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로 인해 사람의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새들과 나무들을 비롯한 자연의 생명체들이 풍성함으로 더욱 빛나던, 섬진강의 들녘에서 저자는 글뿐만 아니라 직접 땅을 일구고 수확을 하는 텃밭에서 또 다른 차원을 더한 문학가로 거듭났다.

섬진강과 문학이 나란히 눈 앞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이 떠오를텐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김탁환이라는 이름도 한 자리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도시에서 섬진강으로 떠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저자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이유로 택했던 목적지가 섬진강 들녘이었던 것이다.

고요함과 습지를 오가는 백로와 왜가리, 강의 흐름과 까치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지는 저자의 문장을 보다 보니 흡사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나, 최근 소로를 테마로 한 정여울 작가의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가 떠오른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소설가의 문장은 소설가 특유의 문체에 자연이라는 색감이 물들어 독특한 빛깔과 울림을 만들어낸다.

흐르는 물의 모양이 변화하여 다양한 결을 만들어내고, 각각의 결들은 따로이 자유롭게 노니다가 다시 한 줄기의 커다란, 웅크린 뱀처럼 소용돌이를 일으켜 전혀 새로운 기운을 솟구쳐 내는 것처럼, 이야기가 꼭 그런 모양으로, 내면에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다가 각각의 길고 짧은 이야기의 실타래들이 기어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고야마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해보게도 한다.

어느 동네에나 사람으로는 철수가 있고 영희가 꼭 있듯이, 개들 중에는 꼭 몽실이가 있나 보다. 이번에는 작가의 시골 생활에 등장한다. 그럴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고라니의 장난끼 어린 눈망울은 몽실이에게 그저 약올리는 수단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가 보다.

소설가에 대해 이러저러한 정의들이 많이 내려져 있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소설가란 어떤 존재인가를 담은 문장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만물의 그늘을 보는 사람, 빛과 꽃과 위로 뻗어대는 줄기와 가지를 뒤로 하고 반대편의 침묵, 웅덩이 같은 침묵을 찾아 만지는 사람, 동 트기 전, 꽃 피기 전, 생명이 다음 단계의 진화를 폭발시키기 직전의 두려움을 담을 줄 아는 사람. 이 익숙하지 않은 시선의 즐거움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이야기꾼의 숙명이라면, 나도 이야기꾼으로서 조금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망상을 해보게 된다.

중간중간 삽입된 색연필 감성의 일러스트는 현실보다 꿈꾸는 현실로서의 농촌에서 일구는 글밭과 덧밭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따뜻한 느낌의 정서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공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또 하나의 섬진강 문학인이 아로새겨질 것 같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