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 에세이
허은실 글.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익숙한 멜로디가 시작되고 이동진씨의 목소리로 빨간책방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한 줄 한 줄 전해지는 울림에 오늘은 또 어떠한 설렘을 전해줄지 귀 기울이며 오프닝을 듣고 있노라면 어쩜 이런 이야기들이 있을까, 싶은 그 아름다운 선율에 이미 마음은 동하고 있다. 그렇게 오프닝을 듣고 나서 다시 듣기를 하기를 몇 번. 그날의 오프닝 멘트가 익숙해져 혼자 읊조릴 수 있을 때 까지 듣고 나서야 그 날의 팟캐스트를 듣는 준비를 완료했다며 이동진과 김중혁작가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듣기를 시작했으니, 나에게 있어서 빨간책방의 오프닝은 첫눈에 누군가에 반해 그 모든 것을 맹신하게 만드는 마력의 시간이다.

 한 문장을 듣고 받아쓰고, 다시 되돌려서 받아쓰고. 그 일을 몇 번이나 하고서 그날의 멘트를 다 받아 적은 후에 다시금 읽어보는 그 느낌은 마치 연서를 받은 것마냥 설레곤 했다. 그래서 나는 빨간책방을 듣는 날이면 오늘의 오프닝은 어떤 것일까, 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그 순간만큼 더 없이 행복한 소녀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 시간들이 오롯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소식에 이 책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웬만해서는 펜을 잡아 무언가를 끄적이기 보다는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더 편한 지금의 나에게 오랜 아날로그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그 이야기들을, 나는 무조건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책을 빌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가 그어놓은 밑줄을 만나서 가슴 뛴 기억 말이에요.

그게 내가 좋아하는 구절일 때, 밑줄은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영혼의 전류처럼 느껴집니다.
물결 같은 밑줄을 타고 그의 기슭에라도 가 닿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연애를 시작할 때 잠깐이지만요.(중략)

별 생각 없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들춰볼 때도 있어요.
책을 뒤적이다 보면 10, 20대의 나를 만납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여기다 줄을 친 걸까.’
그때 그 마음이 지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죠.

하지만 밑줄 위의 그 문장들은 몰래몰래 내 삶에 개입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해보고도 싶습니다.
어떤 문장이 특별해서 밑줄을 긋기도 하겠지만 
내가 밑줄 그었기 때문에 그 문장은 비로소 특별해진다고요.
오늘은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으셨는지요. –본문

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설이나 에세이도 아닌 이 이야기를 종이 안에 담아내기 위해서 한 문단과 문단의 띄어쓰기마저도 고심했다고 한다. 이동진씨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을 때는 하나의 단락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실제 눈 앞에서 여백을 두고서 전해지기에 이 느낌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전해지고 있다.

 어찌 보면 청취자들에게 가장 먼저 맨 얼굴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에서 그들이 오늘의 이야기를 들을지 말지에 대해 결정하게 하는 단초가 되는 이 순간을, 나는 언제나 떨림을 안고서 기다리고 또 들으며 감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그날의 이야기를 모두 한 대 모으고 싶었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으며 그리하여 책을 읽는 내내 수 많은 포스트잇을 사용하여 책에 표시하고 또 표시했으며 계속해서 그것을 읊조리고 있었다.

우리 몸의 속도는
애초에 이렇게 자연의 속도와 비슷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도 우린 시속 120킬로로 달려야 하고,
스마트해진다고 유혹하는 디지털의 속도에 끌려가느라
고단하기만 하지요.

이런 세상 속에서 자기 속도를 유지하는 건
점점 힘겨워지는데요.
낙엽이 지상에 내려앉는 찰나,
그 무한의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은 어떤가요.

잠깐 멈춰서라는 계절의 빨간 신호등.
단풍이 붉은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본문

 가만히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그 때의 계절을 느끼게 된다. 눈 앞에 보이는 것들만 맹신하던 시간을 넘어 귓가에 맴도는 이야기도 나지막이 전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무섭도록 빠져들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꼭 거쳐야 했던 그녀의 잔잔한 울림은 빨간책방을 찾는 이들에게 어느 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잔잔하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담긴 파장에 늘 행복했던 그 시간들이 이 한 권에 압축되어 있기에 읽는 내내 미소를 지으며 책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한 장 한 장의 이야기마다 전해지는 잔향을 아주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행복한 오늘이다

 

 

아르's 추천목록

 

오늘의 오프닝 / 김미라저


 

 

독서 기간 : 2015.01.15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