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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ㅣ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평점 :
「유토피아」는 저자 토머스 모어가 라파엘 히틀로다이오라는 사람에게 유토피아라는 곳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해놓은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곳의 경제와 문화, 사회, 관습과 제도를 통해 가장 이상적인 국가의 통치 형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답이 제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유토피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온 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는 이상향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는 이 용어가 실은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유토피아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통해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폐해를 꼬집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당시 현실에 대한 문제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 모습이 지금과 너무 유사해 이 책이 16세기 초반에 나왔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는 데 크게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대다수의 왕들이 평화보다 전쟁을 이기는 일에 더 몰두한다’, ‘나라의 중요한 정책들이 오만함과 불합리함과 완고함 가운데서 결정되고 있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남의 것을 훔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먼저 사람들을 내몰고선 그런 후에 절도죄를 범했다고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다’, ‘수컷 벌들처럼 아무 일도 안하고 빈둥거리면서 남의 노동에 기대 살아가는 귀족들이 많다’, ‘온 나라의 적지 않은 땅을 자기 유희나 사냥을 위한 구역으로 정해 경작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땅을 더 황폐하게 만들어버렸다’, ‘부자들이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다 사들인 후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 등... 정치는 당연하고 각종 사회경제적·종교적 폐단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국가란 무엇일까? 정말 단순화해서 생각해보자.
‘시민들은 자신을 지주가 아니라 경작자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한때 ‘토지공개념’에 대한 이슈가 떠올랐던 적이 있다. 조금만 고깝게 보면 바로 공산주의니, 빨갱이 사상이니 하면 몰아칠 게 뻔한 사안이었는데, 16세기의 생각도 그런 식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거저 주어진 천연의 자원과 삶의 터전을 정말 자본주의적 경쟁 시스템으로만 운영해야 할 것인가? 지금 환경과 이상기후 문제와 연결되어 16세기의 문제의식은 더욱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시의 거리는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서도 바람도 잘 막아줄 수 있도록 편리하고 훌륭하게 설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분야는 도시 설계다. 모든 주거지와 상권이 자연을 가까이 하고 사람이든 물류든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전 국토적인 개발 계획과 실천이 요구되는데, 오로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른 자본 집행으로 특정 지역만 땅값이 치솟고 그렇지 않은 곳은 똥값도 안되고 살기도 불편하게 방치하며 사람들을 거주하는 공간으로 계급의식을 갖게 하는 이런 식의 정부 정책에는 어두운 미래만 전망된다.
‘농업은 누구나 해야 할 일이다’ 사실 정말 필수적인 분야를 제외하면 없어져야 할 산업이 너무나 많다. 사치스럽고,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원을 파괴하는 모든 산업을 인류 스스로 줄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오직 경제성장이라는 말초적 탐욕 추구와 자기파괴적 가치만을 붙들고 가는 현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 결국 이기심이다. 지금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배만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사실 농업과 그에 연결된 산업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 나라 사람들은... 보기에도 아름답고 활동하기에도 편한 데다가 추위와 더위에도 적합하다. 모두가 입는 이 옷은 각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입는다’ 패션 산업은 정말 사람들의 허영심과 소비 욕망만 부추기는 쓸모 없는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일차적으로 앗아간 대표적인 산업이 아닐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낭비를 극대화하는 패션 산업. 실용성을 기반으로 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 지금의 패션 산업이다.
‘6시간만 일한다’ 이것은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노동 시간은 비단 노동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가를 창조적이고 의미 있게 보내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고 지구의 자원과 환경, 지속적이고 보존적이며 안정적인 경제성장까지 가능하게 하도록 도모하는 것이다.
‘새 부지에 새 집을 짓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 앞에 국가가 철저한 계획 아래 집을 공급하기 때문에, 라는 단서가 붙어서 불편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부동산 때문에 나라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시스템은 정상이 아니다. 멀쩡한 건물도 때려부수고 짓고 또 짓는 것으로 경제를 돌리는 것은 있는 사람들 배나 더 불리기 위한 수작이지 건강한 경제 구조라고 볼 수 없다. 생산과 소비가 아닌, 기존의 것을 유지·보수하는 것 중심으로 경제 체제를 개편할 수는 없을까?
‘각각의 도시는 6,000가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집중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 수도권 중심의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지금은 달라져야 한다. 전 국토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국가 예산이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인구가 분산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듯이 인구과밀화지역은 한 번 타격을 받으면 위험의 급격한 확산을 막지 못한다.
‘그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는 금이 사람보다 더 소중히 여겨지고, 사람을 금보다 가치 없는 존재려 여기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돈으로 가치를 매기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매우 효율적이지만, 정말 진보하는 인류 문명이라면 이것을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인간성까지 포기하면서 돈에 매달리게 하는 지금 이 시대가 정말 우리가 바라는 세상인가?
이처럼 「유토피아」는 16세기의 지적 산물이지만 바로 오늘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을 혁신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16세기라 함은 르네상스 혁명과 종교개혁 등, 인류의 사상적 지평이 획기적으로 확장된 시기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물적 자원과 지적·기술적 자원 및 시민의식의 발전과 성숙이라는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토피아적 상상력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