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사회의 종말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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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는 역사상 최악의 인간 몰살이 일어나고, 생태계의 여섯 번째 대멸종이 개시된 시대이므로 그것의 잔혹성, 멸절성, 반생명성을 상기하는 차원에서 ‘학살세’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p.28

 

산업혁명 이후로 인류는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어내었다. 그러나 이것은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발전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그대로 끝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인류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나 국가를 상대로 착취를 하고 있고, 생물종다양성을 파괴하는 살육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기술에 대한 맹신은 포장지만 바꾼 채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계속 환경을 파괴하고 점점 가시화되는 기후위기를 일시적인 현상인 것처럼 그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

 

- 서구가 비서구권의 자연환경을 대규모로 파괴하고 약탈함으로써 인간계와 자연계를 통합접 관점에서 이해해온 비서구권의 ‘생태적 지속가능성’이 회볼 불능 상태‘에 빠졌다 …… 천연자원은 원래 그것이 지니던 복합적 재생능력과 생태적 상호 의존성의 특징을 철저히 부정당하고, 오로지 서구 산업화에 필요한 경제적 범주로서의 가치만 인정받았다. p.96

 

지구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시대에 벌어진 대규모의 자연 파괴와 물질만능주의는 쉽사리 치료될 수 없는 불치병처럼 보인다. 그것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과학적 연구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도, 또 팬데믹이라는 시대의 재앙 앞에서조차 기존에 해오던 것을 되도록이면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주류 정치권력의 안일함 때문에 인류는 점점 위기로 치닫고 있다.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생태적 가치, 생명중심의 환경윤리가 기준이 되는 사고방식의 일대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여유 있는 계층이라 해도 기후위기의 부정적 효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기후위기는 ‘보편적’인 문제다. p.175

 

최근 심해지는 미세먼지와 점점 강력해지는 태풍, 길어지는 열대야 등, 지금 세대에서부터 엄청난 기상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날씨의 급격한 변화, 이상기후는 우리의 삶에 당장 큰 영향을 끼친다. 경제적인 타격은 물론이고 사회적 갈등의 측면이나 심리적으로도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지금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야 당분간은 피할 여력이 되겠지만 그 임계점을 돌파할 경우에는 대규모 혼란을 피할 수 없다.

 

- 지금까지 기후에 관한 정책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당사자들-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피해는 물론이고, 예상하지 못한 정치적 결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회적 응집력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정치적, 사회적 후유증이 여기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저탄소·탈탄소 경제로의 이행을 늦출 수는 없다. p.252

 

뒤늦게 대응하는 만큼 부담은 점점 커질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외양간 지을 터마저 다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장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위한 정책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차일피일 미룬다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암세포처럼 손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치관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산업과 직업군을 육성하여 사람들의 삶에 건강과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이 보장되도록 실질적인 논의와 정책 실현이 이루어져야 한다.

 

 

 

 

 

 

- 실존적 리스크가 이번 세기 내로 인류가 더 없어질 수 있는 위험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정상적’인 삶의 양식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 ‘발전’의 잠재성이 사라진 상황, 심각한 문제들이 일시에 터져 나와 사회질서가 흔들리는 상황도 실존적 리스크라 할 수 있다. p.302

 

기후변화라는 점진적 위기가 실존적인 문제로 체감되는 가운데 터진 팬데믹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흔들어놓았다. 다소 여유가 있는 계층은 재택근무나 자기계발로 그 시간을 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삶의 존재 이유나 근거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계층이 더욱 늘어나고 있음도 엄연한 현실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사회상이 전염병과 함께 번지고 있다.

 

탄소를 적극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요구는 단순히 파괴되는 지구의 환경을 되돌려야 한다는 양심적인 문제를 넘어 그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인간과 모든 생물군의 생존을 위한 외침이다. 기후위기가 광범위한 ‘생태살인’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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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경제로의 전환 - 유럽 최고 석학 자크 아탈리, 코로나 비극에서 인류를 구하는 담대한 비전과 전망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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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하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천성적인 게으름이거나 능력 부족이거나, 악한 의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지금 팬데믹으로 우리가 겪고 있고 목격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은 우리가 이미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그럴 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보이지 못한 탓이 크다.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내용이 이런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이미 기원전부터 전염병 문제는 한 문명이나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거나 파괴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밝히고 있다. 정치 권력, 국가 간 권력의 재편성이 이루어지거나 혁명의 불씨, 국가 권력 독재화의 명분 등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바 있는 것이 광범위한 전염병 위기요, 팬데믹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팬데믹의 역사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미 우리 세대에 점점 간격이 짧아지는 세계적 전염병의 도래를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았으니 말이다. 모든 나라가 효과적인 대처를 할 수 있었음에도, 안일한 생각으로 대재앙을 겪고 있다. 팬데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을 저자는 너무나 안타까운 어조로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책의 저자가 평가하는 것처럼, 상당히 모범적인 대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상황이 악화되어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 정부가 너무 대응을 잘한 이유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완전한 통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분별 없는 행동이라는 변수를 완벽하게 막기가 어렵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산발적으로 터지는 집단 감염을 보았고, 지금은 그것이 원인이 되어 전국적인 대재앙으로 번지는 형세다.

 

이 책은 이렇게 주요 주제라 할 수 있는 생명경제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에 앞서 우리가 왜 생명경제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지난 약 1년 간 있었던 일을 돌아봄으로 그 필요성과 당위성을 호소하기 위한 내용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명경제란 그리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경제, 지구의 환경 보호와 기후 변화 대비, 빈부격차의 축소, 필수 산업의 집중화 견제, 다음 세대에게 혜택을 보장하는 정책 도입 등을 말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건강이나 식품, 주거지 문제, 문화산업 등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부분에 대해서, 앞서 말한 생명경제의 개념을 적극 도입-결합시켜, 지금까지 지구와 인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온 산업들을 대체하는 경제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치와 경제 시스템이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얼마나 취약하고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게, 즉 부정적으로 진화해왔는지를 우리는 통감하고 있다. 이번 팬데믹이 끝나도 위기는 반복해서 찾아올 것이다. 저자의 가장 큰 우려는 우리 인류가 성취해온 가장 귀한 가치이자 시스템인 민주주의의 근본적 붕괴와 아울러, 이를 대체할 수 있고, 심지어 일부의 지지까지 이끌어내고 있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보편화이다(저자는 중국과 이번 사태에 대한 중국식 대처법을 모방하다가 재앙을 맞은 서구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지만, 저자는 그런 미래가 인류의 더 큰 재앙을 초래하는 행위일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마지막에 전투적 민주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이 특정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 지켜야 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계와 산업계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시민의식 향상을 위한 학습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가상의 숫자 놀음이 아닌, 눈앞에 숨쉬고 있는 인간, 생명을 중심에 두는 평화로운 혁명을, 저자는 꿈꾸고 있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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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스테이 - 세계 18개국 56명 대표 시인의 코로나 프로젝트 시집
김혜순 외 지음, 김태성 외 옮김 / &(앤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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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꿈꾸는 사람들과 거기에서 꿈꾸는 사람들의 생존신고서. 시는 이렇게 대혼돈의 시기에 온라인 네트워크의 협력을 받아 집단적인 생존신고서의 역할로 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나의 목소리면서 동시에 여러 사람의 아우성이 뒤섞인 시의 변신은 무죄! 어둠의 시대에는 어둠의 언어로 만나자? 어둠의 언어가 지향하는 바는 저 멀리 있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빛일 것이다. 광기와 무지에 대한 항체, 백신의 역할 - 과연 시는 코로나 시대에 정신과 영혼의 백신 혹은 치료제로 인류를 위로할 수 있을까?

 

아무리 시가 고상한 언어 활동이라고 해도 결국 인간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 그러니 그 색채는 가장 아름다운 것에서부터 추악한 것까지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에 시도 결국 별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나 그 별 수 없음을 통해 인류가 지구 위에서 해온 일들은 얼마나 위대하고 또 공포스러웠던가. 그러고 보면 시는 역시 고상한 언어 활동이다. 아니 그나마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으려나?

 

 

 

 

 

 

수많은 긍정과 부정, 초연(한 척)이 뒤섞여 있지만 표지만 보면 너무나 평온하다. 지구에서 스테이? 지구는 점점 해로운 자원으로 전락하는 인류를 몰아내려 하고, 일론 머스크는 우주 여행을 넘어 인류를 화성에 데려가겠다고 하는 시대에 왜 지구에서 머무르겠다는 걸까? 아 - 표제작이라 할 시를 읽어 보니 잠시 멈춰 선다는 의미로 쓰인 거구나... 하, 그런데 어쩌나 다시 달려가는 인류의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을 거란 불안감. 인간은 망각의 동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아마 이때를 한동안은 상당히 깊은 인상으로 각자의 마음에, 집단의 기억에 새겨두고 있을 테지만, 그 흔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니까.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게 아니라 그 과거를 미화시키니까.

 

팬데믹을 대하는 시인들의 마음도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응축된 시어는 다양한 감정으로 드러난다. 아픔을 토해내고, 희망을 노래하고, 깨달음을 공유한다. 그리움을 표현하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냉철하게 상황을 보기도 하고, 자기만의 색을 덧씌우기 위해 시적 본능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이도 있다. 공동체의 붕괴,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 서로를 믿지 못하거나, 아니면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심정.

 

무력감, 감사, 신경질, 비난, 필사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끝에 오는 믿음. 바이러스를 적으로 보는 사람,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것이 전쟁도 아닌데... 라며 사태의 본질을 차분히 돌아보려는 사람들이 시의 언어들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반성보다 적응을 부각시키는 노래는 조금 끔찍하다. 살아남는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삶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우리를 먹여살리는 이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 재고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사태도 반복될 것이고 이런 시들의 향연도 반복될 것이다. 그러다 종말.

 

그런 가운데서도 눈에 띄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어서 오세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인권문제도 팬데믹도/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닌가?/ 인간의 추악한 면이 드러난다는 의미에서”

 

나는 사람들이 좀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모두들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이 땅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지. 필요한 건 회개다. 희망을 노래하는 건 우리 몫이 아니다. 끝없이 회개한 자에게 베풀어지는 자연의 은총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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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글을 잘 쓰게 될지도 몰라 - 하루 5분, 70가지 방법으로 달라지는 나만의 글쓰기
캐런 벤크 지음, 황경신 옮김 / 큐리어스(Qrious)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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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70가지의 글을 쓰기 위한 훈련 메뉴로 채워져 있다. 엄밀히 말하면 훈련이라기보다는 글쓰기를 좀 더 편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친숙하게 만들 수 있는 팁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책의 가장 특징은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바로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책읽기와 내용의 실천, 즉 참여를 동시에 진행시키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70가지의 글쓰기 방법을 70일에 걸쳐서 긴 호흡으로 익히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독자의 상황에 따라서 기간을 단축하거나 길게 하거나, 아니면 한 번 쭉 읽어보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해보는 것도 좋은 사용법일 수 있겠다.

 

 

 

 

 

 

모든 글쓰기 요령 혹은 방법론을 표방하는 책들이 그렇듯이 기본은 일단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소스, 즉 재료를 많이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재료라는 것은 의미의 최소 단위, 즉 ‘단어’를 많이 채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책에는 많은 단어들이 소개되어 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좋아하는 단어들을 모아보라고 권하면서 그 예시로 17쪽에 다양한 단어의 예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별하지 않지만 너무 평범해서 주목하지 않았던 단어의 모임이 때로는 귀한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움직임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기존에 있는 표현이 아닌 나만의 감각으로 명명하는 색깔 등, 쉬운 단어들의 수집,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의 모음 등 특정 주제나 범위를 정하여 단어들을 모아볼 것을 권하고 있다.

 

말이 안 되는 것, 엉뚱한 것을 써보라는 것도 흥미롭다. 이것은 밴드 산울림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와 비슷한 감각 혹은 감성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러한 논리와 이성을 뛰어넘는 단어의 조합과 활용이 글쓰기를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실제 대화를 녹음해보라는 권유도 신선했다. 작가는 현실을 뒤집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재료를 훔쳐와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다양한 소리, 대화 같은 것을 글로 그대로 옮겨 보고, 자신만의 개성으로 변형시켜 신선한 문장이나 재미있는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수업 중간중간마다 ‘잘 쓰고 싶은 당신에게’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현재 글쓰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이들의 살아 있는 조언을 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대체로 독서, 호기심, 아이 같은 마음, 자기만의 방식이나 관점을 가지는 것, 틀에 얽매이지 않기, 생각을 바로 글로 옮기기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여정을 성실하게 걸어간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요즘, 자기에게 맞는 책 하나 골라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글쓰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 나아가 나는 물론이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삶의 기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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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스 노벨
스티븐 리콕 지음, 허선영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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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날개에 있는 작가소개에서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학의 정교수로 일하면서 풍자·유머작가로 나와 있지만, 구체적으로 스티븐 리콕은 맥길대학에서 30년간 경제학을 강의한 인물이다. 그래서 책 속에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맥락에서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 상황에 대한 인간의 심리, 돈을 둘러싼 인간의 내면적 모순과 충동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여기, 해초에 묻히다’에서는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선원들을 하나씩 죽이는 계획을 실행하던 선장과 이를 알아챈 선원이 합작하여 일을 벌여나가지만, 결국 욕망만을 향하던 인간의 비극적인 최후를 약간의 유머를 치면서 그려내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인 ‘넝마를 걸친 영웅’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비정한 도시인 뉴욕에 왔지만 결국 아무 일도 구하지 못하고 전전하던 차에, 부정한 일과 범죄를 저지르면서 오히려 유명 인사가 되어 재력가로서, 또 유력 정치인으로 물망에 오른다는, 아이러니와 자극적인 것에 중독되어 있는 도시 문명의 씁쓸함을 풍자적 문법으로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인 ‘어느 순진한 여인의 슬픔’은 그 의도를 좀 알기가 어려웠는데, 주어진 부유한 환경이 싫다 싫다 하면서도 결국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여인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듯한 느낌까지 드는 캐릭터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순진한 여인의 어리석음인가? 그런 여인을 상대로 한 사기꾼을 부각시키려는 것이었을까? 네 번째 이야기인 ‘무너진 장벽’에서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맺어진 부부가 권태로운 삶을 이어가다 우연히 만나게 된 조난 과정에서의 해프닝을 다루고 있는데, 파탄 결혼생활 끝 무렵에 있는 처지라 해도 끝까지 이성을 지키며 불륜을 저지르지 않으려는 남자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재미나게 그려진다.

 

 

 

 

 

 

다섯 번째 이야기인 ‘하일랜드 아가씨 해나와 오처라처티 호수의 지주’에서는 오랜 세월 대대로 이어지는 두 집안 세력 간의 뿌리 깊은 원한과 저주의 덧없음을 스코틀랜드적 정서와 함께 전하고 있으며, 여섯 번째 이야기인 ‘누가 범인일까?’는 이 작품집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소 밋밋한 추리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어 특별한 감상이랄 것은 없다. 그 이유는 아마 이 작품의 1900년대 초반 정도에 나온 것이라서 그렇다고 생각다. 일곱 번째 이야기 ‘캐롤라인과 불사조 아기의 크리스마스’는 빚으로 농장을 저당 잡힌 부부가 하필 크리스마스에 압류당할 처지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시대적 자화상을 풍자한 것 같았다.

 

여덟 번째이자 이 작품집의 마지막 작품인 ‘석면 옷을 입은 사나이’는 시대에 만연한 온갖 사회 문제를 뒤로 하고 ‘미래로의 잠’에 빠져 2~300년 후에 깨어나려는 계획을 실행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눈을 뜬 그가 본 미래 사회는 그가 예상한 대로였을까? 아니면? 그러나 그 결과가 어찌되었든 간에 주인공은 다시 자기의 시대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데…

 

 

 

 

 

 

이 작품집의 제목에 있는 용어인 ‘난센스’, 즉 넌센스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 혹은 화자의 의도와 다르게 파악되는 언어 사용, 의미의 교란이 발생됨 등을 뜻한다. 결국 이 비틀린 이야기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독자들에게 읽는 동안 조금이라도 휴식을 주고 다시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서적 환기를 제공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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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리뷰어스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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