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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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뿐 인 가족 중 두 사람을 잃었다. 그것도 사고나 질병 같은 것이 아니라 살해행위에 의해. 이 처참한 상황, 그리고 당사자의 심정을 어찌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어린 딸이 비참하게 살해되고 그 충격으로 결국 이혼을 한 부인마저 훗날 의문의 살인사건 피해자가 된다는 비극이 자신의 삶을 물들일 것이라고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하나의 굵직한 사건이 나오고 그것이 중심 이야기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하나의(혹은 둘 이상의) 비중 있는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리는 듯하다가 어느새 간격을 좁혀 두 강의 지류가 하나로 합하는 것처럼 조화를 이루면서 메시지를 완성해가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이번에 읽은 『공허한 십자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책 제목의 무게감이 그 어느 소설의 제목보다도 묵직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속죄 교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신의 아들이 인류의 죄를 대신 책임지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당시 로마의 사형 도구였던 십자가를 통해 구현한 역사적인 사건에서 유래한다. 이후로 십자가는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중압감이나 무거운 짐 등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인간의 죄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어떤 흉악한 범죄자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우리는 보통 그 범죄자가 저지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온갖 사연과 이유들이 붙어 형량이 줄어드는 경우를 수없이 보며 탄식하고 분노하곤 한다. 저 놈은 반드시 사형 당해야 해, 저런 놈이 사형을 받지 않는다면 세상에 신 따위는 없는 거야! 라는 말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이 반복되어 왔던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류가 지금까지 완전히 풀어내지 못한 난제 두 가지, 곧 죄를 지은 인간이 뉘우치고 온전히 속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이 다른 인간의 죄를 사형이라는 형식을 통해 처벌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세 가지 형태의 살인 사건이라는 틀 안에서 묻고 있다. 불친절하게도 답을 내지 않는다.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소설의 초반부가 연둣빗과 회색빛이 묘하게 어우러진 청춘물처럼 시작되기에 제목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그 다음 순간, 비극적인 유아 살인 사건의 슬픔이 폭풍처럼 밀려들고, 시간을 훌쩍 건너 뛰어 이제 그 어머니였던 사람이 황망한 죽음을 맞게 되는 이 맥락에서, 저자는 홀로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남은 자의 발걸음을 통해, 죄는 죄를 부를 수밖에 없고, 인간은 그 죄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짓뭉개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격정과 담담함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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