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김용주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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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나 악기에 대해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피아노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학교 음악실이나 교회, 성당 같은 곳이 아니면 피아노나 피아노 연주자를 보기가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음악하면 피아노, 가장 친숙한 악기의 상징으로 피아노를 떠올리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피아노가 가진 특징에 있을 것이다. 멜로디와 화음을 동시에 가장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악기로 피아노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악을 창작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에게 가장 많이 노출되는 악기가 피아노와 기타 정도임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렇듯 피아노는 보편적인 이미지로 새겨져 있다.

 

 

 

 

 

 

그래서 「피아노 이야기」에서 다뤄지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다소 전문적인 부분들을 제외하고서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교훈을 주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저자는 ‘상관관계’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피아노 연주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거나, ‘소리는 오직 상관관계 안에서만 아름다움을 발한다’거나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어떤 일과의 상관관계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등의 발언을 통해, 어떤 것이 온전한 의미를 갖거나 제대로 된 기능을 하려면 그것이 가지는 각 요소간의 상관관계, 상호작용이 올바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소리도 독립적으로는 단순한 울림일 뿐이지만 둘 이상의 음이 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지는 무수한 가능성들 가운데서 비로소 아름다움과 패턴,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홀로 살 수 없듯이, 타인과의 공존, 조화, 배려가 생존의 전제조건이듯, 모든 것은 관계에 의해서 그 의미가 형성되고 기능이 작동한다.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도 악기와 연주자뿐만 아니라, 관객도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려주는 문장이 있다. 피아노 연주란 “건반과 관객의 영혼을 동시에 누름으로써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며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정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재미있는 설명이 많다. 예를 들어,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손가락의 역할인데, 이중 엄지와 검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것을 카인과 아벨로 비유한 것이 특히 흥미로웠다. 카인과 아벨은 대립과 갈등의 상징적인 개념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 대립과 갈등을 협조 혹은 동맹군의 관계로 정의하여, 상반되지만 공존하는 두 개의 발전소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융합과 조화로부터 휼륭한 연주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인상적인 이야기로는 넷째 손가락, 즉 약지에 대한 설명인데, 약지는 기본적으로 연약하고 의존적이고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넷째 손가락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지만 다 실패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쇼팽이 등장하는데, 그는 이런 넷째 손가락에 대한 관점을 바꿔 그것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살려 칸타빌레를 처리하는 데 쓰는 용도로 약지의 기능을 확립한 것이었다. 기존의 문제의식이 가진 문제점을 간파하여 해결책을 제시한 쇼팽의 천재성에 감탄한 대목이었다.

 

 

 

 

 

 

교육적인 차원에서의 피아노 이야기도 배울 것이 많았다. 특히 예술 교육에 있어서 기본기와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능력, 그리고 각자의 개성을 살려주는 방향성을 가지고 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그리고 꾸준한 노력과 연습만이 원하는 음악적 성취와 자부심에 이르는 길임을 강조했다. 특히 정신적인 자세 혹은 마음가짐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저자의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선생님에게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예의와 인내심과 용기를, 겉모습의 무의미함을 배웠다. 인위적이고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자라면서 나는 사람의 마음이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대해 감사했다." (p.108)

 

저자는 야구나 골프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기교적인 부분에서는 골프와의 비교를 통한 설명이 종종 나오고, 의미적인 부분에서는 야구 이야기를 통해 피아노와 음악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한다. 이밖에도 저자의 깊이 있고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의 글들로 채워져 있어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면 지식과 감성이 균형 있게 보강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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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ㅣ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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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저자 토머스 모어가 라파엘 히틀로다이오라는 사람에게 유토피아라는 곳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해놓은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곳의 경제와 문화, 사회, 관습과 제도를 통해 가장 이상적인 국가의 통치 형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답이 제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유토피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온 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는 이상향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는 이 용어가 실은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유토피아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통해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폐해를 꼬집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당시 현실에 대한 문제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 모습이 지금과 너무 유사해 이 책이 16세기 초반에 나왔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는 데 크게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대다수의 왕들이 평화보다 전쟁을 이기는 일에 더 몰두한다’, ‘나라의 중요한 정책들이 오만함과 불합리함과 완고함 가운데서 결정되고 있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남의 것을 훔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먼저 사람들을 내몰고선 그런 후에 절도죄를 범했다고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다’, ‘수컷 벌들처럼 아무 일도 안하고 빈둥거리면서 남의 노동에 기대 살아가는 귀족들이 많다’, ‘온 나라의 적지 않은 땅을 자기 유희나 사냥을 위한 구역으로 정해 경작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땅을 더 황폐하게 만들어버렸다’, ‘부자들이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다 사들인 후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 등... 정치는 당연하고 각종 사회경제적·종교적 폐단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국가란 무엇일까? 정말 단순화해서 생각해보자.

 

‘시민들은 자신을 지주가 아니라 경작자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한때 ‘토지공개념’에 대한 이슈가 떠올랐던 적이 있다. 조금만 고깝게 보면 바로 공산주의니, 빨갱이 사상이니 하면 몰아칠 게 뻔한 사안이었는데, 16세기의 생각도 그런 식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거저 주어진 천연의 자원과 삶의 터전을 정말 자본주의적 경쟁 시스템으로만 운영해야 할 것인가? 지금 환경과 이상기후 문제와 연결되어 16세기의 문제의식은 더욱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시의 거리는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서도 바람도 잘 막아줄 수 있도록 편리하고 훌륭하게 설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분야는 도시 설계다. 모든 주거지와 상권이 자연을 가까이 하고 사람이든 물류든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전 국토적인 개발 계획과 실천이 요구되는데, 오로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른 자본 집행으로 특정 지역만 땅값이 치솟고 그렇지 않은 곳은 똥값도 안되고 살기도 불편하게 방치하며 사람들을 거주하는 공간으로 계급의식을 갖게 하는 이런 식의 정부 정책에는 어두운 미래만 전망된다.

‘농업은 누구나 해야 할 일이다’ 사실 정말 필수적인 분야를 제외하면 없어져야 할 산업이 너무나 많다. 사치스럽고,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원을 파괴하는 모든 산업을 인류 스스로 줄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오직 경제성장이라는 말초적 탐욕 추구와 자기파괴적 가치만을 붙들고 가는 현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 결국 이기심이다. 지금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배만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사실 농업과 그에 연결된 산업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 나라 사람들은... 보기에도 아름답고 활동하기에도 편한 데다가 추위와 더위에도 적합하다. 모두가 입는 이 옷은 각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입는다’ 패션 산업은 정말 사람들의 허영심과 소비 욕망만 부추기는 쓸모 없는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일차적으로 앗아간 대표적인 산업이 아닐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낭비를 극대화하는 패션 산업. 실용성을 기반으로 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 지금의 패션 산업이다.

‘6시간만 일한다’ 이것은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노동 시간은 비단 노동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가를 창조적이고 의미 있게 보내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고 지구의 자원과 환경, 지속적이고 보존적이며 안정적인 경제성장까지 가능하게 하도록 도모하는 것이다.

‘새 부지에 새 집을 짓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 앞에 국가가 철저한 계획 아래 집을 공급하기 때문에, 라는 단서가 붙어서 불편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부동산 때문에 나라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시스템은 정상이 아니다. 멀쩡한 건물도 때려부수고 짓고 또 짓는 것으로 경제를 돌리는 것은 있는 사람들 배나 더 불리기 위한 수작이지 건강한 경제 구조라고 볼 수 없다. 생산과 소비가 아닌, 기존의 것을 유지·보수하는 것 중심으로 경제 체제를 개편할 수는 없을까?

 

 

 

 

 

 

‘각각의 도시는 6,000가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집중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 수도권 중심의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지금은 달라져야 한다. 전 국토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국가 예산이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인구가 분산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듯이 인구과밀화지역은 한 번 타격을 받으면 위험의 급격한 확산을 막지 못한다.

‘그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는 금이 사람보다 더 소중히 여겨지고, 사람을 금보다 가치 없는 존재려 여기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돈으로 가치를 매기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매우 효율적이지만, 정말 진보하는 인류 문명이라면 이것을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인간성까지 포기하면서 돈에 매달리게 하는 지금 이 시대가 정말 우리가 바라는 세상인가?

 

이처럼 「유토피아」는 16세기의 지적 산물이지만 바로 오늘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을 혁신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16세기라 함은 르네상스 혁명과 종교개혁 등, 인류의 사상적 지평이 획기적으로 확장된 시기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물적 자원과 지적·기술적 자원 및 시민의식의 발전과 성숙이라는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토피아적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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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손지상 옮김 / 네오픽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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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져간다고 느껴진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아니면 이미 세상은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아직도 그걸 모르고 있었거나 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라고 묻는 내가 어리석은 걸까?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고 남은 여생도 큰 탈 없이 보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도대체 신은 있는 것일까? 정직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배려하고 예의 있는 사람들이 왜 부각되지 않고 꼭 사회의 숨은 희망처럼 묘사되어야만 하는 걸까? 그것만이면 다행이게, 거기에 독한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지 않으면 거의 다 손해보고 피해를 입고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다.

 

아오야마 미치코의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건, 선량한 사람들이 어려움이나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운명의 힘을 따뜻하고 친절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워낙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재미만 추구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다 보니까, 이렇게 담백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이야기가 오히려 낯설고 새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개운한 마음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소설은 총 일곱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각이 하나의 단편들로 읽혀도 무난한데, 굳이 이 작품들을 하나의 장편소설로 정의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결국 나의 이야기이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공감대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실연에 평소 사용하던 답답한 마음을 위한 해결책도 통하지 않아 어쩔 줄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딸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던 나머지 그것이 오히려 딸과의 거리를 두게 만들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주어진 대로 착실하게 살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사회초년생의 마음의 호수에 던져진 ‘더이상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는 파문이 일었을 때, 가족 사이에 좀처럼 메워지지 감정의 골이 인생을 한없이 쓸쓸함으로 가득 채울 때, 나와 다르거나 특이한 것을 이상하고 잘못되고 배제해야 할 것으로 몰아붙이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할 때,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야 무얼 해도 안 될 게 뻔해-라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때, 새로운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때 - 우연인듯 운명인듯 만나게 된 검은 고양이와 그 고양이로부터 주어진 계시의 말씀.

 

 

 

 

 

 

하나의 단어로 된 이 말씀을 계시로, 소중한 인생의 길잡이로 선물 받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곤란한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남을 배려하면서도 스스로는 자존감이 다소 떨어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낮은 자존감보다, 배려할 줄 아는 여리고 선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정말 소중한 인간성이라는 것은, 낮은 자존감이라는 약점보다 스스로를 나약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생각할 줄 아는 그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으로서의 장점이라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자존감과 자신감만 넘치고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에게는 낙제점을 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소심하고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사람들 속에 있는 귀중한 가치를 포착해내는 작가의 섬세함이 참 좋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네 번째 잎사귀인 ‘씨뿌리기’와 다섯 번째 잎사귀인 ‘한가운데’였다. ‘씨뿌리기’는 가족 사이에 소통 부족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깨닫는 이야기이고, ‘한가운데’는 세상 모든 존재는 그 존재다움이 있기 때문에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하고 그로 인해 더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을 계시해주는 검은 고양이 ‘미쿠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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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 × 기억하는 인간 ㅣ EBS 지식채널e 시리즈
지식채널ⓔ 제작팀 지음 / EBS BOOKS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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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 × 기억하는 인간」 은 EBS에서 제작하는 지식채널ⓔ 시리즈에서 그동안 다룬 여러 가지 이야기들 중에서 ‘기억’과 ‘기록’이라는 주제 아래 묶은 20가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총 4개의 파트(존재의 기록, 선택의 기록, 희망의 기록, 우리의 기록)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을 보면 우리 역사에서 이미 벌어진 일을 돌아봄으로써 현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다가올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모색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로서의 기억과 기록의 용도와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파트1에서는 먼저 전쟁과 학살의 참상을 통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인류의 실수를 상기시킨다. 아우슈비츠나 제주4·3 사건에서 볼 수 있듯, 과거의 비극은 그 시간대에서 끝나지 않고 세대를 넘어 깊은 상처와 슬픔을 남긴다. 이러한 상처와 슬픔을 치유하고 돌보기 위해서는 묻혀버린 역사를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 되살려야만 한다. 무엇이 고통을 낳았고 멈추지 않는 슬픔 속에 머물게 하는지 알려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을 기초하여 진실을 전하는 르포루타주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또 사회적 억압과 정치적 감시의 시대에 대한 초상을 전하면서 미디어 리터러시, 즉 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다룬다.

 

파트2에서는 공평하고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역사 서술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그 완벽성의 추구는 신화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검증하고 확인하면서 오류와 편견을 줄여나가는 방법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난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다룰 필요가 있으며, 실패에 관한 기록도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어엿한 역사임을 인식해야 한다.

 

파트3에서는 기억을 기록하는 생산과 보존 방식에 변화를 다룬다. 폐쇄성을 벗어나 점차 개방적인 특성을 띄는 기록의 양상 변화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정보의 과다한 축적과 가공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별을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검증된 전문지식들이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개되는 다양한 시도 및 대중지성의 정보 필터링 능력의 향상은 앞서 언급한 ‘미디어 리터러시’를 포함한 현상과 본질에 대한 대중의 문해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방해하는 시도 또한 만만치 않다.

 

 

 

 

 

 

파트4에서는 사회적 소통과 화해, 개선에 인류의 기록 행위라는 문화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짚어본다. 서로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 수단으로 삼기 위한 관찰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기록의 가치를 담아냈다.

 

결국 기억과 기록이라는 행위는 인간과 인간의 연결고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두운 역사 속에서 이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수많은 사례를 찾아낼 수 있었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개인과 개인의 관심과 연대가 더욱 건강하고 발전적인 공동체를 꿈꾸고 실현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서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기억하고 편견을 배제한 기록 행위는 그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기에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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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미래 “좋은 삶”
김인회 지음 / 준평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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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윤리의 의미와 역할을 묻고 있다. 윤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고 지켜야 할 도리’로 규정되어 있다. 좋은 말이지만 구체적인 현실 세계에서, 개인의 상황에서 적용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다. 윤리라는 개념의 모호함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윤리는 강제성과 구체성이 없다. 그래서 적용이 힘들고, 자의적인 해석이 난무한다.

 

‘윤리’를 주제로 한 이 책에서 저자는 윤리의 개념을 먼저 ‘정의’와 비교함으로써 ‘윤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윤리는 보편적이고 정의는 특수적이다. 정의는 조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특징도 눈에 띈다. 윤리의 보편성으로 정의의 보편성을 유도하고 확장할 수 있다. 정의가 품고 있는 상대적 해석의 여지를 우리가 지금껏 도외시해왔던 윤리의 가치로 보완할 수 있다.

 

 

 

 

 

 

윤리는 세속적 세계와 영적 세계의 중간쯤에 있다. 윤리적인 삶의 영적인 삶의 출발점이다. 윤리가 좋은 삶을 지향한다고 할 때, 좋은 삶이란 영적으로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그런데 윤리는 개인적인 측면이 강하고, 집단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눈에 띈다. 요즘 기업윤리나 조직윤리에 대한 말을 많이 하지만, 현상적∙경험적으로 그것이 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법과 제도로 산업에 대한 공정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정의와 윤리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본중심 인간관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자본 중심 인간관은 이익이 최우선 가치이며,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항상 정의와 공정, 공적 가치와 충돌하며 갈등을 일으킨다. 정의와 윤리는 상호보완적이다. 방법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같은 목표를 가진다. 바로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책에서 소개하는 서구의 대표적인 두 가지 윤리 사상인 공리주의와 칸트주의는 좋은 탐구의 도구가 된다.

 

윤리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공동체의 안정을 꾀한다. 윤리는 공동체, 사회적 가치를 지향한다. 비조직적∙비집단적인 것도 윤리의 한 속성이다. 그러나 인간은 개인으로서만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윤리의 영역은 확장된다. 그것을 담당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따라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경제와 정치 권력의 확대는 정의와 윤리라는 다른 차원의 가치로 통제해야 건강한 사회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윤리와 자유주의의 충돌을 논하는 지점도 눈에 띈다. 반지성주의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세태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사람들이 윤리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선뜻 그것에 모든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 무리인 것도 이유가 있다. 윤리는 불편하다. 현대의 성공방정식에서 윤리는 배제된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법과 제도는 윤리와 도덕의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인간의 지켜야할 최소한의 규칙과 제한을 요구한다. 이런 사회는 더 나은 차원의 삶의 터전을 위한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법과 제도를 물리적인 차원에서의 풍요를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하기를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가치, 빠른 속도에 치여 우리가 지키거나 혁신해야 할 판단 자체를 사치스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저울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전통사회의 틀을 벗어나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윤리에 대한 재인식과 그 가치와 활용의 재정립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책은 그러한 고민의 결과를 잘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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