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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라는 가능성 -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낯선 만남들에 대하여
윌 버킹엄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3월
평점 :
코로나19 이전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세상을 살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도움이 되고 살려주는 관계는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이 중심에는 모든 것을 경쟁과 이익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새로운 옷을 입고 비열한 표정을 숨긴 제국주의적 야심들이 있다. 모두가 함께 다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탐욕을 버리지 못한다. 악한 의도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마치 그것이, 그러니까 이기적이고 욕심을 충족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이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키웠다. 곳곳에서 저항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 또한 대단히 흥미롭다. 더 이상의 경계와 증오, 혐오와 폭력은 안된다는 위기감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인종과 인종 사이의 벽은 더 두터워졌고,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알고 있는 자와 모르고 있는 자, 국적이 다른 사람들 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더 어려워졌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면서 지역적인 특색도 되어가고 있다. 당장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우리는 구분짓기를 시도한다. 내 편과 내 편 아닌 사람들로. 아직은 그런 삶의 방식들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막을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기에 유지되고 있지만, 이것을 결국 거대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에 소개된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낯선 이와의 관계가 곧 미래와의 관계”라고 말했다. 타인에 대한 열린 태도에서 인류의 미래를 볼 수 있고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낯선 이들은 새로움에 대한 희망과 내면으로부터의 공포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불안과 가능성, 흥분과 두려움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 속에서도 인류는 조금은 더 가능성 쪽에 무게를 싣고 지금까지 이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가능성이 아닌 공포와 실제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강조한다. 안전의 원천은 벽이 아니라 공동체의 온전한 활기에 있다고. 함께 식사하는 것, 사람들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큰 규모로 어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는 것. 농담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말이다. 삶을 고난과 위험에서 지켜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을 짓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삶을 공유할 때 느낄 수 있는 안정감 있는 온기가 우리를 안전하게 하고 우리의 취약함을 관리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조금 두렵더라도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고 인사를 하고 한끼를 같이 할 것을 제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때로 집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을 활짝 여는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는 필로제니아와 제노포비아, 즉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인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그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늘 고미한다. 낯선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뢰는 어려운 일이다. 낯선 이에 대한 가능성에 더 무게추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나의 삶을 정신적으로, 때로는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훈을 마음에 품고 당장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어렵겠지만, 미래의 나의 모습에서 타인의 존재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두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