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계로 교차지원을 하면서 선택과목을 '경제'를 선택했고 대학에 입학 할 때도 '경제국제통상'으로 지원을 했으니, 어찌 보면 '경제라는 것에 대해서 남들보다는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 말처럼 그 때 당시 좋든 싫든 들어왔던 경제 관련 용어들이나 전공 기초들은 지금까지도 살아가는데 있어서 꽤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문제는, 다른 분야의 것들도 마찬가지로 지식의 깊이가 습자지 만큼이나 얇은, 그야말로 살 얼음판처럼 퍼져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고 있고 지금 이 순간, 여기저기서 폐해들이 들어나고 있는 그 순간들을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남의 일이겠거니, 혹은 내가 별 달리 생각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해결되겠거니, 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요-공급 원칙이나 화폐의 유동성이 많아지면 물가가 상승한다, 등의 1차원 적인 접근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나의 경제 관념이란, 자본주의 자체를 구겨 놓은, 폐지와 같은 지식이나 다름 없었다.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화폐의 유동성이 많아지면 물가가 상승할 수 밖에 없는 그 원리를 말이다. 문제는 그렇다면 이 유동성은 어떻게 하여 많아지는 것인가? 에 대한 원론적인 물음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지금까지 나는 화폐의 유동성이란 그저 한국은행이나 미국의 FRB에서 생산해 내는 화폐 자체를 찍어내는 것이 늘어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답으로는 유동성의 증진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과연 돈은 어느 정도까지 불어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100억을 예금했다고 가정해보자. 정부가 지급준비율을 10%라고 정해줬다면, 은행은 그 중 100억의 10%인 10억만 놔두고 나머지 90억을 또 다른 B은행에 대출해 준다. B은행은 다시 10%인 9억을 놔두고 81억을 C은행에 대출할 수 있다. C은행은 다시 여기서 10%를 놔두고 D은행에게, D은행은 다시 E은행에게, E은행은 다시 F은행에 계쏙해서 대출할 수 있게 된다. (중략) 이렇게 있지도 않은 돈을 만들어내고 의도적으로 늘리는 이런 과정을 우리는 '신용창조'. '신용팽창'등의 용어로 부른다. -본문
100억이 1천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로 늘어나는 동안, 이 일련의 과정의 중심에 있던 '은행'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숫자를, 아니 돈이라는 매개체를 가지고 사업을 하고 있는 은행이라는 곳에 대해서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돈을 맡기는 순간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할 것이라 믿게 되고 그들 모두는 우리의 돈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정예의 요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을 것만 같지만, 이 책 속에, 아니 실제 그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금융계에 있는 은행이라는 이름 역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윤 창출에만 목을 매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못하고 있는 이들은 그 곳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개미 지옥의 모습이었다.
은행, 헤지펀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덕 관념이 전혀 없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오로지 돈을 버는 데만 집중한다고요. 의사들이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금융권에서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어요. 은행가가 되는 사람들이 공식적인 선서를 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죠. -본문
자본주의라는 이 구조가 이어가기 위해서는 빚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으며 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돈을 쓰게 만드는 구조 속에 우리는 속해 있다. 그리하여 소비를 끝없이 권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는데, 이것은 심리적인 역습을 넘어서 고도의 마케팅화 되어 있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 사야지만 행복을 느끼는 듯한 착각, 그 풍요에 살아야만 우리는 행복을 느끼도록 조정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쇼핑은 패배가 예정된 게임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정말로 행복하고 싶다면, 소비에서 행복을 착지 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 안의 감정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본문
아무리 복잡한 그래프를 통해서, 때론 모든 종속변수들을 다 고려한 함수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의 기반을 연구한다고 해도 늘 우리가 놓치는 문제들이 등장하게 된다. 케인스의 거시 경제 관점을 지나서 하이에크의 신자본주의를 거쳐 온 지금의 모습에서도 또 다시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모두가 잘살게 될 거라는 아담 스미스의 예언도 틀렸고, 혁명이 일어나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예언도 틀렸다.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케인스도, 시장을 믿어야 한다는 하이에크도 이제 더 이상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있다. 모두들 심혈을 기울여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대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는 온갖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본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문제가 많은 자본주의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경제 관념을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다. 이 고장 난 자본주의를 제대로 인지하고서는 우리에게 맞는 수정된 자본주의로 고쳐서 쓰자는 것인데 마지막에 가서는 '복지 자본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자본주의라는 것을 누구나 접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감히 묻고 싶다. 당신이 알고 있는 자본주의는 진짜인지 말이다. 소득불균형에서부터 복지의 불균형 등 뜨거운 감자고 대두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문제점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근본인 자본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이제까지 당신이 알고 있던 백의의 천사와 같던 자본주의는 허상이며 지금부터라도 곪아 터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본주의를 제대로 마주해야 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