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나오는데, 서늘해진 공기가 신선하다고 어른 수녀님 한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맞아요 수녀님, 하고 대답하며 아 정말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많이들 말씀하시죠. 그래서 저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목은 "나가사키의 노래"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나가사키에 살던 의사 나가이 다카시의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한 마디로 요약하기엔 일본 가톨릭의 역사와 나가이 다카시 집안의 이야기 등 곁들여진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빠른 흐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현실주의적이고 종교에 비판적이던 나가이 다카시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어떻게 신앙에 눈뜨게 되는지, 자랑스럽게 여겨 오던 일본 전통 문화와 새롭게 발견한 진리인 가톨릭 신앙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그가 선택하게 된 가톨릭은 일본에서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전쟁을 치르고 있던 일본의 현실 속에서 나가이 다카시는 평화를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그가 살던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사랑하는 부인과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그 역시 원폭 후유증으로 남은 일생 동안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현실에 감사하며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글을 쓰며 여생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서 참된 신앙인의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 크게 와 닿았던 것은, 하숙생이었던 나가이 다카시에게 마음을 다해 보여주는 미도리 가족의 정성과 친절이 그에게 가톨릭 신자의 좋은 모범이 되어 주었고, 마침내 그를 신앙의 길로 인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의 말이나 행동이 누구에게 얼마나 기쁨을 주었는지 또는 상처를 남겼는지, 나는 신앙인으로서 바른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해 준 부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미도리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에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가 드렸던 기도 역시 저의 신앙의 자세를 반성하게 해 준 부분이었습니다. 본문을 조금 보면 이렇습니다.
비록 구슬은 모두 녹아버렸지만 줄과 십자가는 흔적이 남아 있어 그것이 아내가 자주 손가락으로 굴리며 기도하던 묵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흐느끼며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게 가장 소중하신 하느님, 아내가 기도하면서 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통의 어머니시여, 죽는 순간까지 신실한 아내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210)
그 엄청난 고통의 순간에 아내가 기도하면서 죽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라는 성경 구절이 있긴 하지만, 저에게 불편한 현실이 다가올 경우 금방 투덜거리고 마는데, 그가 드린 감사기도는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으시는 분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고, 하느님을 믿지 않으시는 분에게도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나가이 다카시의 일생이 감동적으로 다가갈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