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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사기꾼 -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거짓 신화를 창조한 사람들
하인리히 찬클 지음, 김현정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합본절판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최근의 이슈, 황우석 사건이 오버랩되면서 흥미롭게 읽었다. 의학, 교육학, 심리학, 인류학, 고고학 등의 분야에서 소위 지식인의 탈을 쓰고 저질러진 다양한 사기 행각을 만날 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프로이드, 슐리만은 물론이고, 몇년전 떠들썩했던 일본 고고학계의 사기꾼 후지무라 신이치의 사례도 들어있다.
교육학에서 거론된 사례로는 지능 검사와 지능 연구가 주목된다. 지능에 관한 반박은 흔한 것이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지능 검사 도구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과연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유전적 요소냐 환경적 요소냐를 연구하는데 주로 거론되는 쌍둥이 연구가 조작되는 사례는 정말 놀랍다. 또한 마거릿 미드가 사모아 섬에서 수행한 소녀 대상의 인류학적 연구가, 역시 같은 인류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딸의 표현에 따르면 '문학적 상상력이 높았다'고 지적되는 것처럼, 전혀 엉뚱한 상상력의 결말이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사실 그것은 현장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연구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뚜렷한 이론적 견해에 기반한 것이기 쉽다. 연구자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이고, 현장을 빌어 자신의 이론을 입증한 것 뿐이다.
사회과학에 한정해 말한다면, 사회과학의 여러 연구들이 얼마든지 데이터를 조작하고 통계 처리 결과를 왜곡하여 의도된 연구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또한 계량적 연구 뿐만 아니라 질적 연구, 예컨대 마거릿 미드가 수행한 사모아 섬 연구와 같은 연구들도 얼마든지 연구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방법이 분명 잘못되었다는 것은 연구자라면 다들 아는 바가 아닌가? 연구자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연구 윤리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학자들은 결코 연구자라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사기꾼일 뿐이다. 고의든 타의든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것에서부터 전혀 연구하지 않은 경우에 이르기까지... 학자로서의 '양심'은 학자로서의 '명성'을 향한 끝없는 질주, 때로는 개인적 '망상'에 가려진 듯 하다. 안타까운 점은, 최근 학계의 경향이 이러한 명성과 망상을 부채질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1년에 몇편의 연구논문을 내야만 대학의 교수로 임용이 되고 재계약의 조건이 되는 현재의 구조는 엉터리 연구 성과를 쏟아내고 남의 논문에 허위로 이름을 올리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연구의 질적 수준보다 연구의 계량적 수치에 관심이 많은 오늘날의 세태는 연구자보다 사기꾼을 양산에 기여할 수 밖에 없다. 연구자의 자질 문제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책을 읽고 나서, 혹시 '아마추어' 연구가일수록 사기꾼으로 갈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소위 학문의 '정도'를 걷지 않은 사기꾼의 사례가 책에서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는 문제다. 또 하나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저자는 이 많은 개별의 사례들을 일일이, 정확히 연구해서 거짓 없이 글을 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