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 철학 수업 - 세상을 바꾸기엔 벅차지만 자신을 바꾸기엔 충분한 나에게
전진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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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과 책 소개, 프롤로그만 봐서는 한국사회에서 튀는 사고방식을 가진 한 괴짜 소녀가 한국을 벗어나 다소 이채로운 행선지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철학을 통해 자신의 꿈을 확인하고 이뤄가는 이야기 혹은 청춘 응원가 같은 분위기인데, 책을 읽어갈수록 삶의 무게감과 그 속에서 빚어지는 혼란, 고군분투, 몸부림 같은 것들이 느껴져 마음이 가볍지 않다. 그런 가운데서 한번씩 빵 터지는 유머러스한 문장에 반응하는 내 모습에 머쓱해지기도 했다.

 

이 책에서 지금 프랑스의 모순적 상황을 다룬 내용을 읽다가, 예전 홍세화 선생님의 책을 통해 프랑스의 똘레랑스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가졌던 때가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21세기적 변주라고 평가하고 싶다. 두 저자의 살아온 이력이나 세대, 생각이 많이 다르지만, 프랑스라는 무대를 두고 펼쳐지는 사색의 향연이라는 차원에서 한 맥락으로 엮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는 오늘 우리의 모습과 프랑스의 민낯, 그 사이를 신기루처럼 이어주고 있던 동경과 환상이 실존적인 깨달음으로 발전되어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앞에 오게 된 의미 있는 한 개인의 행보가 녹아 있다.

 

내용은 크게 1장 배움의 시간 : 나에게 가장 좋은 삶, 2장 배움의 재구성 : 모두가 덜 불행한 세상, 이렇게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으로는 철학에 대한 깔끔한 정의다. ‘당대의 중요한 가치나 당연한 생각에 의문을 품도록 간질이는 태도’. 철학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일반적인 대답이 나와 세계에 대한 기원과 의미, 과정 등을 밝히는 진리 탐구 정도인데,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전혀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철학의 정의를 내놓았다. 그리고 언어 공부를 하면서 언어 학습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데, 쌓아 올린 것을 부서서 토대를 다지고 넓히는 과정, 다시 말해 또 다른 확장된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표현한 부분이었다. 특히 모국어와 외국어가 같은 몸에서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2장에서는 저자가 철학 공부를 하면서 배운 내용들이 자기의 삶의 필터를 통해 성찰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좀 더 내밀한 개인사가 공개되어 있어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이런 이야기까지 내보여도 괜찮을 걸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지난 삶의 여정을 부정하거나 감추는 것으로는 추와 미라는 이분법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삶을 긍정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읽어가게 되었다. 또 청춘의 속성이 썩지 않는 가치를 만들 가능성이라고 재정의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의 생각과 함께 프랑스의 현 상황이 묘사되는 내용들이 또 흥미로운데, 그들의 관용 문화 이면에 숨겨진 문화적 우월주의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이중적 잣대가 지금의 프랑스의 혼란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도 있다. 타인의 다름보다 먼저 나의 다름을 고려해봐야 해야 한다는 저자의 깨달음이 자유와 평등, 박애정신을 주창했던 프랑스의 현실적인 모순으로부터 피부에 와닿는 교훈으로 도출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이 책에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뇌가 담겨 있다. 질문과 답이라는 도식을 뒤집어 질문 자체에 대안 모순 발견과 대안 제시라는 형태로 발전시키고, 기존의 가치관을 의심하고, 스스로 묻고 또 물어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프랑스식 철학 수업으로부터의 배움이, 저자를 통해 어떤 식으로 열매 맺어 대중들에게 계속해서 선보이게 될지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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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중국사의 주인공이라면 1 - 하, 상, 서주편 고양이가 중국사의 주인공이라면 1
페이즈 지음, 하은지 옮김, 송은진 감수 / 버니온더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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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중국에 대한 감정은 복잡하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호감보다 비호감적인 면이 더 부각되어 있고,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중국이 가진 저력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가려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중국 내 소수 민족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었는데, 오히려 중국의 중앙 핵심 권력이 더 막강해지면서, 세계를 향한 야욕이 일대일로라는 정책을 통해 오히려 더 굳건한 제국주의의 방향으로 노선을 잡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중국에 대해 더 잘 알고 그들과 어떻게 하면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발전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할 지 고민해야 될 형편이다. 외교와 정치의 최전선이 아닌 입장에 있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본 지식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중국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미래를 대비하는 데 나라에나 개인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럴 때 출간된 버니온더문 출판사의 고양이가 중국사의 주인공이라면은 시의적절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방대한 중국의 역사를 핵심적인 내용 위주로 맥을 짚어가면서 학습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역사책과 캐릭터북을 조합해놓은 듯한 편집으로, 특히 고양이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어렵고 거리감 느껴지는 중국 역사를 친근한 분위기로 접근시킨다는 점에서 이 책은 주목할 만하다.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편집자의 말코너를 통해 보완하고 있고, ‘부록에서 인물이나 개념에 대한 정보를 보충하고 있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처럼 중국에도 토템 기반(황제)의 부족과 농경 부족(염제), 또 사냥이나 전투를 통해 생존을 이어간 부족(치우) 등이 주요 세력을 이루면서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상고시대의 3대 우두머리(황제,염제,치우)라 표현할 수 있다. 결국 황제가 모두 평정하고 3대 부족이 화합하면서 이 셋이 중화 민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낯익은 표현인 삼황오제가 등장한다. 국가 형성의 기본 조건은 이 삼황오제의 시대에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후의 역사는 세계사의 일반적인 흐름과 비슷하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형편이 나아지자 평등했던 부족들의 관계는 깨지고 왕조가 세워졌다, 그리고 반복되는 권력다툼이 기본 틀이다.

 

같은 동아시아권에 속한 나라로서 협력적 동반자로 나아가야 하는 대상인 중국, 또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는 미국. 우리는 이 두 나라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어려운 외교적 과제를 여전히, 어쩌면 반영구적으로 안고 가야할 운명이다. 이럴 때일수록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고 미래를 위한 전략을 현명하게 수립해야 한다. 우리나라 외의 세계 역사를 가까이 하고 지식을 습득해나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국력을 증진시키는데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두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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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잠재력의 최고점에 오른 사람들 슈퍼휴먼
로완 후퍼 지음, 이현정 옮김 / 동아엠앤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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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과 로봇 등이 인간이 그동안 감당해 왔던 많은 역할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팽배한 가운데, 아직은 컴퓨터가 넘볼 수 없는, 그래도 오직 인간만이 감당하고 누릴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을 인간의 창의성과 사회성이라는 특성에서 개척하고 확장시키려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칼럼니스트인 로완 후퍼의 슈퍼휴먼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해 새로운 성찰을 하도록 유도하는 의미 있는 책이다.

 

한국어판 표지만 봐서는 소수의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조명하고 그 능력이 어떻게 가능했으며, 보통 사람들도 그렇게 될 수 있는지 과학적인 검증과 전망을 담은 단순한 구조의 취재기일 거란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 책에는 예상 못한 휴머니즘적 감동이 있었다.

 

 

 

 

 

 

 

학문과 예술, 스포츠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이 1사고2행동편에서 소개되고 있다. 지능과 기억력, 언어, 집중력, 가창력, 달리기 등의 분야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잠재력을 한껏 끌어내는 데 있어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 중 어느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 계속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한다. 슈퍼휴먼들은 대체로 스스로 느끼기에 노력, 즉 후천적인 면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지만, 이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유전적인 요인을 더 크게 보고 있었다. 물론 재능이나 훈련 어느 한 쪽만으로 해당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타고난 능력의 힘이 적절한 환경적 요인과 결합되었을 때 이른바 슈퍼휴먼이 만들어질 확률을 높게 보고 있었다. 학자들은 대체로 슈퍼휴먼들이 목표를 설정하거나, 그들의 부모가 적합한 양육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 개인의 의지와 노력, 열정의 여부까지 유전적인 요인의 영향 아래 있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거나 꿈을 이뤄가는 슈퍼휴먼들이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게 되었는지, 또 성장 환경이나 열정, 목표의식, 인생관, 가치관 등을 읽으면서 많은 자극이 되었고 부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3부에서부터 확실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앞 부분이 별로라는 얘기는 아니다.)

 

 

 

 

 

 

3부에서 다루는 인간 능력의 범주는 존재로 묶고 있는데, 그 내용은 장수와 회복력, 수면, 행복에 관한 것이다. 슈퍼휴먼을 논할 때 탁월한 지적 능력이나 신체 능력 정도가 일반적인 주제가 될 텐데, 인간의 수명과 회복 능력, 또 잠자는 것과 행복이 왜 인간이 지닌 잠재력의 대상이 되는 걸까?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인간에 대한 통찰이 바로 이 부분에서 다뤄지고 있었다.


인간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면서 마주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 비극적인 사고를 겪은 가운데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놀라운 과정, 적절한 쉼이 없는 현대인들의 비효율적 생존 양식에 대한 예리한 충고,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기 위한 교훈 등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서 그래도 아직은 인간이 지닌 용기와 인내, 포용성, 긍정적 태도, 삶의 의미를 재정의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 같은 것들이 문명 발전의 역기능으로 맞닥뜨린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바로 이것이 인간의 가치를 다시 높일 수 있는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임을 말하고 있다. 아직은 인간적인 것이 품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 포기하거나 절망할 때가 아니란 것을 흥미로운 주제를 통하여 전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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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 외로움은 삶을 무너뜨리는 질병
비벡 H. 머시 지음, 이주영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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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사회적 연결됨, 즉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위기와 위협, 갈등과 분열과 혼란,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파괴된 인간관계에 있다고 진단하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는 열쇠 역시 올바른 인간관계의 회복에 있음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물론 고도로 자본주의화 된 세상에서 시스템의 혁명적인 개선 없이, 저자가 제시하는 친절과 공감, 포용이라는 방식으로 확립될 수 있는 유대감과 인간적인 사회적 관계망의 재건 시도가 얼마나 시대의 난제를 극복해낼 수 있을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미국의 국가주치의라고 불리는 공중보건위생국장을 역임했다는 저자의 이력에 끌려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뜬금없다고 생각되겠지만 구약성경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먼저 꺼내보려 한다.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해서 하나이자 셋이며, 셋이자 하나인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저 삼위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신의 속성이 아주 특별하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는데, 이 세 위격의 존재가 관계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다시 말해 신의 속성 중 인간과 공유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관계성이라는 것이다. 처음 창조된 사람,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 그의 몸에서 취한 뼈로 만든 존재가 여자인 하와라는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역시 인간이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로 창조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정의의 근원은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굳이 종교적인 기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는 2관계는 본능이다에서 인간이 어떻게 사회적 존재가 되었으며, 어떻게 외로움이라는 본능이 인간에게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과학적인 추적을 하고 있는 내용을 보며, 이 시대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거론되는 우울증, 차별, 혐오, 분쟁 등의 문제의 원인으로 짚이는 외로움사회적 단절의 문제가 인간의 진화와 함께 전해내려온 유서 깊은(?)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기 인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협력했을 때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집단을 이루어 서로를 보살피고 함께 행동할 때 생존에 유리했고, 위험에서 보다 더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종족의 보존과 번식에 있어서도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회적 존재로 규정된 인간의 특성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집단 생활에서 이탈된 개인이 겪게 되는 심리적 불안과 불확실성이 오늘날 외로움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허기와 갈증을 느낌으로서 음식이나 마실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사회적 존재로서 관계의 질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을 것을 요구하는 신호라고 한다. 원시 인류가 집단에 속해 있음으로서 안정을 누렸고, 이탈됨으로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처럼, 현대 인간이 경험하는 외로움의 실체는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된 욕구의 한 형태, 즉 본능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특히 산업사회 이후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또 비즈니스와 결합되면서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요소를 경제적, 상업적 관점으로 보고 사업화함으로서, 오프라인 기반의 인간관계가 온라인으로 이전되면서 더욱 심화된 인간 소외 현상을 심각하고 보고 있다. 사회적 관계망 혹은 사회적 연대라는 인간의 오랜 전통, 생활 양식, 문화 자체가 이윤을 얻기 위한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인간이 서로 관계 맺고 연대하는 능력이 쇠퇴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온라인에서의 소셜 네트워킹이 긍정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물리적 현실에서의 관계망과 온라인 기반은 그 속성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 폐해는 우리가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인간들이 서로 관계를 이뤄 협력하고 공생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이 전반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어조로 인간의 회복탄력성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지만, 세계 곳곳에서 제한적이고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희망의 불길들이 과연 세계를 휩쓰는 갈등과 혼란, 거기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밑천이 드러난 사회 시스템의 민낯을 다시 아름답게 꾸며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저자는 자녀들을 보며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혐오와 차별, 배제와 증오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이 보다 나은 세상, 다정하고 친절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이상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저자의 간절한 마음이 책의 메시지를 통해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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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하나님 나라 - 김세윤 박사의 바른 칭의론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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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의 문제와 관련된 믿음과 삶의 불일치는 이 시대에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고민거리다. 요즘 성경 말씀과는 무관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의 탈을 쓰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광경을 너무 보다 보니 머리가 어지럽고, 다 내려놓고 산에 들어가 도나 닦아야 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내가 기독교계나 교회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관련 지어 세상을 보려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귀기울여 듣고 삶을 끊임없이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 아닌가? 그러한 변화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증거가 드러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세상과의 끊임없는 타협과 자기합리화, 취사선택의 종교생활이다.

 

이런 때에는 진지하게 묵상하고 고민한 말씀을 나눌 만한 분위기도 거의 없다. 그러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으니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종교 생활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사실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이 바른 성경적 가치관 - 특히 교회란 무엇이며 구원의 궁극적 의미에 대해, 믿음으로 얻는 의와 구원, 진정한 예배관 등 - 을 세울 수 있는 적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때에 복음에서 특히 칭의와 성화,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는 칭의와 하나님 나라는 내 삶의 유익한 신앙 가이드가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구약 선지서들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메시지의 목적이, 죄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이 심판과 재앙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데 있는 것처럼, 바울의 칭의론 역시, 구원의 확신에 따른 권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중도탈락의 위험을 경고하는 동전의 양면 같은 복합적인 전달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굳건히 살 것을 간절히 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비슷한 내용이나 개념이 반복적으로 나올 때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어왔는데, 이 책은 논문이라는 글의 특성 때문인지, 같은 내용, 혹은 같은 메시지를 계속 조금씩 변형을 주고 돌려서 반복하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그러나 책을 계속 읽어가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 메시지가 더 정교한 논리와 근거로 점점 다듬어지고 명료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루터가 발견한 칭의의 내용이 시간이 흐를수록 제한적인 의미로 나누어져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내용만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는 것은 솔직히 좀 황당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죄인의 상태가 의롭게 변했다는 말이 아니고 의로운 것으로 쳐준다는 의미다. 지옥에 당연히 가야할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믿음으로 말미암마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 가운데 하나님과 영원토록 거하게 될 수 있는 자격을 거져 얻은 것이다. 원래는 행위의 축적으로 자격이 생기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뒤집어, 능력이 안 되지만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간의 자격을 먼저 갖추어주시고 그 다음에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 혹은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함을 요구하신 것이다. 따라서 믿음만으로 충분하다든지, 행위가 더 중요하다든지 하면서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엉터리 발상이다. 어떻게 기독교가 이런 수준 이하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해왔던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 자기 아들을 제물로 인간의 죄를 대신 해결하셨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죽어야 할 인간이 살게 되었다. 다만 조건이 있다.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과, 사탄의 죄와 사망의 권세에 완전히 승리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취하게 되었다. 다만 이것은 자격에 관한 문제다. 이 자격을 온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요구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노력이 가능한 지 이 책은 밝히고 있다. 죽음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부활로 하나님의 왕권을 위임 받아 통치를 실행하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 우편에서 나약한 인간을 위해 중보하심으로 우리의 남은 이 땅에서의 선한 싸움,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인내하고 승리하시도록 보존하시고 힘을 주신다.

 

칭의라는 것은 단순히 내가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구원받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표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이 땅에 이미 임했지만 아직 궁극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처럼, 이미 얻었지만 종말의 심판 때에 다시 한 번 확인되어야 할 미래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우리 삶의 주권과 소속이 하나님 나라로 이전되어야 하는 과업도 지고 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구하는 이에게 힘 주시고 계신 것이다.

 

이 책은 칭의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믿음으로 반응한 우리들을 의롭다 해주심, 참된 회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 문제 해결,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사탄 권세에 대해 궁극적으로 승리하심,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회복, 예수님 재림 때까지 이뤄져야 할 교회의 영적 전투, 그 전투에서 인내하며 승리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믿음과 행위가 동전의 양면 같다는 것, 구원의 완성 과정으로서의 의미, 칭의의 복음에서 비롯되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삶의 당위성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복합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각 장이 진행되면서 각각의 의미를 성경 본문을 통해 밝히고 중첩시키며 하나의 의미로 묶어내고 있다.

 

이 책은 '칭의'라는 단순 명쾌한 문제가 어째서 이렇게 왜곡된 신앙을 불러왔고, 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장황하고 복잡한 논의를 거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또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사도 바울의 칭의의 복음이 기독론과 구원론의 차원에서, 또 한 덩어리의 복음으로서 어떻게 연속성과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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