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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 외로움은 삶을 무너뜨리는 질병
비벡 H. 머시 지음, 이주영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은 사회적 연결됨, 즉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위기와 위협, 갈등과 분열과 혼란,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파괴된 인간관계에 있다고 진단하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는 열쇠 역시 올바른 인간관계의 회복에 있음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물론 고도로 자본주의화 된 세상에서 시스템의 혁명적인 개선 없이, 저자가 제시하는 친절과 공감, 포용이라는 방식으로 확립될 수 있는 유대감과 인간적인 사회적 관계망의 재건 시도가 얼마나 시대의 난제를 극복해낼 수 있을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미국의 국가주치의라고 불리는 공중보건위생국장을 역임했다는 저자의 이력에 끌려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뜬금없다고 생각되겠지만 구약성경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먼저 꺼내보려 한다.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해서 하나이자 셋이며, 셋이자 하나인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저 ‘삼위’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신의 속성이 아주 특별하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는데, 이 세 위격의 존재가 관계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다시 말해 신의 속성 중 인간과 공유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관계성’이라는 것이다. 처음 창조된 사람,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 그의 몸에서 취한 뼈로 만든 존재가 여자인 하와라는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역시 인간이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로 창조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정의의 근원은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굳이 종교적인 기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는 2장 ‘관계는 본능이다’에서 인간이 어떻게 사회적 존재가 되었으며, 어떻게 외로움이라는 본능이 인간에게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과학적인 추적을 하고 있는 내용을 보며, 이 시대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거론되는 우울증, 차별, 혐오, 분쟁 등의 문제의 원인으로 짚이는 ‘외로움’과 ‘사회적 단절’의 문제가 인간의 진화와 함께 전해내려온 유서 깊은(?)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기 인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협력했을 때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집단을 이루어 서로를 보살피고 함께 행동할 때 생존에 유리했고, 위험에서 보다 더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종족의 보존과 번식에 있어서도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회적 존재로 규정된 인간의 특성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집단 생활에서 이탈된 개인이 겪게 되는 심리적 불안과 불확실성이 오늘날 외로움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허기와 갈증을 느낌으로서 음식이나 마실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사회적 존재로서 관계의 질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을 것을 요구하는 신호라고 한다. 원시 인류가 집단에 속해 있음으로서 안정을 누렸고, 이탈됨으로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처럼, 현대 인간이 경험하는 외로움의 실체는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된 욕구의 한 형태, 즉 본능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특히 산업사회 이후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또 비즈니스와 결합되면서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요소를 경제적, 상업적 관점으로 보고 사업화함으로서, 오프라인 기반의 인간관계가 온라인으로 이전되면서 더욱 심화된 인간 소외 현상을 심각하고 보고 있다. 사회적 관계망 혹은 사회적 연대라는 인간의 오랜 전통, 생활 양식, 문화 자체가 이윤을 얻기 위한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인간이 서로 관계 맺고 연대하는 능력이 쇠퇴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온라인에서의 소셜 네트워킹이 긍정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물리적 현실에서의 관계망과 온라인 기반은 그 속성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 폐해는 우리가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인간들이 서로 관계를 이뤄 협력하고 공생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이 전반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어조로 인간의 회복탄력성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지만, 세계 곳곳에서 제한적이고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희망의 불길들이 과연 세계를 휩쓰는 갈등과 혼란, 거기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밑천이 드러난 사회 시스템의 민낯을 다시 아름답게 꾸며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저자는 자녀들을 보며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혐오와 차별, 배제와 증오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이 보다 나은 세상, 다정하고 친절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이상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저자의 간절한 마음이 책의 메시지를 통해 전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