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13
이디스 해밀턴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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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로부터 인류가 스스로를 매우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흔적을 그리스 신화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전까지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형성했다는 것, 다시 말해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사고가 시작되었고 그 정점과 중심에 이성과 합리의 시대를 열었던 그리스 문명이 꽃피웠던 것이다.

물론 인간 중심이라고 해서 그때까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비현실적인 상상과 현실의 모호한 결합이라는 세계관이 완전하게 혁파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신화라는 보편적인 의식의 공유 수단이 비현실에서 좀 더 현실적인 것으로, 특히 새롭게 발견된 인간의 가치가 반영된 것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모든 신들의 으뜸인 제우스를 비롯하여 올림포스의 열두 신, 그리고 인간들의 물질적, 정신적 삶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의인화한 형태의 신들이 다양하게 소개된다. 대체로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반인반수의 형상, 또 생김새가 매우 기괴한 하급 신들로 다양한 계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신화 속 신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성향을 반영한다. 그래서 신이라고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단점들도 같이 드러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제우스는 알려진 바와 같이 그 권능에 비례하여 엉뚱하고 탐욕적이고 속좁은 모습도 자주 드러낸다.

대부분의 신들은 실제적으로 이야기의 범위를 넘지 못했고, 따라서 보통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고 관심 밖에 머물러 있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다만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요소가 반영된 신들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입에 오르내리며 더 풍성한 이야기를 가지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세상의 창조와 관련된 부분인데, 여기에는 그리스 사람들의 세계관이 일정 부분 놀랍도록 기독교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태초의 어둠과 혼돈, 하늘과 대지의 생성 등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인류의 정신 문화의 공통적·보편적 인식을 짐작하게 한다. 기독교를 하나의 신화로 볼 때, 그리스 신화와 다른 경향을 띠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지중해의 북쪽과 동쪽 기후와 지리적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인간적인 신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편안함, 다시 말해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차원으로 치환시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모든 신화적 인물에 현실감을 부여함으로써 이전에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불가해한 현상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적 안전 장치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더불어 로마의 지배가 본격화되는 시기가 되면서 이전되고 변형되는 그리스 신화의 형태는 보다 현실적이고 제도적이고 역사적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지중해 신화를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의 정신 문화의 흐름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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