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타임
모집 라티프 지음, 김지유 옮김 / 씨마스21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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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확인한 가장 인상깊었던 명제는 바로, "기후 문제에 있어서는 플랜 B도 없고 ‘플래닛 B'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이 실질적으로 지구 기온의 상승에 영향을 주었든 주지 않았든, 분명한 것은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이고, 당장 지난 주에 가장 크게 다뤄졌던 세계 뉴스만 해도 50도를 웃도는 인도의 진짜 살인적인 폭염이 엄연한 현실로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최근 이상고온으로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은 바 있다.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일이 몇십 년에 한 번씩, 혹은 아주 가끔씩 겪는 일이 아니라, 올해도 그만큼 더울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일상은 분명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핫타임』의 저자는 독일 학자다. 하지만 책에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상기후는 특정 지역의 문제만이 아닌 전 지구적 당면 과제임을 직시하고 빠른 대응을 해야만 한다는 것,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기후위기는 인간이 온실가스를 배출해 발생하는 것이다. 온실가스라 함은 곧 이산화탄소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무효를 선언한 파리기후협정이 바로 이 온실가스의 감축과 지구의 온도 상승을 일정 이하로 유지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이 책은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가 누적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눈에 띄는 전 지구적 대응이 실천되지 않는 이유는, 어떤 지역은 아직까지 살 만하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 지구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거기 사는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 상황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선진국들이 엄청나게 에너지를 써대면서 배출한 온실가스의 영향은 가난한 나라, 힘없는 나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공감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대기업들이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로비를 하며 상황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도 뜨거워지는 지구를 막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들이 주로 유사과학적 관점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여 환경을 위한 국제적 협약이나 약속들을 깨트리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기후문제가 본질에서 벗어나 사회 분열의 재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집단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 다툼 때문에 실제로 해결해야 할 사안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개선될 여지가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이상 기후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의 감소 추세는 재앙적으로 치닫고 있다.

기후 문제는 심각하다. 어쩌면 우리가 2년 이상 고통을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것은 문제 축에도 들지 못할 만큼 위험한 상황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안타깝게도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그것을 충족하면서 실천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 출간된 맷 데이먼과 개리 화이트의 물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이 담긴 『워터』라는 책에서 나온 사례처럼, 환경을 보호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식의 현실적 대안이 좀 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만들어져야 한다. 험난한 길이 아닐 수 없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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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 니체와 함께하는 철학 산책
장석주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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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모색이 실종된 시대의 목마른 자들에게, 니체가 구원투수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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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 니체와 함께하는 철학 산책
장석주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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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모색이 실종된 시대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고 남의 탓이 곳곳에서 난무한다. 남탓은 둥글지 않다. 뾰족해서 당사자가 아닌 누군가의 어깨에 스치기만 해도 깊은 상처를 낸다. 물리적인 상처는 눈에 보이니 치료라도 할 수 있지만 내면의 긁힌 흔적인 눈에 띄지도 않아 잠복해 있다가 그 사람의 내부부터 조금씩 오염시킨다. 이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한 자세로 자기 중심을 시작으로 주변부터 정리정돈하려는 사람에게 니체는 처음에는 따끔한 주사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이보다 더 확실한 백신은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리란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니체를 읽어야 할 이유를 백 가지도 넘게 말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가장 먼저 니체 철학이 “우리 내면의 삶과 의지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보통의, 만만한 거울이 아니다. “자기 삶을 분쇄하고 그것을 뭉쳐서 만든 거울”이란다.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하지만 몸에 좋은 약이 쓰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우리가 니체로부터 그런 거울을 얻을 수 있다면 “만족은 없지만 싫증도 없는 지치지 않는 생성”, 이란 것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이것은 흡사 기독교에서 말하는 철저한 자기 부인을 말하는 것 같다.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만이 예수를 따를 수 있는 것처럼, 삶을 새롭게 만드는 니체의 철학은 철저히 자기 자신을 태워 쌓인 재 위에서 성립될 수 있다. 그것은 큰 용기와 의지, 결단이 필요하다.

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니체에게 대안은 인간이었다. 인간의 가능성,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 생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익숙해져 있고 물들어 있던 세계관과 고정관념, 습관, 버릇들을 모두 깨트려야 한다. 인간은 이전과는 다른 가치 기준을 들고서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절망에서 희망의 색으로 물들여야 하는 임무를 새롭게 부여받았다.

니체의 철학에서는 노동도 탈바꿈되어야 할 대상이다. 굳이 철학적 성찰에 갈 것도 없이 현대 사회의 노동은 사람들을 새로운 계급 체계로 재배치했다. 개인의 탄생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 못하고 변장한 지배계급의 현란한 속임수에 다시 종속적 위치로 내몰리고 있다. 니체는 요구한다. 자기 주체적 삶, 창조적 삶을 보장하지 않는 노동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참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은 노예의 삶에서 불가능하다.

최근 들어 니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기독교계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보여 이채롭다. 한국 개혁신학 목회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도 니체 연구에 푹 빠져 있다는 발언으로 관심을 끈 바 있다. 니체의 철학은 기존의 사고와 가치체계를 전복하며 인간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이끌어내려 한 이단적 움직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 강인한 인간상을 요구하며 사람들을 몰아부치는 니체의 철학이 원래 그의 의도에 부합하는 건지 아니면 입맛대로 변용된 건지 솔직히 판단하기 어렵다. 니체조차 당대보다 죽고 나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니체의 정신을 이식시키고픈 지식인들의 욕구는 과한 욕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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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과잉 사회 -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정인규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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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순전한 개인의 주관과 정체성을 구축하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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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과잉 사회 -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정인규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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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모호하다고 인정하는 ‘시선’이라는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네이버사전에서 ‘시선’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본다. 단어의 어감만으로 이미 뜻을 파악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굳이 옮겨보자면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을 의미하는 말이다. 거기에 하나의 의미가 더 추가되어 있다. 그것은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물리적인 의미와 정신적인 의미가 있고, 이 둘이 혼합된 형태로 우리 삶에 구현되는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당신의 생각이 정말 당신 자신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 자기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사람마다 생각의 수준이 다 다르다. 그리고 문화적, 환경적 요인으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정한 경향을 타고난다. 그렇지 않다면 소위 말하는 ‘문화권’ 같은 개념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시선’이라는 개념도 앞서 살펴본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보고 어떤 의견을 가지거나, 누군가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도 우리 스스로의 주관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누군가의 의도 혹은 문화적 영향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기술로 인해 연결의 밀도는 높아졌지만 소통의 밀도는 현저하게 옅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빈약한 토론문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 대 인간의 대화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간 대 인간의 대화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타협하거나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나 토론은 그런 것 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의 주제인 시선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이 드러난다. 서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또한 자기만의 편견이나 학습된 선입견으로 일관한다.

저자는 시선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선의 자유는 곧 자기형성과 정체성의 자유이며, 해석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는 학습된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학습한 데서 비롯된 깨달음으로만 가능하다. 이렇게 형성된 주관은 상상력과 함께 상대에 대한 존중도 겸비하게 된다.

시선의 변형을 다룬 부분도 눈길을 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눈밖에 볼 수 없는 세상을 경험했는데, 사실 이것이 색다른 경험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이라는 필터를 통해 가면을 쓴 수많은 얼굴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상에서 우연찮게도 마스크 쓴 얼굴이라는 형태로 재현된 것일 뿐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은 힘들다. 자기 개성보다는 흉내 낸 가짜 개성이 정체성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눈길만 남은 시선의 형태는 가려진 마스크 속에 어떤 상반된 감정이 숨겨져 있을지 몰라 어떨 때는 약간의 공포심 같은 것도 느끼게 한다.

성경에 보면 눈은 곧 마음 혹은 영혼의 등불이라고 한다. 그만큼 눈과 그 눈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시선은 인간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나 개인적이고 고유한 가치를 지닌 시선이 독자성을 지니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조종되고 영향을 받는 것은 너무나 큰 비극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우위를 점하고 누군가는 지배를 받는 종속관계가 만들어진다. 평등과 존중이 시선에서 배재된 사회,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기만 할 뿐 배려는 없는 사회에 가득찬 비뚤어진 시선들을 어떻게 해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그것조차 누군가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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