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설영환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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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인류는 동물과 비슷한 존재였을 것이다. 지금만큼 의식이나 이성이 발달하지 않았고, 본능에 따라 살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인간은 외부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변화하는 자연 환경 앞에서 먼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보다 뛰어난 운동 능력을 지닌 포식 동물 앞에서 약자의 입장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이런 순응은 인간의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과 자연은 그만큼 결속된 상태였다는 의미다. 현대 인류처럼 자연에 대한 객관적 파악은 거의 없었을지라도, 그 결속이 곧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었을 것이다. 비록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더라도 말이다.

 

시간이 흘러 인지혁명이 일어나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판단이 생겼을 것이다. 이에 따라 드디어 인류는 사회적 존재로서 스스로를 자각했다. 집단을 이루고 마을을 만들고 성벽을 쌓고 제국을 건설하면서 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한동안 정체기를 겪다가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또 한 번의 혁명이 일어난다. 바로 과학혁명이다. 신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부정할 정도로 인류의 문명은 눈부신 발견과 업적을 이루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드디어 지금까지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신비의 배격이다. 인간은 측정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의미를 상실시켰다. 초기 인류 때부터 이어져온 인간의 정신과 외부 자연의 결속이 근대 세계를 통과하면서 끊어지게 된다. 우리가 지금 신비, 신화, 마술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많은 현상들이 인간에게서 그 지위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요즘은 물론 보이지 않는 가치나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개선된 것 같지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의 한참 아래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일 뿐이다.

 

심리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근대 사회를 지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신경병적, 심리학적 병리 증상들이 오로지 과학적 태도의 의학적 접근으로는 온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인해서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문제를 탐구하는 가운데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탐구하며 정신분석의 근간을 마련했고, 융이 분석심리학으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존재와 상징은 바로 이 융의 심리학의 기본적 내용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입문서이다. 꿈이라는 현상을 정의하고 꿈의 내용을 해석하는 방법과 그것을 적용하는 몇몇 사례를 통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잇는 상징의 의미를 탐구하는 책이다.

 

상징은 인간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개념이다. 근대 세계에서 인간의 인격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리되었다. 심리학은 이 분리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시 분리된 의식의 통합을 모색하며 치료의 길을 열었다. 자아와 그림자라는 말로도 표현되는 의식과 무의식, 즉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결정적인 연결고리로 인간의 의식에 떠오르는 상징이라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빈번하게 드러나는 통로가 인 것이다. 꿈을 통해 나타나는 내용들은 사람마다 다 개별적이지만 인류 차원의 공통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치료자는 꿈을 환자의 치료를 위해 꿈을 해석할 때 그 환자의 고유한 배경과 보편적 특성을 유연하게 적용해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무의식의 보편적 특성 중 대표적인 예로 신화를 들 수 있다. 신화가 인류 일반의 고뇌와 불안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치료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 책의 관점에서 꿈은 무의식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의 출발점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인류가 억압하며 제한하고 있는 무의식적 욕구들이 표출되는 통로이며, 개인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고뇌나 불안의 문제를 보충하기 위한 작용으로 설명되고 있다. 꿈이 보여주는 상징 체계를 분석함으로써 근대적으로 발전된 의식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가는 역할을 겸하는 것이 심리학의 한 역할임을 알 수 있었다. 심리학이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앞서 살펴본 내용을 돌이켜보니, 역사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분열과 그 분열을 다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상징이라는 개념을 포괄하는 존재와 상징이라는 책 제목은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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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선 자본주의 - 미국식 자유자본주의,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누가 승리할까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정승욱 옮김, 김기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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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인류의 생산과 소비 활동을 의미하며, 이런 생산과 소비의 활동 양식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이론, 실행을 거쳐 지금까지 가장 큰 승리를 거두고 있는 이론이자 경제체제가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물질만능주의로 인간을 물들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인류는 아직 이것보다 더 나은 경제 시스템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경제 체제에 있어서 이것은 최종 해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주의 자체도 몇 가지 변형과 변용이 일어나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자본주의는 대표적인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미국식 자유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다.

 

이 책의 표지만 보면 앞으로 세계 역사에서 이 미국식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 중 어느 것이 승리를 거두거나 우위를 점할게 될 것인지 묻고 있는 듯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현재 고도로 팽창한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앞으로의 세계 권력 지도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혹은 1차 세계 대전을 불러온 것과 비슷한 경로를 거쳐 완전히 새로운 세계질서가 세워질 수 있지는 않을지 고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현재 시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매우 생동감 넘치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속성과 역사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어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세계 경제의 발전과 지구의 한정적인 자원의 고갈과의 관계를 보는 저자의 견해인데, 그 문제에 있어서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인류가 아직 자원기지로서의 지구를 온전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현재 인류가 주 에너지원으로 쓰고 있는 화석연료 등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될 즈음엔 또 새로운 에너지원을 발견하거나 개발하고 대체하게 될 것이므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감당 못하게 되지는 않을 거란 전망이다.

 

그러나 저자의 지구 자원 능력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맞다고 하더라도, 환경 파괴 문제와 관련하여 자본주의의 미래를 논하지 않은 것은 의아했다. 인류의 무제한적 욕망과 궁합이 맞아 지금껏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다소 안이한 상황 파악, 혹은 이익을 우선시한 의도적 외면도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하게 피부로 다가오는 인류의 지나친 소비적 경제 행태와 자연파괴 및 기후위기의 상관관계를 중요한 문제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이 책이 지적하는 인상적인 부분은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이다. 모든 것을 거래와 비용의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기능은, 그 궁극적 결말이 결국 인간이 서로를 온전한 상품으로만 인식하게 되는 세상으로 향하게 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아픔과 고통, 즐거움 속에서도 이득과 손실을 따지는 훌륭한 계산기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어느 정도 현실화되어 있기에 더 무섭게 다가왔다.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부도덕성도 눈에 띄는 통찰이다. 미국식 자유자본주의는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어 심각한 세대 및 계층 간 갈등의 폭탄을 안고 있는 가운데, 그 대안으로 보게 되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역시 그 탁월한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의무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경제성장률의 압박과 운영주체인 관료들의 부패라는 위험 요인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어, 둘 중 어느 하나가 승리한다 못 한다는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각각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성공적으로 공존할 수도 있고, 융합될 수도 있으며, 둘 다 자체적으로 붕괴되면서 제3의 길이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제3차 세계 대전의 가능성이 큰 변수가 될 것이다.

 

 

 

 

 

* 네이버 리뷰어스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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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시크릿 - 돈을 움직이는 시크릿 마법사
월러스 D. 워틀스 지음, 정성호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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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대해 조롱하거나 비판적으로 논할 때 언급되곤 하는 표현이다. 이 책을 읽다가 눈에 턱 걸리는 부분이 바로 이 표현이었다. 간절함에 우주가 반응하여 원하는 소원을 이루도록 움직인다는... 솔직히 이 부분을 읽으며 괜히 이 책을 집어들었나 싶었지만, 자기계발과 성공학 분야에서 고전에 속한다는 이 책의 내용이 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하며 계속 읽어보기로 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우주에는 부의 공급이 제한되어 있지 않으며, 경쟁이 아닌 창조적 사고와 노력을 통해 누구나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온 우주와 세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고 진보하고 있고 번영하고 있다. 우주 법칙의 기본 방향이 이러한데, 인간은 스스로 가능성과 발전의 영역을 제한하여 그 안에서 경쟁을 통해 우열을 가리는 파괴적 혹은 자기붕괴적 부자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쟁의 논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조 정신과 친절함, 기본을 지키는 자세로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원하고 바라는 것을 분명히 이미지화한다. 그리고 손에 넣으려는 굳건한 결심과 확신을 가진다. 그리고 이미 얻은 것처럼 감사하며 생활한다. 당장의 현실이 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믿음을 잃지 않고 위와 같은 법칙을 지키며 나아가다 보면 부는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고와 행동의 일치가 중요하다. 정말 바라는 것이라면 그것을 얻기 위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할 것이며, 그런 과정에서 분명히 가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갱신되면서 점점 원하는 것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공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강렬히 원하는 것에 대한 이미지+결심+확신+감사전지전능한 마음과 결합 행동으로 이어짐 = 타인에게 진보와 번영의 감각을 공유시킴. 이와 함께 좀 더 실천적인 부분으로 그날 일은 그날에 끝내라, 효율이 좋은 행동 혹은 효율이 좋은 방법/활동을 의식적으로 상기시키며 실천할 것을 권한다. 비록 지금 하는 일이 보잘 것 없다 하더라도, 이런 법칙을 실천하면 실패가 성공의 기회가 되듯,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 일을 맡게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처럼, 새로운 기회는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앞서 말한 우주의 법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시원물질’, ‘사고하는 물질로 설명되는 혼돈에서 비롯된다. 강렬한 소망과 이미지를 전달받아 당사자에게 사람이나 상황을 통해 부를 이루도록 이끌어간다는 다소 허황된 이론일 수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독특한 대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상대방에게 진보와 번영의 감각을 가지도록 하라같은 명제는 이 책이 말하는 부의 핵심이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저자는 결코 찬성하지 않겠지만) 이 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 끝없이 계속 번영하기를 추구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라는 이 책의 주장은, 기형적인 기독교 신학이라 할 수 있는 번영신학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자주 성경 구절을 부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마땅하고 훌륭한 도리라는 근거로 내세우며, 경쟁이 아닌 간절함과 창조력, 감사함으로써 무한한 어떤 정신물질(시원물질, 혼돈, 혹은 하나님 등으로도 언급된다)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적용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저자의 아전인수식 성경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저자가 그저 사기꾼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이성적이라는 데 있다. 저자는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 자연파괴적인 산업의 발전에 대해 분명한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주 전체적으로 진보와 번영, 발전을 이뤄가고 있기 때문에 그 방향과 흐름을 타고 살아가며 먼저 개인적으로 부를 이뤄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부도 이루지 못하고 원하는 개혁도 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지적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되, 휩쓸리지 말고 더 큰 우주적 관점에서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도구로써의 돈, 혹은 부의 축적 방법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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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용서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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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용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 돌아봤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불가능한 영역이라 함은, 현실적으로 완전한 의미의 용서란 없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용서할 수 없는 상대를 용서하고, 거기에 감화받은 상대가 스스로 참회하고 반성하는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이 과연 가능할까? 넌센스다. 보통 법원에 가보면 재판받는 사람들이 판사 앞에서는 반성하는 척하면서, 나와서는 딴 소리하거나 비웃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겹도록 들어왔다. 이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빠져나갈 구멍만 있으면 자기 죄를 합리화하는 게 인간이다.

 

 

 

 

 

 

저자는 자신과 동생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생각, 즉 자신의 경험을 홀로코스트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빗대어 용서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너무 미스매치다. 인류사 전체적으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집단적 죄와, 정신병적이든 신념에 따른 것이든 한 인간이 취한 선택을 동일 선상에 놓고 한 주제로 다루는 것은 무리한 설정이다. 차라리 저자가 자기 이야기를 안했으면 책이 더 설득력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차라리 인류적 범죄에 대한 용서와 개인적 영역에서의 용서로 주제를 나누어 독립적인 책으로 다루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인간 심리의 근원에서 추적하자면 무조건 함께 못 다룰 주제는 아니지만, 흉악범죄와 개인적 문제는 심리적 거리감이 너무 크다.

 

이 책은 참혹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정신병이거나 판단이 불가능한 심리적 상태와 성장환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용서의 매커니즘 및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걸 받아들이게 되면 거꾸로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잠재적 범죄자일 가능성이 크므로 사전에 사회적으로 차단할 가능성도 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살해당해서 이 세상에서 없어진 사람들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살아 있는 범죄자를 변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슨 정상참작과 사회복귀의 가능성을 타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요즘 범죄자의 인권을 너무 중시하는 나머지 피해자의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방치하는 모순을 용서 버전으로 보는 것 같다.

 

저자는 용서에 대한 고찰을 위해 이해사랑’, ‘망각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한다. 용서의 힘이나 조건 없는 부채 탕감, 심리적 자유, 과거를 새롭게 보게 하는 힘, 평화 구축 등의 이유를 들어 용서의 긍정적 기능을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나는 이 문제를 좀 간단하게 봤으면 좋겠다. 죄지은 자는 그에 합당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 개인적 용서가 내면의 평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사회적 처벌도 동반되어야 한다.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사회의 윤리나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가 발언이 나온다면 집단적 단죄가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이래서 빼주고 저래서 빼주고, 참작하고... 그런 식의 정상 참작은 가진 자들, 기득권들에게나 혜택이 있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럴 바에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강한 처벌이 낫다는 입장이다.

 

 

 

 

 

 

내가 잘못을 했을 경우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는 의식이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올바른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용서에 대한 다양한 머리굴림은, 죄를, 타인에게 상처주는 자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런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모두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하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인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100원을 훔치는 사람이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고, 100억을 해먹는 자들이 유연한 법 해석과 적용의 혜택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바꾸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용서를 논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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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리스타트 - 생각이 열리고 입이 트이는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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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프레이밍이란 용어가 떠올랐다. ‘프레이밍(Framing)’은 사회학자 고프만에 의해 주창된 개념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할 때 사용하는 가치관, 관점 등을 의미한다. 요즘 인지과학이나 인지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확증편향 같은 현상이 집단 이기주의나 진영싸움, 미디어 보도 같은 분야를 통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때 같은 맥락으로 많이 이야기되는 개념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말 그대로 ’, 즉 생각의 틀 같은 것이다. 너무 유연해도 문제고, 너무 견고해도 문제인 프레이밍이란 개념을 왜 이 책을 보며 떠올린 것일까?

 

간단하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이나, 상황, 사건에 대한 경험이 축적될 때, 이걸 체계적인 정보로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일정한 범위나 틀, 경향 같은 것이 없으면 도무지 정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이 밝히고 있듯 인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월등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범주화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다. 이것은 곧 인문학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인문학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대체로 추상적이고 구체성을 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인문학에 대해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정의를 들어왔지만, 이 책에서 아주 분명하게 타깃을 정해 인문학을 규정하는 것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인문학을 생존 무기로 규정하고 인문학을 생존활동을 위한 행동지침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생존활동의 범위를 분명히 한다. 바로 경제와 정치, 역사다. 보통 인문학을 문학, 역사, 철학 - 문사철로 규정하는데,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생존 본능에 기반한 활동 지식의 축적과 전수를 인문학 행위로 본 것이다.

 

경제란 생존활동에 관한 모든 것이며, 정치란 이 경제활동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와 정치 행위의 총합이 역사인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저자의 시대 구분법인데, 보통 서양 역사학의 틀인 원시-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 프레임으로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역사 인식에 어려움이 있다며, 경제, 특히 먹거리 확보 수단의 변화로 시대를 구분했는데 다음과 같다. 채집-농업-공업-상업-지식 시대, 즉 경제 중심이 어떤 활동에 있었는가로 세계사 시대 구분을 시도한 것이다. 인문학 초보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선명하고 시원한 구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시대 구분을 바탕으로 국가나 정부의 개념이나 형태, 경제체제 및 정치체제, 사상과 종교의 탄생과 융합, 분리의 과정을 재미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중국 대제국의 흥망성쇠, 즉 중국 역사에서의 분열과 통일이라는 흐름이 한국사에 끼친 영향, 다시 말해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되는 과정을 역사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중국이 통일된 상태에서는 항상 한반도는 망하거나 위축되는 모습으로 이어졌고, 중국 대륙이 분열되면 한반도는 그 상황을 힘입어 대륙으로 세력을 확대하거나 안정기에 접어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중관계를 생각해보면 탁월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생각의 발전 혹은 성장을 돕는 데 유용하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사용된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운 시각과 관점, 통찰을 통해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고집이 깨지도록 유도하며, 이 깨짐은 깨침으로 이어진다. 깨침이란 생각이 열림을 의미하며, 이것으로 말문이 트이고,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이 행동의 변화를 발전, 성숙이라 한다면 이것을 얻기 위한 실마리를 이 책에서 한 번 구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생각과 행동의 폭을 좁혀 갈등과 분쟁을 유발하는 프레이밍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고 확장적이며 깊이를 더하고 더불어 누릴 수 있는 세련된 프레이밍을 형성해보고 싶다면 이 책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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