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뇌과학 -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가
리사 제노바 지음, 윤승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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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나 지식의 전달 수단이 어떤 매개체가 아니라 순전히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되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기억력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특정 행위나 정보를 저장할 공간이 사람의 기억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이 사회적으로 구현된 것이 구전 문화일 것이다.

한두 사람의 뛰어난 능력만으로 집단의 지식체계가 대를 이어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인류는 그렇게 집단의 기억 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가 문학이나 음악 등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전부 정보나 지식을 블록 형태로 묶어 저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저장 매체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기억과 지식을 활용하는 기술은 서서히 발전하게 된다. 이후 점진적인 발전에서 비교적 급격하게 눈부신 발전을, 짧은 기간 안에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 발명일 것이다.

이후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기계의 발달은 인간의 두뇌로 해야할 많은 일들을 대체할 수 있게 되었고, 편리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기술이 사실은 인간의 기억 능력을 서서히 감퇴시켜왔다는 것을 이제는 사람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기억 능력의 퇴보로 인해 두드러지게 나타난 치매 같은 치명적인 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익숙해진 디지털에 둘러싸인 생활 패턴에서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뇌 진화의 오랜 역사를 돌아보면, 기억 능력의 퇴보는 단기간에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현재의 인류의 뇌는 매우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기억하는 부분에서 효율성을 중심으로 발전한 뇌가, 우리가 디지털에 둘러싸인 채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완전히 뇌의 능력을 포기할 만큼 절망적인 상태도 아님을 알려준다.

뇌에서 일어나는 기억이라는 현상은 효율을 따지며, 그래서 뇌는 의미 있는 것만 기억하도록 진화했다. 우리가 기억 능력이 떨어졌다고 걱정하거나 때로는 두려움까지 느끼는 대부분의 원인은, 다시 말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입력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라고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뇌의 가소성’이라는, 뇌는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더 좋게 변할 수 있다는 특성이 저자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일반적인 기억의 형성과 몸으로 기억되는 형성의 과정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이거나 의미를 가지는 기억은 해마에서, 이른바 근육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뇌의 기저핵이라는 부위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가진 기억들이 다 동일한 경로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문학 작품이나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몸이 기억한다’는 표현을 듣게 되는데, 이게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은 기억을 기억과 망각으로 이루어진 신경 신호 체계로 설명한다. 망각이라 불리는 작용 역시 사람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능력임을 알려준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원인이나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기억이 관찰될 수 있는 대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능동적으로 그 능력을 더 좋은 쪽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점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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