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동화, 모르는 이야기 -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동화 50
김남규 지음, 민아원 그림 / 슬로래빗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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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만화 둘리 속 고길동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순간, 어른이 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어느새 서른이란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나에게 있어서 동화는 어린 시절에만 존재했던 판타지와 같은 세계처럼 느껴진다. 갖은 고난 끝에 도래하는 것은 늘 해피 엔딩이던 이야기가 이 세상의 모습인 것처럼, 어릴 때는 세상은 그렇게 따스한 곳이라 생각했지만 어른이 되어 두 눈에 비친 세상을 보노라면 모든 것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것이 혼탁해져 버린 나의 두 눈이 문제인지, 진정 세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동화는 이제 나의 것이 아니라며 점점 멀리하고 있던 와중에 동화를 보는 새로운 눈이라는 문구에 동해 이 <아는 동화 모르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왜 나는 늘 동화를 세상이 만들어진 틀로만 봐왔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스치게 된다. 동화라는 이름 안에서 풍기는 정해져 있는 틀의 교훈과 이 안에서는 이러한 점을 느껴야 해, 라는 것이 정해져 있던 것처럼, 나의 유년 시절의 동화는 틀에 박힌 동화로만 남아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만약 그 거위였다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을 거야. 억울하게 죽어서가 아니야. 아무 쓸데 없는 황금이나 낳는 거위, 사실은 생명을 낳지 못하는 거위라서 슬펐을 거야.”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아. 황금 거위를 바라는 이 세상에서, 부디 넌 생명을 낳는 거위가 되길 바랄게.” -본문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동화를 읽으며 탐욕스런 인간의 욕망의 모습과 그 욕망의 무게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했던 거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하루 한 알의 황금 거위 알로 만족했더라면 그 주인은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제 손으로 자신의 부를 걷어차버린 그를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며 과유불급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저자는 거위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매일 황금알을 낳는 자신의 모습을 불행이라 여겼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인간의 눈으로만 바라보았던 이 동화 속에 거위는 늘 가련한 피해자의 모습으로만 받아들이며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조차 없던 나에게 다른 거위들과 같이 거위 알을 낳지 못한다는 사실은 거위에게 있어서는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생각해본 것이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필요도 없는 황금알을 매일 낳는 모습이 그에게는 또 하나의 괴로움일 수도 있었을 텐데 동화를 읽으면서도 황금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엄지공주가 자기 인생을 위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다니면서 그녀의 인생이 흘러가는 동안 그녀가 한 일은 고작 우는 것뿐이었어. –본문

 어릴 적 <엄지공주>란 이야기를 보면서 손가락만큼 작은 그녀의 이야기가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작고 가녀린 그녀의 앞에 등장하는 풍뎅이나 두꺼비는 갑작스레 등장한 불청객처럼 느껴졌고 결국 꽃나라 왕자를 만나 결혼하는 그녀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나의 기억 속 엄지공주의 전부이다.

 그런 나에게 있어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숱한 고난 속에서 엄지공주가 한 것은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말이다. 자신의 앞에 닥친 모습을 보면서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자신이 있었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 따윈 없이 그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그저 안쓰럽게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나 역시도 삶을 그런 자세로 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던 동화라고 믿고 있던 나에게 저자가 들려준 것은 이전의 동화가 아닌 전혀 색다른 느낌의 것으로 그저 보여지는 것만을 전부라 믿고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 줄 알고서는 다른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비춰보게 된다. 내가 알고 있던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전해주는 실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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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신동흔저


 

 

독서 기간 : 2015.02.13~02.1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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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3 - 작은 시도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스몰 빅의 놀라운 힘, 완결편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외 지음, 김은령.김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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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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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시도가 가져오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오기는 했다만 그 실체, 그러니까 방법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무엇이라 확신할 만한 것들은 모르고 있던 나로서는 그것이 있다는 것만을 짐작할 뿐 그 주변만을 맴돌며 방법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두리뭉실하게 넘기곤 했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폭풍우가 일어날 수 있다는 나비효과와 같은 일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그렇다면 그 효과는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에 대한 의구심을 안고서 이 책을 마주하는 나에게 저자는 매 일상 안에서 마주하는 순간순간의 기회가 앞으로의 일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사례들을 통해 전해주고 있었다.  

 최근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제약 회사의 영업사원이 기존 제품을 오랫동안 처방해온 고객을 만난 상황을 생각해보자. 효과나 안정성 측면에서 더 나은 신제품이 아닌 기존의 경쟁사 제품을 처방하고 있는 의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왜 우리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선호하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중략)
 
선생님, 그 제품을 사용해오면서 좀 더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었는지요?”라고 물은 뒤, 고객이 아쉬워하는 점을 잘 들어두었다가 신제품의 장점과 연결 지어 설명하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본문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해야 할지 아니면 저렇게 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는 지금이 선택이 훗날 어떠한 결과로 도래하게 될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 그저 지금의 시간들을 흘러 보내고 있다. 위의 제약 회사 영업회사의 경우도 누구나 왜 타사 제품에 대해 더 선호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타사 제품에 대한 좋은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편했던 점을 상기시키게 함으로써 그 제품에 대한 선호도를 무의식 중에 낮추며 동시에 타사의 제품에 대해 부족했던 점을 어필하며 자사의 제품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하는 것인데 그야말로 잠깐의 말 한마디가 너무도 다른 결과를 끌어올 수 있다는 것에서, 그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기회들을 놓쳤던 것인가, 란 생각에 일순간 아득함이 밀려온다.

회사에서 시간 엄수를 강조하고 업무 효율성을 증진시켜야 하는 임원은 회의를 늦게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만약 직원들이 시간을 어기는 경우가 너무 자주 일어나고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임원의 메시지는 늘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직원의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반면 직원들이 약속에 늦는 것을 별로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면 늦게 오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본문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대중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려 하는 모습들을 기반으로 하여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이들에게 동네의 주민들의 몇 %는 이미 세금을 납부했다는 문구 하나만으로 세금 납부를 독려한다든가, 자신과 동일한 이름의 또 다른 이가 투표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설문조사의 결과는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남들과 비슷하게 가려는 움직임 외에 남들과 다르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을 수 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하려는 대상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알고 그 이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관계를 오래 이어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거나 솔직하고 진솔한 대화를 피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중요한 관계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오래된 관계를 유지하려다 오히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희석되기도 한다. 관계가 오래되면 어떤 영역에서는 더 현명해지지만, 그 현명함이 꼭 관계를 넓혀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이라도 지속적으로 솔직한 교류를 이어오지 못했다면 상대의 선호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본문

 가장 기억에 이야기는 오래된 지인 혹은 동료라고 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오히려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 기회들을 스스로 박탈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곁에 오래 머문 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이 막연한 믿음이 오히려 서로에 대해 묻지 않고 그러려니, 한 채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동료를 묶어서 한 팀으로 하기 보다는 경력자와 신입자를 한데 묶어서 팀으로 활동하는 것이 시너지효과가 더 잘 일어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신입자는 경력자를 통해서 그 동안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고 경력자는 신입자의 눈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1 2조의 조합이 탄생되게 되는 것이다.

 52가지의 설득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책에 대해서, 가격은 없지만 이 책에 대해 꼭 필요한 이라면, 한 가지의 설득에 대한 내용에 지불한 비용을 생각하면 이 책값에 대해서 더 많은 돈을 흔쾌히 지불하게 될 것이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조삼모사와 같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당연히 그의 이야기대로 나는 따라가고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전해주어야 할 기부금의 액수에 대해 묻는다면 전체 금액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닌 한 개인에게 기부할 금액을 물어보는 것이 더 많은 기부금을 모을 수 있는 셈이다. 전체보다는 하나에 있어서 우리는 그 비용은 별로 크지 않게 생각하니 말이다.

 한 번의 날갯짓이 과연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무한한 느낌표로 다가오게 된다. 그 동안 이렇게 말했다면 더 좋았겠구나, 라는 반성과 함께 앞으로는 이렇게 말하면 더 좋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계속해서 전해주는 이 책을 틈틈이 옆에 두고 다시 꺼내 봐야 할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이토록 간단한 것들이었다니. 비밀을 알고 나면 쉬이 보일 세상의 전과 후는 너무도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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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힘 / 커트 모텐슨저


 

 

독서 기간 : 2015.02.0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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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보
플로랑 샤부에 지음, 최유정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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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도쿄산보>란 책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를 해야 할까. 도쿄 여행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행에 관한 에세이도 아니고, 도쿄란 곳을 여행하는데 있어서 가이드가 되어 주는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쿄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 책은 이전에는 만나 본적 없던 독특한 느낌의 에세이로 프랑스 인의 눈에 비친 도쿄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그가 바라본 도쿄를 오롯이 옮겨 놓았다기 보다는 그의 눈에 투과되고 그의 생각들이 조합되면서 오롯이 그의 눈에 비친 도쿄가 펼쳐지고 있고 그 생경하면서도 낯선 풍경은 어디서도 본적 없는 도쿄를 전해주고 있다.

일본에는 별다른 벌레가 없을 것만 같던 나의 상상은 그의 신랄한 그림 속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다양한 벌레는 그의 거처를 침투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노라면 도쿄에 이런 일이, 라며 절로 입이 벌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쥐도 나타난다고 하니. 나의 상상속의 도쿄과 실제의 도쿄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특히나 그의 눈에 비친 도쿄의 모습은 새록 새록한 모습인데 아기자기한 모습들도 있어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이 책 안에서 도무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그의 눈에 비친 일본 아이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아이돌이 이러한 모습이었다니. 맙소사,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의 자전거를 보고 까탈스럽게 대하던 경찰들도, 시장 안의 널려있는 생선들도 이제는 그의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게 되었을 이 이야기들이 이렇게 그림으로 남아 있으니 그에게는 도쿄의 기억이 언제나 오늘처럼 남아있을 것 같다. 물론 나에게는 그의 기억이기에 어렴풋하게 전해져 여전히 흐릿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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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꿈맛 / 허안나저


 

 

독서 기간 : 2015.02.0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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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말하는 나를 위한 다섯 가지 용기
윤태성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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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하고나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갖고 출입증 카드를 갖고서 당당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라 믿었기에 합격 발표를 받고 나서 떨리는 가슴을 안고 들어선 사무실은 이제 나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이라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그 세상에 나아가는 순간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하루하루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순간순간의 고비를 넘기는 것과 같았던 6개월을 넘어 1, 3년을 지나 이제 5년차로 넘어가고 있으니, 나름대로는 꽤나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지만 매 순간마다 지금 나의 이 길이 맞는 걸까, 과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은 늘 가슴 속에 담아 두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들을 어디서 풀어야 할까, 라는 고심을 하게 된다.

 세상에 나와 내 스스로 돈을 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한 상념은 물론 앞으로 나는 이 일을 가지고 평생 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지금 하는 것이 맞는 건인지 등등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수 없이 해 보았을 질문들을 이 <한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에서 마주하면서 '이런 고민들을 했었는데'라며 당시의 마음가짐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들에 대한 조언도 마주하게 된다. 이제 겨우 발걸음을 뗀 현재의 나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를 다독이며 그 동안의 나를 위안하며 또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상처준 것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상처 받은 것에 대해서는 또렷하게 기억하는, 그 안타까운 습관이 몸에 베어버린 것인지, 그다지 어린 나이에 취업을 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래처의 담당자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때론 그들이 무한 ''의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도 안되는 트집이 잡힐 때면 울화가 치미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의 위치에 있는 나로서는 늘 먼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기에 이렇게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하는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곤 하는데 이러한 문제는 비단 나만 겪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집을 당하면서 느낀 모욕감은 내가 성장하는데 비료가 되었다. 나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갑질을 당하는 것은 내가 약한 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말단사원이라도 만약 그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내가 아니면 현장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상황이라면 그 간부는 나에게 안경을 벗으라고 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내가 강해져야겠다는 강한 다짐이 생겼다. -본문

 나이가 어려서, 그저 내가 있는 자리가 ''의 위치에 있는 것이기에 그들이 벌이는 갑질에 대한 분노만을 표출하고 있던 나에게 그들의 갑질에 대해서 지적하기보다는 일단 내 스스로의 능력을 더 키워 그들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키울 것을 조언하고 있다. 그러니까 갑질을 당하게 된다면 '내가 이 부분이 부족해서 그렇구나'라는 것을 간파해서 그 부분을 더 채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들이 갑질을 했던 부분에 대해 되짚어 보면, 계약서에 관한 사항이나 회계상의 문제에 대한 것들이었음을,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기에 그들이 표출한 불만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영원한 갑이나 을을 없을지이니, 나를 채우며 내공을 다지는 것. 그것만이 나의 힘이 되어 스스로 갑의 위치로 만들게 할 것이다..



 

업무상 영어로 메일이 나가야 하는 일이 당연했던 것을 입사한 후 처음 알게 된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저 업무를 하는 것이라고만 알았지, 그 업무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던 나로서는 영작이 필수라는 현실이 막막했기에 입사 한 이후에 전화 영어를 계속하면서 감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필요했음은 물론 어느 순간 너무 안일해지고 있는 나를 다독이기 위해서 매년 자격증을 하나씩 공부하려 하곤 있지만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 새 몸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져 무엇을 하기도 버겁기 마련이다. 독서실을 다니겠다며 끊어 놓은 한달권도 열흘을 고작 넘기고서야 그만 두었기에 자기 계발이 필요하는 것을 알면서도 늘 다음에, 다음에를 미루고 있는 나에게 저자는 일침을 가하고 있다.

 공부는 투자이며 보험이다. 인생산맥을 실현하려면 다음 산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대부분 자신의 일에는 의지가 약하니까 스스로에게 겁을 주는 방법도 쓴다. 이 공부를 안하면 나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문

 굼벵이마저도 기기 위해서 그 재주를 얻기 위한 지식이 필요하듯이 당장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내다보고서 자신의 삶을 계획하기 위해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직장인들도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매일 귀찮다며 내일, 내일을 외치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기만 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한참이거늘 길가에 널부러져 잠드는 토끼마냥 진득하니 먼 길을 바라보지 못하는 나를 채근해본다.



 

 여자라면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문제인 일과 육아의 병행에 관한 고민은 이전보다야 문턱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전해지는 체감의 무게는 묵직하기만 하다. 주변 지인들이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녹록지만은 않은 이 문제에 대해서 그가 들려주는 해결방안은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사회에 계속해서 함께 해야하는 우리에게는 꼭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목차 속의 질문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새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았을 문제들에 대해서 그가 자신이 경험했던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도라면 늘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문제를 또 다른 시선에서 보게 되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또 답답해 지는 문제들이 내 앞에 드리울 때면 조용히 다시 펼쳐보게될 것 같은 그의 이야기가 있어 한 동안은 든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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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 유인경저


 

 

독서 기간 : 201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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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 에세이
허은실 글.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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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멜로디가 시작되고 이동진씨의 목소리로 빨간책방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한 줄 한 줄 전해지는 울림에 오늘은 또 어떠한 설렘을 전해줄지 귀 기울이며 오프닝을 듣고 있노라면 어쩜 이런 이야기들이 있을까, 싶은 그 아름다운 선율에 이미 마음은 동하고 있다. 그렇게 오프닝을 듣고 나서 다시 듣기를 하기를 몇 번. 그날의 오프닝 멘트가 익숙해져 혼자 읊조릴 수 있을 때 까지 듣고 나서야 그 날의 팟캐스트를 듣는 준비를 완료했다며 이동진과 김중혁작가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듣기를 시작했으니, 나에게 있어서 빨간책방의 오프닝은 첫눈에 누군가에 반해 그 모든 것을 맹신하게 만드는 마력의 시간이다.

 한 문장을 듣고 받아쓰고, 다시 되돌려서 받아쓰고. 그 일을 몇 번이나 하고서 그날의 멘트를 다 받아 적은 후에 다시금 읽어보는 그 느낌은 마치 연서를 받은 것마냥 설레곤 했다. 그래서 나는 빨간책방을 듣는 날이면 오늘의 오프닝은 어떤 것일까, 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그 순간만큼 더 없이 행복한 소녀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 시간들이 오롯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소식에 이 책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웬만해서는 펜을 잡아 무언가를 끄적이기 보다는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더 편한 지금의 나에게 오랜 아날로그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그 이야기들을, 나는 무조건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책을 빌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가 그어놓은 밑줄을 만나서 가슴 뛴 기억 말이에요.

그게 내가 좋아하는 구절일 때, 밑줄은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영혼의 전류처럼 느껴집니다.
물결 같은 밑줄을 타고 그의 기슭에라도 가 닿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연애를 시작할 때 잠깐이지만요.(중략)

별 생각 없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들춰볼 때도 있어요.
책을 뒤적이다 보면 10, 20대의 나를 만납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여기다 줄을 친 걸까.’
그때 그 마음이 지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죠.

하지만 밑줄 위의 그 문장들은 몰래몰래 내 삶에 개입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해보고도 싶습니다.
어떤 문장이 특별해서 밑줄을 긋기도 하겠지만 
내가 밑줄 그었기 때문에 그 문장은 비로소 특별해진다고요.
오늘은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으셨는지요. –본문

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설이나 에세이도 아닌 이 이야기를 종이 안에 담아내기 위해서 한 문단과 문단의 띄어쓰기마저도 고심했다고 한다. 이동진씨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을 때는 하나의 단락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실제 눈 앞에서 여백을 두고서 전해지기에 이 느낌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전해지고 있다.

 어찌 보면 청취자들에게 가장 먼저 맨 얼굴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에서 그들이 오늘의 이야기를 들을지 말지에 대해 결정하게 하는 단초가 되는 이 순간을, 나는 언제나 떨림을 안고서 기다리고 또 들으며 감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그날의 이야기를 모두 한 대 모으고 싶었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으며 그리하여 책을 읽는 내내 수 많은 포스트잇을 사용하여 책에 표시하고 또 표시했으며 계속해서 그것을 읊조리고 있었다.

우리 몸의 속도는
애초에 이렇게 자연의 속도와 비슷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도 우린 시속 120킬로로 달려야 하고,
스마트해진다고 유혹하는 디지털의 속도에 끌려가느라
고단하기만 하지요.

이런 세상 속에서 자기 속도를 유지하는 건
점점 힘겨워지는데요.
낙엽이 지상에 내려앉는 찰나,
그 무한의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은 어떤가요.

잠깐 멈춰서라는 계절의 빨간 신호등.
단풍이 붉은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본문

 가만히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그 때의 계절을 느끼게 된다. 눈 앞에 보이는 것들만 맹신하던 시간을 넘어 귓가에 맴도는 이야기도 나지막이 전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무섭도록 빠져들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꼭 거쳐야 했던 그녀의 잔잔한 울림은 빨간책방을 찾는 이들에게 어느 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잔잔하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담긴 파장에 늘 행복했던 그 시간들이 이 한 권에 압축되어 있기에 읽는 내내 미소를 지으며 책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한 장 한 장의 이야기마다 전해지는 잔향을 아주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행복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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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오프닝 / 김미라저


 

 

독서 기간 : 2015.01.1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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