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콘서트 - 와인글라스에 담긴 인문학 이야기
김관웅 지음 / 더좋은책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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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포도로 만든 술, 즉 포도주다. 포도는 인류와 함께한 오랜 역사가 있는 의미 있는 과일이다. 마치 개나 소처럼 인류의 삶에 있어서 거의 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와인이 인문학을 풀어내는 요긴한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생각, 모든 느낌을 다루는데, 이때 오직 인간만이 주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 함께한 여러 외부 요소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래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가장 먼저 인간의 삶에 결부되었을 것이고, 그 최전선에 동물과 식물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십자군 전쟁은 200년 간 피와 살육으로 이루어진 인류의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인간의 상업활동을 촉진하여 장원경제에서 개방경제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전반적으로 인류의 부가 증진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수도사들이 포도농사를 짓기 시작하는데, 포도주가 성찬의식에 필수적인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성찬의식뿐만 아니라 이것을 일반인들에게 팔아 수도원 운영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때맞춰 발전한 개방경제가 수도원의 경제적 형편을 좋게 해주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생산성의 향상은 부의 축적을 낳았고, 더 많은 생산을 위해 포도 농사는 확장되었다. 이때 햇볕이나 토질 등 조건에 따라 다양한 맛의 포도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곧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잘 알려진 ‘부르고뉴 와인’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빚어낸 또 하나의 와인 탄생기도 흥미롭다. 전쟁에서 패한 잉글랜드인들은 이미 전쟁과 관계 없이 프랑스 와인에 길들여진 상태였는데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자 대체할 것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높은 온도에 노출된 포도주의 변질 문제를 해결하려고 궁리하다가 도수가 높은 독한 와인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단맛이 특징인 ‘포트 와인’의 시작이 된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꼬냑도 인간의 발상의 전환의 힘을 느끼게 한다. 판로를 못 찾고 쌓여가는 와인의 보관 방법을 찾다가 증류라는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고, 실제로 증류해보니 맛과 향은 유지하면서도 부드러운 꼬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증류주로서의 와인 제조 방식이 확산되면서 인류의 문화 및 기호품의 확장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식재료의 발견, 변형과 그에 따른 식문화의 발전 과정이 대체로 우연과 자연의 선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인류에게 엄청난 행운이자 선물이란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곧바로 인간의 지혜가 이것을 상업적 요인과 연결시키며 더욱 풍성한 주류 문화로 성장시킨 대표적 사례가 바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커피 열풍처럼 다소 외적 요소만 부각된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와인 한 잔에 담긴 역사와 문화의 깊이는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니며, 눈여겨볼 만한 삶의 지혜와 교훈이 깃들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 시간이었다.

* 네이버 「북유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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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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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사람의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새들과 나무들을 비롯한 자연의 생명체들이 풍성함으로 더욱 빛나던, 섬진강의 들녘에서 저자는 글뿐만 아니라 직접 땅을 일구고 수확을 하는 텃밭에서 또 다른 차원을 더한 문학가로 거듭났다.

섬진강과 문학이 나란히 눈 앞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이 떠오를텐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김탁환이라는 이름도 한 자리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도시에서 섬진강으로 떠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저자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이유로 택했던 목적지가 섬진강 들녘이었던 것이다.

고요함과 습지를 오가는 백로와 왜가리, 강의 흐름과 까치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지는 저자의 문장을 보다 보니 흡사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나, 최근 소로를 테마로 한 정여울 작가의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가 떠오른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소설가의 문장은 소설가 특유의 문체에 자연이라는 색감이 물들어 독특한 빛깔과 울림을 만들어낸다.

흐르는 물의 모양이 변화하여 다양한 결을 만들어내고, 각각의 결들은 따로이 자유롭게 노니다가 다시 한 줄기의 커다란, 웅크린 뱀처럼 소용돌이를 일으켜 전혀 새로운 기운을 솟구쳐 내는 것처럼, 이야기가 꼭 그런 모양으로, 내면에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다가 각각의 길고 짧은 이야기의 실타래들이 기어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고야마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해보게도 한다.

어느 동네에나 사람으로는 철수가 있고 영희가 꼭 있듯이, 개들 중에는 꼭 몽실이가 있나 보다. 이번에는 작가의 시골 생활에 등장한다. 그럴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고라니의 장난끼 어린 눈망울은 몽실이에게 그저 약올리는 수단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가 보다.

소설가에 대해 이러저러한 정의들이 많이 내려져 있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소설가란 어떤 존재인가를 담은 문장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만물의 그늘을 보는 사람, 빛과 꽃과 위로 뻗어대는 줄기와 가지를 뒤로 하고 반대편의 침묵, 웅덩이 같은 침묵을 찾아 만지는 사람, 동 트기 전, 꽃 피기 전, 생명이 다음 단계의 진화를 폭발시키기 직전의 두려움을 담을 줄 아는 사람. 이 익숙하지 않은 시선의 즐거움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이야기꾼의 숙명이라면, 나도 이야기꾼으로서 조금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망상을 해보게 된다.

중간중간 삽입된 색연필 감성의 일러스트는 현실보다 꿈꾸는 현실로서의 농촌에서 일구는 글밭과 덧밭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따뜻한 느낌의 정서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공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또 하나의 섬진강 문학인이 아로새겨질 것 같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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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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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뿐 인 가족 중 두 사람을 잃었다. 그것도 사고나 질병 같은 것이 아니라 살해행위에 의해. 이 처참한 상황, 그리고 당사자의 심정을 어찌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어린 딸이 비참하게 살해되고 그 충격으로 결국 이혼을 한 부인마저 훗날 의문의 살인사건 피해자가 된다는 비극이 자신의 삶을 물들일 것이라고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하나의 굵직한 사건이 나오고 그것이 중심 이야기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하나의(혹은 둘 이상의) 비중 있는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리는 듯하다가 어느새 간격을 좁혀 두 강의 지류가 하나로 합하는 것처럼 조화를 이루면서 메시지를 완성해가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이번에 읽은 『공허한 십자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책 제목의 무게감이 그 어느 소설의 제목보다도 묵직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속죄 교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신의 아들이 인류의 죄를 대신 책임지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당시 로마의 사형 도구였던 십자가를 통해 구현한 역사적인 사건에서 유래한다. 이후로 십자가는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중압감이나 무거운 짐 등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인간의 죄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어떤 흉악한 범죄자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우리는 보통 그 범죄자가 저지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온갖 사연과 이유들이 붙어 형량이 줄어드는 경우를 수없이 보며 탄식하고 분노하곤 한다. 저 놈은 반드시 사형 당해야 해, 저런 놈이 사형을 받지 않는다면 세상에 신 따위는 없는 거야! 라는 말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이 반복되어 왔던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류가 지금까지 완전히 풀어내지 못한 난제 두 가지, 곧 죄를 지은 인간이 뉘우치고 온전히 속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이 다른 인간의 죄를 사형이라는 형식을 통해 처벌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세 가지 형태의 살인 사건이라는 틀 안에서 묻고 있다. 불친절하게도 답을 내지 않는다.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소설의 초반부가 연둣빗과 회색빛이 묘하게 어우러진 청춘물처럼 시작되기에 제목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그 다음 순간, 비극적인 유아 살인 사건의 슬픔이 폭풍처럼 밀려들고, 시간을 훌쩍 건너 뛰어 이제 그 어머니였던 사람이 황망한 죽음을 맞게 되는 이 맥락에서, 저자는 홀로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남은 자의 발걸음을 통해, 죄는 죄를 부를 수밖에 없고, 인간은 그 죄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짓뭉개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격정과 담담함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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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인문학 (20만부 기념 개정증보판)- 슈퍼리치의 서재에서 찾아낸 부자의 길
우석(브라운스톤) 지음 / 오픈마인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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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뇌과학 -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가
리사 제노바 지음, 윤승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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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나 지식의 전달 수단이 어떤 매개체가 아니라 순전히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되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기억력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특정 행위나 정보를 저장할 공간이 사람의 기억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이 사회적으로 구현된 것이 구전 문화일 것이다.

한두 사람의 뛰어난 능력만으로 집단의 지식체계가 대를 이어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인류는 그렇게 집단의 기억 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가 문학이나 음악 등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전부 정보나 지식을 블록 형태로 묶어 저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저장 매체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기억과 지식을 활용하는 기술은 서서히 발전하게 된다. 이후 점진적인 발전에서 비교적 급격하게 눈부신 발전을, 짧은 기간 안에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 발명일 것이다.

이후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기계의 발달은 인간의 두뇌로 해야할 많은 일들을 대체할 수 있게 되었고, 편리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기술이 사실은 인간의 기억 능력을 서서히 감퇴시켜왔다는 것을 이제는 사람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기억 능력의 퇴보로 인해 두드러지게 나타난 치매 같은 치명적인 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익숙해진 디지털에 둘러싸인 생활 패턴에서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뇌 진화의 오랜 역사를 돌아보면, 기억 능력의 퇴보는 단기간에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현재의 인류의 뇌는 매우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기억하는 부분에서 효율성을 중심으로 발전한 뇌가, 우리가 디지털에 둘러싸인 채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완전히 뇌의 능력을 포기할 만큼 절망적인 상태도 아님을 알려준다.

뇌에서 일어나는 기억이라는 현상은 효율을 따지며, 그래서 뇌는 의미 있는 것만 기억하도록 진화했다. 우리가 기억 능력이 떨어졌다고 걱정하거나 때로는 두려움까지 느끼는 대부분의 원인은, 다시 말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입력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라고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뇌의 가소성’이라는, 뇌는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더 좋게 변할 수 있다는 특성이 저자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일반적인 기억의 형성과 몸으로 기억되는 형성의 과정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이거나 의미를 가지는 기억은 해마에서, 이른바 근육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뇌의 기저핵이라는 부위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가진 기억들이 다 동일한 경로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문학 작품이나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몸이 기억한다’는 표현을 듣게 되는데, 이게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은 기억을 기억과 망각으로 이루어진 신경 신호 체계로 설명한다. 망각이라 불리는 작용 역시 사람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능력임을 알려준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원인이나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기억이 관찰될 수 있는 대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능동적으로 그 능력을 더 좋은 쪽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점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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