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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국이 종주국을 위해 예물을 바쳤다는 옛말을 넘어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위해서 선물은 바치는 의미로 전락해 버린 책의 제목을 보면서, 얼마나 스펙타클한 이야기들이 이어질지에 대한 기대감과 또 왠지 모를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유치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우에서였다.
걱정과는 달리 읽는 동안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린 것 같다. 팔팔이의 몸 안에서 나왔다는 사리를 보면서, 때로는 철 없이 소녀시대를 보러 떠나버린 조공원정대의 모습에서, 그러면서 자신의 자식에 대한 그리고 미순이에 대한 책임 의식을 저버린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이 감돌곤 한다.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 주는 곳이 없어서 결국은 피자 배달원이 되어 버린 이의 앞에 일어나는 민방위훈련과 자신의 몸을 자해하면서 돈을 벌어들여야만 하는 헤드기어 맨까지.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는 우리에게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참혹한 현실이면서도 그 현실은 또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벗어날 수 없는 오늘의 연속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얼마 전만 해도 농사지을 땅이 없는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공단에 가서 취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단에 가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공장에서 우리를 뽑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까지 멀쩡하게 돌아가던 공장이 아예 없어져버리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설명하는 그 긴 경기 침체의 이유 중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본문
사지 멀쩡한 이들이 할 일이 딱히 없다는 현실은, 소설이라는 허구 속의 세계마저도 갑갑하게 숨을 조여오는 듯 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사태로 인해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이어졌으며 그로 인해 우리나라의 경제마저도 아등바등하고 있는 속에, 그 안에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젊은 이들은 오히려 이 사태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무엇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젊은 날의 나날들은 안녕 할리 속에서도, 조공원정대나, 어느 추운날의 스쿠터에서도 마주할 수 있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도전해보지만 언제나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영어만 하면 취업이 될 수 있다며 이 땅에 들어온 외국인들을 바라보며 스쿠터를 끌고 25분 내에 배달을 해야만 하는 이는 이토록 비참해 보이는지. 지신의 몸에 남을 상처보다 스쿠터에 남을 상처를 더 걱정해야만 하는 이들은, 젊음이라는 이름 하에 험난한 이 모든 고생을 당연하듯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란 생각에 씁쓸함이 계속되곤 한다.
처음 철거 용역 제의를 받은 날 나는 헤드기어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초능력 인간의 맞수인 초능력 악당으로 전락하는 순간을 맛봐야 하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적어도 자해 공갈을 하는 동안에는 헤드기어를 쓰지 않아도 됐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헤드기어 맨이 나쁜 놈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미 펀치 드렁크에 걸린 나로서는 철거를 할 때 헤드기어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이제 헤드기어 맨을 나쁜 놈으로 생각하고 손가락질을 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나는 철거 때문에 엄마를 잃은 기억까지 있었다. 이래저래 나로서는 이 일이 온당치가 않았다. 하지만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살아서 내 자식을 키워야 했다. ?본문
그까지 돈 몇 품에 꿈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꿈을 향해 달려가라는 조언들이 청춘들을 향해 계속해서 쏟아지지만 우리는 돈 몇 푼을 위해서 오늘도 종종 거리며 일을 하고 있다. 오늘 당장의 끼니를 위해서, 때로는 가족을 위해서, 또 내 아이에게는 이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서 나를 버리고 오늘도 전장으로 나가는 듯한 그들의 뒷 모습은 아련하면서도 어디선가 많이 마주한 모습들이다.
100명 중 단 3명만이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곳의 면접을 볼 수 있다는 요즘 세태 속에서 조공원정을 떠났던 이들의 어처구니 없던 꿈은 온대 간대 없이 현실과 타협하여 자신들의 바람을 내려 놓는 것을 보며 다행이라고만 생각해야 할까. 그저 소설을 소설로 웃고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고 나서도 밀려드는 이 씁쓸함을 돌이켜보며, 그저 한낱 꾸며낸 이야기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언제쯤 도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다 또 한번 한숨이 나곤 한다.
너무도 우리를 닮아있는 듯 한 그들을 보며, 그래서 그들에 대한 비난보다도 왠지 모를 연민이 먼저 느껴졌던 이야기였다. 그깟 돈 몇 푼에 오늘도 현실 속에 바둥거려야 하는 오늘을 그저 어른이라면 당연히 익숙해져야 할 내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 / 아사이 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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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간 : 2013.11.22~11.23
by 아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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