자에게 그려줬던 검은 상자 속 양과 같이, 자신이 가장 원하는 아이스크림 맛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 단순하게만 세상을 바라보는 구나, 라며 피식 웃음이 난다.

가장 재미있던 질문들은 ‘진의 관점’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교통사고의 80%는 청바지를 입은 사람 때문에 발생했고 60%는 음주 운전자 때문에 발행했다는 통계를 시작으로 질문이 시작된다. 음주 운전자보다도 높은 수치인 청바지를 입은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청바지를 입지 말라는 진의 충고는 어불성설처럼 느껴진다. 청바지가 그만큼 대중화 되어 있기에 청바지 입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지 청바지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질문은 다시 더 확장되어 성공하는 사람들의 집에는 책이 많다는 통계가 있는데 성공하기 위해 집에 책이 많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있다. 진의 관점과 더불어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 점점 더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혼자 읽기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 책은 혼자 읽기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그렇게 하면 훨씬 더 즐거우면서도 더 많은 생각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이라는 딱딱하면서도 진부할 것만 같은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면 이 ‘철학가게’로 누구든 초대하고 싶다. 이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어느 새 철학은 당신의 머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는 재미있는 놀이가 되어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