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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설영환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9월
평점 :
초기 인류는 동물과 비슷한 존재였을 것이다. 지금만큼 의식이나 이성이 발달하지 않았고, 본능에 따라 살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인간은 외부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변화하는 자연 환경 앞에서 먼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보다 뛰어난 운동 능력을 지닌 포식 동물 앞에서 약자의 입장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이런 순응은 인간의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과 자연은 그만큼 결속된 상태였다는 의미다. 현대 인류처럼 자연에 대한 객관적 파악은 거의 없었을지라도, 그 결속이 곧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었을 것이다. 비록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더라도 말이다.
시간이 흘러 인지혁명이 일어나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판단이 생겼을 것이다. 이에 따라 드디어 인류는 사회적 존재로서 스스로를 자각했다. 집단을 이루고 마을을 만들고 성벽을 쌓고 제국을 건설하면서 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한동안 정체기를 겪다가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또 한 번의 혁명이 일어난다. 바로 과학혁명이다. 신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부정할 정도로 인류의 문명은 눈부신 발견과 업적을 이루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드디어 지금까지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신비의 배격이다. 인간은 측정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의미를 상실시켰다. 초기 인류 때부터 이어져온 인간의 정신과 외부 자연의 결속이 근대 세계를 통과하면서 끊어지게 된다. 우리가 지금 신비, 신화, 마술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많은 현상들이 인간에게서 그 지위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요즘은 물론 보이지 않는 가치나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개선된 것 같지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의 한참 아래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일 뿐이다.
심리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근대 사회를 지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신경병적, 심리학적 병리 증상들이 오로지 과학적 태도의 의학적 접근으로는 온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인해서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문제를 탐구하는 가운데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탐구하며 정신분석의 근간을 마련했고, 융이 ‘분석심리학’으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존재와 상징」은 바로 이 융의 심리학의 기본적 내용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입문서이다. 꿈이라는 현상을 정의하고 꿈의 내용을 해석하는 방법과 그것을 적용하는 몇몇 사례를 통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잇는 ‘상징’의 의미를 탐구하는 책이다.
상징은 인간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개념이다. 근대 세계에서 인간의 인격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리되었다. 심리학은 이 분리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시 분리된 의식의 통합을 모색하며 치료의 길을 열었다. 자아와 그림자라는 말로도 표현되는 의식과 무의식, 즉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결정적인 연결고리로 인간의 의식에 떠오르는 ‘상징’이라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빈번하게 드러나는 통로가 ‘꿈’인 것이다. 꿈을 통해 나타나는 내용들은 사람마다 다 개별적이지만 인류 차원의 공통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치료자는 꿈을 환자의 치료를 위해 꿈을 해석할 때 그 환자의 고유한 배경과 보편적 특성을 유연하게 적용해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무의식의 보편적 특성 중 대표적인 예로 신화를 들 수 있다. 신화가 인류 일반의 고뇌와 불안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치료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 책의 관점에서 꿈은 무의식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의 출발점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인류가 억압하며 제한하고 있는 무의식적 욕구들이 표출되는 통로이며, 개인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고뇌나 불안의 문제를 보충하기 위한 작용으로 설명되고 있다. 꿈이 보여주는 상징 체계를 분석함으로써 근대적으로 발전된 의식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가는 역할을 겸하는 것이 심리학의 한 역할임을 알 수 있었다. 심리학이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앞서 살펴본 내용을 돌이켜보니, 역사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분열과 그 분열을 다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상징이라는 개념을 포괄하는 ‘존재와 상징’이라는 책 제목은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