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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손지상 옮김 / 네오픽션 / 2020년 11월
평점 :
요즘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져간다고 느껴진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아니면 이미 세상은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아직도 그걸 모르고 있었거나 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라고 묻는 내가 어리석은 걸까?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고 남은 여생도 큰 탈 없이 보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도대체 신은 있는 것일까? 정직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배려하고 예의 있는 사람들이 왜 부각되지 않고 꼭 사회의 숨은 희망처럼 묘사되어야만 하는 걸까? 그것만이면 다행이게, 거기에 독한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지 않으면 거의 다 손해보고 피해를 입고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다.
아오야마 미치코의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건, 선량한 사람들이 어려움이나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운명의 힘을 따뜻하고 친절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워낙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재미만 추구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다 보니까, 이렇게 담백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이야기가 오히려 낯설고 새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개운한 마음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소설은 총 일곱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각이 하나의 단편들로 읽혀도 무난한데, 굳이 이 작품들을 하나의 장편소설로 정의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결국 나의 이야기이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공감대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실연에 평소 사용하던 답답한 마음을 위한 해결책도 통하지 않아 어쩔 줄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딸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던 나머지 그것이 오히려 딸과의 거리를 두게 만들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주어진 대로 착실하게 살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사회초년생의 마음의 호수에 던져진 ‘더이상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는 파문이 일었을 때, 가족 사이에 좀처럼 메워지지 감정의 골이 인생을 한없이 쓸쓸함으로 가득 채울 때, 나와 다르거나 특이한 것을 이상하고 잘못되고 배제해야 할 것으로 몰아붙이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할 때,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야 무얼 해도 안 될 게 뻔해-라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때, 새로운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때 - 우연인듯 운명인듯 만나게 된 검은 고양이와 그 고양이로부터 주어진 계시의 말씀.
하나의 단어로 된 이 말씀을 계시로, 소중한 인생의 길잡이로 선물 받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곤란한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남을 배려하면서도 스스로는 자존감이 다소 떨어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낮은 자존감보다, 배려할 줄 아는 여리고 선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정말 소중한 인간성이라는 것은, 낮은 자존감이라는 약점보다 스스로를 나약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생각할 줄 아는 그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으로서의 장점이라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자존감과 자신감만 넘치고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에게는 낙제점을 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소심하고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사람들 속에 있는 귀중한 가치를 포착해내는 작가의 섬세함이 참 좋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네 번째 잎사귀인 ‘씨뿌리기’와 다섯 번째 잎사귀인 ‘한가운데’였다. ‘씨뿌리기’는 가족 사이에 소통 부족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깨닫는 이야기이고, ‘한가운데’는 세상 모든 존재는 그 존재다움이 있기 때문에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하고 그로 인해 더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을 계시해주는 검은 고양이 ‘미쿠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