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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리스타트 - 생각이 열리고 입이 트이는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프레이밍’이란 용어가 떠올랐다. ‘프레이밍(Framing)’은 사회학자 고프만에 의해 주창된 개념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할 때 사용하는 가치관, 관점 등을 의미한다. 요즘 인지과학이나 인지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확증편향 같은 현상이 집단 이기주의나 진영싸움, 미디어 보도 같은 분야를 통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때 같은 맥락으로 많이 이야기되는 개념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말 그대로 ‘틀’, 즉 생각의 틀 같은 것이다. 너무 유연해도 문제고, 너무 견고해도 문제인 프레이밍이란 개념을 왜 이 책을 보며 떠올린 것일까?
간단하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이나, 상황, 사건에 대한 경험이 축적될 때, 이걸 체계적인 정보로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일정한 범위나 틀, 경향 같은 것이 없으면 도무지 정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이 밝히고 있듯 인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월등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범주화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다. 이것은 곧 인문학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인문학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대체로 추상적이고 구체성을 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인문학에 대해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정의를 들어왔지만, 이 책에서 아주 분명하게 타깃을 정해 인문학을 규정하는 것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인문학을 생존 무기로 규정하고 인문학을 생존활동을 위한 행동지침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생존활동의 범위를 분명히 한다. 바로 경제와 정치, 역사다. 보통 인문학을 문학, 역사, 철학 - 문사철로 규정하는데,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생존 본능에 기반한 활동 지식의 축적과 전수를 인문학 행위로 본 것이다.
경제란 생존활동에 관한 모든 것이며, 정치란 이 경제활동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와 정치 행위의 총합이 역사인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저자의 시대 구분법인데, 보통 서양 역사학의 틀인 원시-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 프레임으로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역사 인식에 어려움이 있다며, 경제, 특히 먹거리 확보 수단의 변화로 시대를 구분했는데 다음과 같다. 채집-농업-공업-상업-지식 시대, 즉 경제 중심이 어떤 활동에 있었는가로 세계사 시대 구분을 시도한 것이다. 인문학 초보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선명하고 시원한 구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시대 구분을 바탕으로 국가나 정부의 개념이나 형태, 경제체제 및 정치체제, 사상과 종교의 탄생과 융합, 분리의 과정을 재미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중국 대제국의 흥망성쇠, 즉 중국 역사에서의 분열과 통일이라는 흐름이 한국사에 끼친 영향, 다시 말해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되는 과정을 역사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중국이 통일된 상태에서는 항상 한반도는 망하거나 위축되는 모습으로 이어졌고, 중국 대륙이 분열되면 한반도는 그 상황을 힘입어 대륙으로 세력을 확대하거나 안정기에 접어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중관계를 생각해보면 탁월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생각의 발전 혹은 성장을 돕는 데 유용하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사용된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운 시각과 관점, 통찰을 통해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고집이 깨지도록 유도하며, 이 깨짐은 깨침으로 이어진다. 깨침이란 생각이 열림을 의미하며, 이것으로 말문이 트이고,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이 행동의 변화를 발전, 성숙이라 한다면 이것을 얻기 위한 실마리를 이 책에서 한 번 구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생각과 행동의 폭을 좁혀 갈등과 분쟁을 유발하는 프레이밍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고 확장적이며 깊이를 더하고 더불어 누릴 수 있는 세련된 프레이밍을 형성해보고 싶다면 이 책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