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축제 -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8020 이어령 명강
이어령 지음 / 사무사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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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이어령 선생님쯤 되는 분이라면 더 많은 돌아봄이 미디어와 대중들 사이에서 일어나야만 할 것 같은데,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 워낙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라 그런지, 그래도 세상에 어느 정도 눈에 띄는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죽음조차도 빠르게 소비되고 마는 느낌이 들 지경이다.

최근 볼 수 있었던 많은 이어령 선생님의 관련 프로그램들이나 책들을 보면 일관적으로 강조하는 하나의 개념이 바로 ‘상상력’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 상상력조차 어떤 내용이 채워지기도 전에 소비된 다음 또 다시 다른 포장지를 뒤집어쓴 빈껍데기의 상상력들이 치킨이 되기 위해 목이 절단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닭들마냥 혼란스러운 일직선 줄을 서고 있는 것 같다.

이름에서 성으로 쓰이는 ‘홍’이라는 글자에서 ‘ㅎㅎ’라는 웃음소리를 보고, 녹는 얼음에서 봄의 소리를 듣는 아이들의 제한없는 상상력이 아직 우리사회에서 어떤 가능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답답함을 마지막까지 풀지 못하고 가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경직되어 있다. 자유로운 생각, 발상의 전환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이어령 선생님은 숫자를 세는 문화에서 비인간성을 읽어냈다. 모든 것을 이해타산으로 바라보게 하는 숫자의 문화에 위기감을 느끼신 것 같다. 사람의 감정이나 감수성, 추억 같은 것들까지 숫자는 치환하는 세상은 사람을 계산적이고 냉정하게 만든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숫자라는 것은 문자 언어에 길들여진 인간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정신적 자유의 수단, 또 다른 세계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우려는 숫자의 의미와 용도를 제한적으로 가르치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돌려 비판하신 것처럼도 들린다.

숫자로 풀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숫자가 재탄생하는 세계를 찾는 것은 이어령 선생님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의식인데, 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데 있어 하나의 열쇠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숫자가 인간을 대상화하고 동일한 특성을 가진 개체군으로 묶어버리는 데 반해, 이름은 개개의 가치와 개성, 그러니까 개체의 고유성을 확보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앞서 언급했던 숫자의 편향된 개념화와 활용이라는 문제에 이름의 세계를 잇대어 두 세계가 혼용되는, 다시 말해 숫자의 세계가 잃어버린 다양성과 조화, 균형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되찾아주는 역할을 이름의 세계가 한다는 것이다. 보통 수학 교육에서 스토리텔링이 접목되어 아이들에게 수학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좋겠다. 물론 이마저도 어떤 틀에 갇힌 것 같아 본래의 의도가 흐려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축제란 여러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의식이다. 생각의 다양성이 도외시되고 획일화된 관념으로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새로운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단서는 이전에 필요없다고 여기던 것을 다시 떠올리고 회복하는 데 있다. 잊혀지고 버려진 비효율의 가치들이 이제는 우리를 먹여 살릴 자원으로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정량적 가치와 정성적 가치를 자유롭게 혼용할 수 있는 역량이 새 시대에서의 생존을 보증하는 기준이라면, 이어령 선생님의 아이디어가 다시 한번 축약된 이 책의 내용은 미래를 내다보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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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13
이디스 해밀턴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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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로부터 인류가 스스로를 매우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흔적을 그리스 신화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전까지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형성했다는 것, 다시 말해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사고가 시작되었고 그 정점과 중심에 이성과 합리의 시대를 열었던 그리스 문명이 꽃피웠던 것이다.

물론 인간 중심이라고 해서 그때까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비현실적인 상상과 현실의 모호한 결합이라는 세계관이 완전하게 혁파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신화라는 보편적인 의식의 공유 수단이 비현실에서 좀 더 현실적인 것으로, 특히 새롭게 발견된 인간의 가치가 반영된 것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모든 신들의 으뜸인 제우스를 비롯하여 올림포스의 열두 신, 그리고 인간들의 물질적, 정신적 삶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의인화한 형태의 신들이 다양하게 소개된다. 대체로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반인반수의 형상, 또 생김새가 매우 기괴한 하급 신들로 다양한 계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신화 속 신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성향을 반영한다. 그래서 신이라고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단점들도 같이 드러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제우스는 알려진 바와 같이 그 권능에 비례하여 엉뚱하고 탐욕적이고 속좁은 모습도 자주 드러낸다.

대부분의 신들은 실제적으로 이야기의 범위를 넘지 못했고, 따라서 보통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고 관심 밖에 머물러 있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다만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요소가 반영된 신들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입에 오르내리며 더 풍성한 이야기를 가지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세상의 창조와 관련된 부분인데, 여기에는 그리스 사람들의 세계관이 일정 부분 놀랍도록 기독교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태초의 어둠과 혼돈, 하늘과 대지의 생성 등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인류의 정신 문화의 공통적·보편적 인식을 짐작하게 한다. 기독교를 하나의 신화로 볼 때, 그리스 신화와 다른 경향을 띠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지중해의 북쪽과 동쪽 기후와 지리적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인간적인 신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편안함, 다시 말해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차원으로 치환시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모든 신화적 인물에 현실감을 부여함으로써 이전에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불가해한 현상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적 안전 장치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더불어 로마의 지배가 본격화되는 시기가 되면서 이전되고 변형되는 그리스 신화의 형태는 보다 현실적이고 제도적이고 역사적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지중해 신화를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의 정신 문화의 흐름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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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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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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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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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은 쉽게 이해하자면 세상에 절대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마치 현대 물리학에서 시공간 어느 지점이라도 광활한 우주의 기준으로 생각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해낸 것처럼,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사상의 최전선에서도 절대성은 부인되고 오직 상대성만이 유일하게 통용되는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이란 개념 혹은 가치는 그 말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을 말하고,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살아갈 자유를 주장하지만, 그것이 어찌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당장 우리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조건을 거부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포스트모던적 사고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조건을 전제로 살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당장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나는 자연인이라고 주장하고 어디 가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상황도 불가능하다. 모든 토지에는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사상의 자유를 말하지만, 모든 사상에는 근본이 있으며 그 근본은 타인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체계다. 수많은 사상들 중 하나, 심지어 완전한 이기주의적 관점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여 내 인생은 내 거, 내 마음대로 하면 그만, 이라는 식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그것은 고유한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들어놓은 것을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인간은 완전한 고독자가 될 수 없다. ‘내 삶의 방식’ 따위는 없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내가 내 의지대로 사는지 타인의 의지에 교묘하게 조종되어 살아가는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의 여부 문제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식에서 멀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본능, 욕구, 탐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취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 따위를 지식의 범주로 넣는 저열한 수준이 판치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볼 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수많은 진실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정말로 이롭고 건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어떤 가치들은 사람들에게 일정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기준은 사람들로 하여금 건전한 사고와 행동을 일으킬 것이다.




많은 거짓 정보들이 사람들의 삶을 왜곡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는 이성임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목격하는 현실에 대해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참된 진실을 가려내는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부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의 삶을 왜곡하는 가장 큰 적은 정치와 미디어다. 미디어 중에서는 인터넷 언론의 가장 영향력이 크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가 가장 어려운 문제가 정치와 관련된 사항이다. 여기에서 인터넷은 무지성적 여론몰이의 플랫폼이 되었다. 반대로 저자의 진실을 가늠하는 철학적 방법론을 시도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험장이 우리나라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는 점에서 『진실의 조건』은 일독할 가치가 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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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디바이드 시대가 온다 - 팬데믹 이후, 한국사회의 지역·디지털·기업을 양극단으로 가르는 K자형 곡선의 경고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지음 / 월요일의꿈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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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의 핵심 개념이기도 한 ‘코로나 디바이드’란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심해진 양극화 현상을 의미한다. 소득과 자산규모, 생활수준, 의식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사람들이 특정 계층으로 나누어져, 한 인류라는 테두리로 묶어 인간이란 존재를 생각하기에 더욱 곤란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전부터 자본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계급사회를 형성했다는 이론과 실증은 충분히 연구되고 결과물로 나와 있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개선 또는 완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이런 시도가 제대로 이뤄지기도 전에 팬데믹이 이 분화를 가속시킨 것이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심하면 심했지 절대 좋아졌다고 볼 수 있는 구석이 없다. 잘 사는 사람들 더 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계층이동사다리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자수성가도 더 어려워졌고, 고시 같은 것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기에는 돈의 역할이 더 커져버렸다. 뭘 하려고 해도 근본적인 부분에서 너무 격차가 나버렸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수저론’을 말하며 웃픈 현실을 논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가장 큰 삶의 변화는 비대면이라는 생활방식이다. 물론 우리는 비대면이라는 방식에 전혀 무방비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익숙한 형태로 비대면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인터넷이 있다. 통신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이 굳이 접촉하지 않아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팬데믹 이후 달라진 점이라면 그 영역과 범위가 더욱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일자리 근무 패턴의 변화다. 그리고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 행위에 물건을 팔고 사는 당사자들보다 중간에서 배송을 하는 분들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바로 ‘기술’이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문제의식, 즉 양극화의 핵심에는 발전된 기술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소득과 자산, 생활수준과 의식의 격차를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틀에서 보면 기업과 지역 차원에서도 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나, 기술을 도입하여 생산성과 영업을 극대화하는 역량의 보유 여부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이 책은 미래에 대해 어두운 전망만 하지는 않는다. 마치 인터넷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할 때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듯이, 삶의 전반을 지배하게 될 디지털 기술이 오히려 현시점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 사항들을 해소할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다양한 시나리오로 예측해본다. 특히 전문적인 분석 다음에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전제로 다가올 미래상의 두 가지 가능성과 전혀 새로운 상황을 전망하는 이 책의 전개 방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미래학에 대한 막연한 인식을 구체적인 이해의 단계로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생각되었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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