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스테이 - 세계 18개국 56명 대표 시인의 코로나 프로젝트 시집
김혜순 외 지음, 김태성 외 옮김 / &(앤드)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에서 꿈꾸는 사람들과 거기에서 꿈꾸는 사람들의 생존신고서. 시는 이렇게 대혼돈의 시기에 온라인 네트워크의 협력을 받아 집단적인 생존신고서의 역할로 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나의 목소리면서 동시에 여러 사람의 아우성이 뒤섞인 시의 변신은 무죄! 어둠의 시대에는 어둠의 언어로 만나자? 어둠의 언어가 지향하는 바는 저 멀리 있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빛일 것이다. 광기와 무지에 대한 항체, 백신의 역할 - 과연 시는 코로나 시대에 정신과 영혼의 백신 혹은 치료제로 인류를 위로할 수 있을까?

 

아무리 시가 고상한 언어 활동이라고 해도 결국 인간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 그러니 그 색채는 가장 아름다운 것에서부터 추악한 것까지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에 시도 결국 별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나 그 별 수 없음을 통해 인류가 지구 위에서 해온 일들은 얼마나 위대하고 또 공포스러웠던가. 그러고 보면 시는 역시 고상한 언어 활동이다. 아니 그나마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으려나?

 

 

 

 

 

 

수많은 긍정과 부정, 초연(한 척)이 뒤섞여 있지만 표지만 보면 너무나 평온하다. 지구에서 스테이? 지구는 점점 해로운 자원으로 전락하는 인류를 몰아내려 하고, 일론 머스크는 우주 여행을 넘어 인류를 화성에 데려가겠다고 하는 시대에 왜 지구에서 머무르겠다는 걸까? - 표제작이라 할 시를 읽어 보니 잠시 멈춰 선다는 의미로 쓰인 거구나... , 그런데 어쩌나 다시 달려가는 인류의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을 거란 불안감. 인간은 망각의 동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아마 이때를 한동안은 상당히 깊은 인상으로 각자의 마음에, 집단의 기억에 새겨두고 있을 테지만, 그 흔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니까.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게 아니라 그 과거를 미화시키니까.

 

팬데믹을 대하는 시인들의 마음도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응축된 시어는 다양한 감정으로 드러난다. 아픔을 토해내고, 희망을 노래하고, 깨달음을 공유한다. 그리움을 표현하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냉철하게 상황을 보기도 하고, 자기만의 색을 덧씌우기 위해 시적 본능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이도 있다. 공동체의 붕괴,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 서로를 믿지 못하거나, 아니면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심정.

 

무력감, 감사, 신경질, 비난, 필사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끝에 오는 믿음. 바이러스를 적으로 보는 사람,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것이 전쟁도 아닌데... 라며 사태의 본질을 차분히 돌아보려는 사람들이 시의 언어들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반성보다 적응을 부각시키는 노래는 조금 끔찍하다. 살아남는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삶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우리를 먹여살리는 이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 재고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사태도 반복될 것이고 이런 시들의 향연도 반복될 것이다. 그러다 종말.

 

그런 가운데서도 눈에 띄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어서 오세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인권문제도 팬데믹도/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닌가?/ 인간의 추악한 면이 드러난다는 의미에서

 

나는 사람들이 좀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모두들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이 땅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지. 필요한 건 회개다. 희망을 노래하는 건 우리 몫이 아니다. 끝없이 회개한 자에게 베풀어지는 자연의 은총일지니!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