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 불가능을 뛰어넘어 최후의 승자가 된 사람들
보도 섀퍼 지음, 박성원 옮김 / 토네이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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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말하는 ‘이김’, 즉 ‘승리’란 누군가와의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로부터 시작해 궁극적으로 온전한 행복을 성취하는 인생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첫 번째 이유는 저자가 이 책을 위해 4,000권의 책을 읽고 200명의 지혜롭고 부유한 사람을 만났다는, 다시 말해 이 책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강조하는 홍보 문구가 흥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저자가 만난 소위 ‘위너’들은 인생의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결정력을 꼽는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결정을 내렸다면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결정은 곧 결단이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하는지 분별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내려놓는가’ 하는 것이다. 내 삶에 불필요한 것, 나의 성장을 가로막고 제자리를 맴돌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변화를 통한 성공으로 이르는 첫 번째 비결이다. 그래서 이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떠나지도 않고 망설이기만 하고 아무 변화도 없는 그런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루즈벨트가 한 말처럼 “회색지대에서 지루한 유령들 틈에 끼어 있는 상태”와 다름없다. 따라서 저자는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결정하는 근육’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인생에서의 승리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바로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자세를 늘 유지하는 것이다. 배움과 성장이 없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읽고, 쓰고, 내놓는다. 이것은 곧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과 같다. 변화가 없으면 성장도 없다. 이런 과정을 시도하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중독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이것을 ‘낮은 수준의 삶’에 집착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삶을 더 나은 쪽으로 개선하는 것보다 그 자리에 안주하며 지루하고 무기력한 삶을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은 그만큼 자신을 변화의 물결에 맡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삶에서 모든 일은 ‘합산’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위너들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사용한다. 그들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소중한 기적으로 여길 줄 안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여유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실천한다. 이런 삶이 하나하나 쌓이는 가운데 인생에서의 승리라는 기적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합산이 더 효과적이 되기 위해서 감사 일기를 쓰라는 조언을 더한다.







성공에 대한 평균의 법칙도 눈에 띄는 내용이다. 엄청나게 많은 시도는 결국 평균의 법칙이 작용하여 성공 확률을 높인다. 엄청나게 실행하고 실패해야 한다. 그 경험이 위대한 성공으로 이끈다. 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희망은 없다.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한다. 자신이 변화하면 환경이 변화하고 세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성공한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겸손과 배우고자 하는 자세, 긍정, 감사는 이것을 이루는 주요 동력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감사 일기에 더해 성공 일기와 깨달음 일기도 더불어 쓸 것을 주문한다.

 

지식과 실천, 즉 알고 있는 것을 행하는 것이 성공을 이끄는 마법이라는 사실이 책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더불어 많은 시도와 실패의 유익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반복한다. 구체적으로 일찍 행동에 나서 실수를 빨리 많이 겪어라는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성공의 법칙도 중요하다. 스트레스는 불과 같은데,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혼탁해진 생각을 제어하는 탁월한 방법은 ‘집중’이다. 이 과정에서 실수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하는 것은 그대로 끝이다. 살아있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스트레스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현상인 스트레스를 성공을 위한 무기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도 이 책이 가르쳐주는 지혜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수많은 성공학 책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언급된 내용들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수없이 들어왔던 내용들이다.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책에서도 말하듯, 진정한 앎은 바로 실천과 축적된 경험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필수 법칙들이 이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만약 이 책을 읽고도 여전히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맙소사! 이를 어떡해야 하나? 그래서 이 책은 한 번에 완독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법칙을 배웠다면 그것을 바로 실천해보고 효과를 확인한 후,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독서법이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장마다 마무리 부분에 실천 연습 코너를 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일 것이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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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라는 가능성 -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낯선 만남들에 대하여
윌 버킹엄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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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전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세상을 살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도움이 되고 살려주는 관계는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이 중심에는 모든 것을 경쟁과 이익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새로운 옷을 입고 비열한 표정을 숨긴 제국주의적 야심들이 있다. 모두가 함께 다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탐욕을 버리지 못한다. 악한 의도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마치 그것이, 그러니까 이기적이고 욕심을 충족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이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키웠다. 곳곳에서 저항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 또한 대단히 흥미롭다. 더 이상의 경계와 증오, 혐오와 폭력은 안된다는 위기감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인종과 인종 사이의 벽은 더 두터워졌고,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알고 있는 자와 모르고 있는 자, 국적이 다른 사람들 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더 어려워졌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면서 지역적인 특색도 되어가고 있다. 당장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우리는 구분짓기를 시도한다. 내 편과 내 편 아닌 사람들로. 아직은 그런 삶의 방식들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막을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기에 유지되고 있지만, 이것을 결국 거대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에 소개된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낯선 이와의 관계가 곧 미래와의 관계”라고 말했다. 타인에 대한 열린 태도에서 인류의 미래를 볼 수 있고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낯선 이들은 새로움에 대한 희망과 내면으로부터의 공포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불안과 가능성, 흥분과 두려움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 속에서도 인류는 조금은 더 가능성 쪽에 무게를 싣고 지금까지 이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가능성이 아닌 공포와 실제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강조한다. 안전의 원천은 벽이 아니라 공동체의 온전한 활기에 있다고. 함께 식사하는 것, 사람들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큰 규모로 어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는 것. 농담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말이다. 삶을 고난과 위험에서 지켜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을 짓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삶을 공유할 때 느낄 수 있는 안정감 있는 온기가 우리를 안전하게 하고 우리의 취약함을 관리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조금 두렵더라도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고 인사를 하고 한끼를 같이 할 것을 제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때로 집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을 활짝 여는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는 필로제니아와 제노포비아, 즉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인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그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늘 고미한다. 낯선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뢰는 어려운 일이다. 낯선 이에 대한 가능성에 더 무게추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나의 삶을 정신적으로, 때로는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훈을 마음에 품고 당장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어렵겠지만, 미래의 나의 모습에서 타인의 존재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두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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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ㅣ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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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의 사유의 지평을 걸어보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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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ㅣ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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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강신주 선생의 강연을 잠깐씩 보면서 참 존재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는 철학자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낯섦, 저항감, 동조 등의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데, 강신주 선생이 꼭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고, 그러다가 가끔 신간 소식이 들릴 때면 텔레비전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뿐이지 여전히 활동은 계속 하고 있으셨군, 하는 생각을 하는 정도였는데, 얼마 전에 매체에 모습을 비춘 선생의 모습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왜이리 말랐지? 어디가 많이 아픈가? 그것이 사실이었다. 구체적인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육체적 기력은 상당히 소진되어 보였다.

 

이 책은 그런 강신주 선생의 화려한 경력과 현재의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온 고유의 성찰의 변화나 강화가 잘 보이는 인터뷰집이다. 선생은 철학자로서 인문학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모든 인문학은 사랑과 자유에게 바치는 헌사다” 인문학에 대한 많은 정의와 견해가 난무하지만 결국 인간의 사랑과 자유가 최종 목적인 셈이다. 인문학의 핵심 가치는 사랑과 자유를 지향하는 것이며, 사랑과 자유는 함께 가는 것이다. 사랑 없이 진정한 자유가 없고, 자유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인문학의 정신이 사랑과 자유다. 이 두 가지 내용을 가진 것이 인문주의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선생의 통찰은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특히 소유 형식의 구분도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사유와 국유를 제외하면 ‘더불어 공(共)’ 자를 쓰는 ‘공유’가 남는다는 말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나 이렇게 활자화되어 지식으로 전달되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강신주 선생은 자본주의가 우리 삶의 기본 바탕이 되면서 강화되고 있는 억압사회에 대해 저항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억압사회가 가능하려면 정치·경제학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노예제와 다를 바 없다는 의미가 된다. 즉 주인이 있고 그 주인에게 부림 받는 종이 있다. 표면적으로 종들의 상황이 약간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을 뿐이지,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가 동등하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겉만 바뀌고 속은 그대로인 노예의 상태를 계속되게 하는 사례’가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일견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 것처럼 보이지만 더 큰 속박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의 개성을 맘껏 뽐내는 것 같지만 결국 자본주의의 상업적 속성, 다시 말해 생명의 조각을 시장에 내놓고 팔리기를 목매어 기다리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과 연결지어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관계를 논한 부분이 흥미롭다. 사람은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텍스트를 잘 읽는다는 것은 콘텍스트를 읽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해 파악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서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살아온 이력, 배경, 형편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대상의 맥락 또는 흐름을 보지 않고서는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그런 조각조각난 자아들이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비정상적이고 소모적인 관계들을 양산해내고 폐기시킨다.







\그래서 다르게 보는 방법이 중요하다. 지금껏 매몰된 나의 사고방식과 편견을 뒤집어 본질을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 강신주 선생이 제시하는 방법은 “나를 볼 때는 객관적으로, 대상을 볼 때는 주관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참된 자유와 사랑이 충만한 공동체라는 이상향을 꿈꾸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의 폭넓고 깊은 지혜와 성찰이 이 인터뷰집에 담겨 있다. 강신주 선생의 사유의 지평을 본격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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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한 사람 - 세상을 구원하는 예수의 사랑법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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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아이들먼 목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최근 어떤 전도사 한 분이 추천해주셔서 『팬인가, 제자인가』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저자의 신작인 『한 번에 한 사람』이 두란노출판사를 통해 국내에 출간된다고 해서 그동안 어떤 변화나 발전, 새로운 통찰이 있었는지 궁금하여 읽게 되었다. ‘한 번에 한 사람’이라는 이 표현이 말 자체로는 새롭다고 할 수 없는데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좋은 일일까? 한탄해야 할 일일까? 무엇보다 예수의 행적을 따라 얻어낸 사랑법이기에 그 내용이 무척 기대되면서도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질책으로 다가올 것 같아 우려도 되었다.

 

먼저 이 책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영향력’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그릇된 인식을 예수님의 말과 행동이라는 모범을 토대로 바로 세우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을 그리 특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너무나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고, 교회는 예수의 모범을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말과 행적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 외에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의 기독교는 예수와 그다지 상관없는 무리들의 이익과 권력, 혹은 교세 확장이나 유지를 위한 세속적 몸부림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재의 기독교가 ‘한 번에 한 사람’이라는 전략을 몰라서 지금과 같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너무나 비대해져 있는 가운데 탐욕과 소명을 뒤섞어 버리거나 아니면 너무나 궁핍한 가운데 생계 유지의 수단과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예수님 사역의 핵심 전략을 후순위로 밀어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가 말하듯이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대대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저자는 ‘안에서 이후에 통해서’의 접근법으로 설명한다. ‘한 번에 한 사람에게’라는 전략이 실천되기 전에 먼저 자신 안에서의 변화,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이루시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예수의 삶을 통해 ‘한 번에 한 사람’이라는, ‘기독인으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대인관계 원리’를 이끌어낸다. 눈에 띄는 부분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을 ‘줌렌즈’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비유한 것이다. 카메라에서 줌렌즈의 활용은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당겨 보거나, 여러 피사체가 있는 가운데서 핵심적인 하나의 대상을 뚜렷하게 보는 데 있다. 성경 속 여러 장면에서 예수가 무리를 만나는 장면보다 한 개인을 만나는 장면을 더 많이 보여주는데, 저자에 의하면 그 만남들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요소가 바로 줌렌즈처럼 한 사람을 더 깊고 친밀히 만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한 사람’에 온전한 집중이 예수의 사역 방식이었다는 말이다.







성경에는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 책은 그 작은 것을 충성하는 방식을 ‘큰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친절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어쩐지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그 한 사람을 향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큰 성경적 부흥을 이끌어내는지 저자는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사실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왜냐하면 모든 기독인들이 극단적으로 바쁘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두 부류로 나뉘기 때문이다. 분주함이나 냉담함으로 가득한 사역 현장에서 잠시 멈추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가보자고 하기에는 이미 교회 문화가 너무 경직되어 있다. 여기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이 책이 전하는 교훈을 따르는 것은 어설프게 예수 흉내나 내다가 위선만 양산하기 일쑤일 거란 위험이 있다. 이 책이 신앙서적들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일 수도 있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결국 처음 우려했던 그 일이 현실이 되었다. 매우 큰 부담을 진 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말았던 것이다.




* 두란노 출판사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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