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과잉 사회 -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정인규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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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모호하다고 인정하는 ‘시선’이라는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네이버사전에서 ‘시선’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본다. 단어의 어감만으로 이미 뜻을 파악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굳이 옮겨보자면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을 의미하는 말이다. 거기에 하나의 의미가 더 추가되어 있다. 그것은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물리적인 의미와 정신적인 의미가 있고, 이 둘이 혼합된 형태로 우리 삶에 구현되는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당신의 생각이 정말 당신 자신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 자기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사람마다 생각의 수준이 다 다르다. 그리고 문화적, 환경적 요인으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정한 경향을 타고난다. 그렇지 않다면 소위 말하는 ‘문화권’ 같은 개념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시선’이라는 개념도 앞서 살펴본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보고 어떤 의견을 가지거나, 누군가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도 우리 스스로의 주관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누군가의 의도 혹은 문화적 영향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기술로 인해 연결의 밀도는 높아졌지만 소통의 밀도는 현저하게 옅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빈약한 토론문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 대 인간의 대화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간 대 인간의 대화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타협하거나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나 토론은 그런 것 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의 주제인 시선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이 드러난다. 서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또한 자기만의 편견이나 학습된 선입견으로 일관한다.

저자는 시선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선의 자유는 곧 자기형성과 정체성의 자유이며, 해석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는 학습된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학습한 데서 비롯된 깨달음으로만 가능하다. 이렇게 형성된 주관은 상상력과 함께 상대에 대한 존중도 겸비하게 된다.

시선의 변형을 다룬 부분도 눈길을 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눈밖에 볼 수 없는 세상을 경험했는데, 사실 이것이 색다른 경험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이라는 필터를 통해 가면을 쓴 수많은 얼굴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상에서 우연찮게도 마스크 쓴 얼굴이라는 형태로 재현된 것일 뿐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은 힘들다. 자기 개성보다는 흉내 낸 가짜 개성이 정체성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눈길만 남은 시선의 형태는 가려진 마스크 속에 어떤 상반된 감정이 숨겨져 있을지 몰라 어떨 때는 약간의 공포심 같은 것도 느끼게 한다.

성경에 보면 눈은 곧 마음 혹은 영혼의 등불이라고 한다. 그만큼 눈과 그 눈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시선은 인간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나 개인적이고 고유한 가치를 지닌 시선이 독자성을 지니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조종되고 영향을 받는 것은 너무나 큰 비극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우위를 점하고 누군가는 지배를 받는 종속관계가 만들어진다. 평등과 존중이 시선에서 배재된 사회,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기만 할 뿐 배려는 없는 사회에 가득찬 비뚤어진 시선들을 어떻게 해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그것조차 누군가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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