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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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방영했던 '동안미녀'라는 드라마에서 장나라가 연기했던 역할은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극 중반 라이벌과의 경쟁 속에서 디자이너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게 되는데 일시적이긴 했지만 바로 색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증상이 생겨버린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흑백이나 세피아톤의 우중충한 모습으로 보이게 되는 장면, 당혹감과 좌절감으로 힘들어하는 여주인공의 모습... 기존에 너무나 익숙해서 인식하지도 못했던 하나의 감각이 그렇게 마비되어버린다는 것이 어떤 고통을 가져올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맛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들리지 않는다거나 보이지 않는다거나 하는, 있던 것이 없어졌을 때의 고통. 하지만 인간은 그리 약한 존재가 아니라서 특정한 부분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더 큰 성취를 이루는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색은 물론이고 특정한 한 감각이나 가치만을 가지고 우리 삶을 분석하고 해석해보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분명한 한계가 있는 연구 방법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공조명이 개발되기 이전, 횃불로 실내를 밝히던 시절의 색과 오늘날의 색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예전에는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의 빛과, 실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촛불 등의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은 색을 움직이고 변화하는, 유동적인 것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 수 있었는데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색에 관한 현대인과 과거 사람들과의 인식 차이는 자명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래된 예술작품들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기술과 지식으로만 과거의 예술적 미학을 재건하려고 하는 시도들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활발히 활동하던 1970년대 전후반에는 색에 대해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 불모지와도 같은 상황에서 색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했던 저자의 노력은 초기에는 많은 애를 먹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색이라는 분야가 인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틀을 갖추게 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자서전적 성격과 인문학의 성격을 동시에 띄고 있어 저자의 색에 대한 추억들, 역사적 사건, 사회문화적 현상, 일상 등에서 우리가 미처 크게 신경쓰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히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색과 관련한 사사로운 것에서부터 제법 묵직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약간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색에 대해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괜찮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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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 서양과 나머지 세계
니얼 퍼거슨 지음, 구세희.김정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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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닷컴 버블의 붕괴,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 2008년의 리먼 브라더스 파선에 의한 금융 위기와 최근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세계 전반의 재정 문제로 인한 금융 위기까지... 2000년 이후로 서구 사회가 보여준 모습에서 더 이상 그 이전처럼 세계 경제와 문화를 주도하는 자신만만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것이 있기 때문에 당장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들로부터 태동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대안과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증거일 것이다.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은 중세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서구 사회의 강력한 체제가 조금씩 흔들리면서 이제는 그 패권이 다른 문화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는 시점에 그들의 관점에서 서구사회가 어떻게 지난 500년 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경쟁, 과학, 재산권, 의학, 소비, 직업이라는 요인으로 나누어 돌아보고 앞으로 역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다가올 미래에 과연 중국이 진정한 패권을 차지할지, 아니면 이슬람 문명의 약진이 전 지구를 휩쓸지 궁금해진다. 


   저자의 주장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사에 대한 오늘날 사람들의 인식과 지식이 너무나 부족해진 데서 오는 안타까움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 오늘과 내일을 살펴보는 작업이 소홀해지면서 현재 우리가 처한 총체적인 위기의 상황 앞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소비되고 잊혀지는 인스턴트성 지식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오늘날 부족한 것을 채우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보다 더 넓고 깊은 시각을 지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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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의 힘 - 회사의 미래를 결정짓는 대한민국 대표 경영학 강의
한정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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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안철수 박사님이 미디어와의 인터뷰나 강연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신 것 중의 하나가 기업가 정신에 관한 것이다. 나 역시 안철수 박사님의 생각을 통해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편이었는데 마침 그 기업가 정신에 대해 다룬 책이 나와서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기업가 정신 하면 열정과 아이디어, 패기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막상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현실적 낙관주의'라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열정과 아이디어, 비전은 철저한 준비와 계획, 이론적 무장과 실행력의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한 낙관적 마인드를 통해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밝힌 후, 산업화 시대에 그 효과가 빛났던 한국인 특유의 기업가 정신을 돌아보며 오늘날 우리 시대에 필요한 기업가 정신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한 개인이 독자적, 혹은 소속된 기업 내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고자 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과 지침들, 사업을 시작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사업의 기회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어려움들, 재정적 문제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 대강 감으로만 알고 있던 기업가 정신이 하나의 뜬구름 잡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에 둔 매우 실제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무기임을 알려주고 있다. 


   경영이론서의 성격을 가진 책이지만 이 기업가 정신이란 것은 비단 사업과 관계된 사람들에게만 유용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라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봤을 때 이 기업가 정신은 자신의 인생이 답답하거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깊이 있게 공부해 볼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마이클 델은 물론 한국 기업인들의 사례도 풍부하게 실려 있어 내용을 더욱 충실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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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 미디어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법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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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와 통신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처음 삐삐가 나왔을 때, 휴대폰이 나왔을 때만 해도 나는 그냥 좀 편리한 기계가 나왔구나 생각했었고 국민 대다수가 휴대폰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도 별다른 큰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문학작품에서 휴대폰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도 상상하지 못한 상태로 한동안 지냈었다. 하지만 휴대폰은 어느새 인간의 장기처럼 필수적인 삶의 요소가 되었고 문학 작품 같은 데서도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그렇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가며 새로운 문화의 풍경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 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점점 사람들의 대화와 행동들이 이전과는 또 확실히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라디오 시대를 지나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의 정보 교류와 소통의 방식이 큰 변화를 겪었는데 컴퓨터의 등장은 그보다 더한 삶의 방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PC통신으로 시작해 인터넷으로 확산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변화는 좀더 자유롭고 확장된 교제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익명성으로 인한 인간의 악한 면, 감춰두어야 할 면까지 대대적으로 인간 소통의 무대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이미 그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바보상자라 불리는 텔레비전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시청하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매우 유익한 소통 도구가 될 수 있듯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커뮤니케이션 세상에서도 각각의 의지와 생각에 따라 인생을 이롭게 할 사람은 이롭게 하고 악용할 사람은 악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완전한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긴 했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은 여전히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닌 인간임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적 감성의 조화와 균형, 옛 것과 새 것을 구분하고 분리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과감히 제해버릴 수 있는 지혜를 지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퓨전이 유행이고 대세인 시대인데 미디어와 통신 기술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째서 이토록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의아한 일이다. 인간, 인간성, 인간의 존엄성이 중심이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났던 재앙들은 역사를 통해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발전한 기술의 힘을 현명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밖에도 다양한 문화 현상, 드라마나 영화, 추억 등의 테마들을 다루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짧은 글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읽는 부담이 덜하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의미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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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레드 라인
제임스 존스 지음, 이나경 옮김, 홍희범 감수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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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로메다 은하 사진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천체 사진 중 하나가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허블 딥 필드'일 것이다. 직사각형의 평면 위에 찍힌 다양한 은하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수없이 많은 은하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소멸하는 전쟁터와도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은하와 은하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광경은 화려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준다. 그 작은 프레임 안에 담긴 은하들만 해도 수백 수천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더 경이롭고 놀라운 것은 영원히 측정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무한히 뻗은 우주의 한 부분만을 촬영한 장면이라는 사실이다. 그와 같은 광대한 축제이자 전쟁의 풍경은 지구, 태양계를 둘러싼 사방팔방으로 뻗은 전 영역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을 주제로 한 소설을 말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예전에 봤던 천체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신 레드 라인'이란 작품 속 상황이 그 천체사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은 나만의 착각이길...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늘 있어왔고 심지어 문화와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더 교묘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란 거대한 틀 속의 한 부분인 한 장의 구체적이고 처절한 묘사가 담긴 사진과 같은 과달카날 전투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볼 수 있는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 감각들은 비교적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정이입이 너무나 힘든 고통스런 세계였다. 하지만 분명 동시간대에 지구 반대편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비극이기에 완전히 따로 떼어놓고 생각되는 것도 아닌, 아주 미묘한 느낌이다. 전쟁은 우주적으로 봤을 때 평범한 풍경인가? 아니면 지구 위의 인간만이 만들어낸 광기의 산물인가?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도 읽을 수 있는 이 느낌이 역사는 여전히 진보가 아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쟁터로 이동 중인 함선에서부터 시작되는 긴장감과 불안감,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부 전투신을 연상시키는 혼란과 광기, 무감각이 뒤섞인 전투 현장의 묘사, 적군을 죽였을 때 온몸을 휘감는 쾌감과 죄책감의 이중주, 성적 쾌감보다 더한 전쟁터에서의 동지애, 경멸, 명예욕... 모든 것이 재산 때문이라는 한 병사의 중얼거림은 전쟁이라는 것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하나의 사업 거래 같은 전쟁은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사방에서 터져대는 폭발과 찢기고 뒹구는 시체들 앞에서 어느 순간 초연해지고 두려움을 극복해낸 것 같다가도 모래성 무너지듯이 무너지는 자아의 상실감, 초현실적인 공간감, 씻지도 못하고 더럽고 습한 곳에서 며칠이나 보내면서 온몸에 구더기가 들끓는 것 같은 기분... 도대체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 것일까? 개인은 왜 강하게 저항하지 못하고 이런 처참한 역사의 비극에 내몰려야 하는가? 왜 이용당해야 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어떤 결론을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반복되는 비극의 한 부분을 뜯어내어 여과 없이 눈앞에 들이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느껴보라고. 이 작품을 어떻게 영상화했는지 영화를 꼭 한 번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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