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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ㅣ 찾아 읽는 우리 옛이야기 8
허균 지음, 강민경 엮음, 이용규 그림 / 대교출판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홍길동의 이름 석자를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의 기막힌 설움도 홍길동 덕분에 널리 회자되었을 것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축지법과 둔갑술의 달인 홍길동. 그런데 내가 홍길동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 짧은 이야기나 국어 시간에 고전문학의 일부로 접했을 뿐인 것 같다. 이 참에 대교에서 나온 홍길동전을 붙잡고 읽어볼 기회가 생겼으니 잘되었다 싶다.
이 책은 시작부터 재미나다. 진귀한 용꿈을 꾼 승상 어르신. 이 멋진 꿈이 태몽이라고 생각하여 안방 마님에게 갔으나 한낮에 무슨 점잖지 못한 짓이냐며 퇴박을 맞는다. 그러다 밥상을 들고 온 참한 노비 춘섬과 인연을 맺고 낳은 아이가 바로 홍길동! 원래 이런 서두였을까? 정확히 알 길은 없으나 시작부터 흥미진진한(!) 이야기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고정관념과는 달리 홍길동 모자와 본처와 형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첩 초란의 계략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놀라운 괴력을 가진 홍길동은 자신을 해하려한 두 사람을 죽이고 먼 길을 떠난다. 그리고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되고, 전국 방방곡곡에 의적 우두머리로 이름을 날리며, 우여곡절 끝에 병조판서가 되어 나라를 위해 싸우며, 마침내 따르는 무리를 데리고 조선을 떠나 율도국의 왕이 되는 홍길동. 과연 용꿈은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집을 떠난 후 펼쳐지는 홍길동의 삶은 모두 일사천리로 성공적이었고 해피엔딩의 연속이었다. 홍길동을 잡겠다고 온 나라에서 덤벼들었지만 잡히지 않았고, 도리어 그의 소원대로 병조판서에 제수되기까지 한다. 사람들을 이끌고 섬에 들어가 그들을 통치하고 율도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도 모든 일은 잘 된다. 해마다 풍년이고, 사람들은 행복하고... 과연 이런 운좋은 사람과 만사형통의 사회가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매우 현실성이 없는 이 책은, 그렇기에 당시 백성들의 절절한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일까?
또한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홍길동은 충과 효를 매우 중시했다는 것이다. 임금께 반역할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고, 탐관오리와 부자의 금고를 털었던 것은 나라를 위한 일이다. 병조판서가 된 후에는 외적과 싸워 나라를 튼튼히 했다. 이 얼마나 충성된 백성이란 말인가! 또한 서자인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비관했지만 아버지에게 극진하였고, 큰어머니 심지어 자신으로 하여금 집을 떠나게 만드는 또 다른 어머니 초란에 대해서도 어머니로 인정하였다.
바로 이 대목에서 떠오른 것. 홍길동전의 저자가 과연 허균이 맞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충효의 윤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홍길동으로 보아 저자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점에서 허균에게 한 표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홍길동이 구한 세 처녀를 각각 처와 첩으로 삼은 것도 양반사회 속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홍길동이 다스린 나라가 보이는 공산주의적 양태는 상당히 급진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연이은 궁금증. 그 나라는 계속해서 해마다 풍년이고 사람들은 행복했을까? 홍길동이라는 대단한 인물이 사라져도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홍길동전 속에는 조선시대에 경험한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백성들이 열망한 새로운 이상향이 잘 나타나있다. 여기에다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영웅을 기다리는 소망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홍길동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 지금 상황에서도 홍길동전은 매우 급진적이고 여러 의미를 담은 소설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홍길동의 이름 석자와 몇가지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