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行 야간열차 문학과지성 시인선 34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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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이미지와 정서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조화시키는가 하는 것은 시를 읽을 때마다 늘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황인숙 시집 <리스본行 야간열차>에서 보여주는 도시적 이미지와 도시 정서간의 융합은 독자에게 도시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시인은 도시적 이미지를 주로 도시 고양이들로 만들어낸다. <리스본行 야간열차>에서 고양이가 중요한 도시적 이미지로 등장하는 시는 모두 12편이다. 이정도면 도시 고양이 연작시라 할 만하다.


 이 도시의 고양이들은 시인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제3자가 아니라 시인 자신의 눈을 대신한 관찰자로 기능하기도 하고, 삭막한 곳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연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황인숙이 그리는 도시고양이들은 도시에 인간 말고도 고양이들의 세계가 있음을 증명하는 존재이다.

 

 도둑 고양이, 길고양이, 골목고양이,
 노숙묘라고도 하지요.
 ‘커다란 고양이와 어린 고양이가
 말라비틀어진 닭 뼈다귀를 두고
 사투를 벌이는 곳에서 삽니다.
 어떤 사람은 침을 뱉고 발로 찹니다.
 시끄럽다, 더럽다, 무섭다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느 편이 진짜 그런지)
 굶주린 고양이한테 약 섞은 밥을 줍니다.
 엄마고양이를 쫓아버리고,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들을
 쥐 잡는 끈끈이로 둘둘 말아 내버리기도 합니다.
  

 

                  ~중략~

 

 잔인하고 무정한 이 거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들.

 고양이들이 사라진 동네는
 사람의 영혼이 텅 빈 동네입니다.
 이만저만 조용한 게 아니겠지요.
 그러면, 좋을까요?
                                                                            -<고양이를 부탁해> 부분

 

 고양이들은 말라비틀어진 닭 뼈다귀를 놓고 사투를 벌여야 하고 약을 먹이고 쥐 잡는 끈끈이로 자신들을 없애려는 인간들과도 싸워야 한다. 시인은 고양이들이 사는 공간과 인간이 사는 공간의 겹침을 포착해내고 고양이들이 사라진 공간에 사는 사람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자문해 본다.

 

 귀찮고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도시인들의 영혼 깊숙이 자리 잡은 고양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고양이가 없는 도시는 황폐하다. 시인은 사람이 아닌 고양이로부터 황폐한 도시생활에 대한 위안을 얻는다.

 

저 空中空簡의 활용자인 고양이들
고양이의 몸 안에서 뻗치는 기운이
고양이를 위로위로 올려 보내서
광활한 이 영토를 발견하게 했으리라


                  ~중략~


말하자면 기우뚱함에, 그리고 지붕과 지붕 사이의
허공에 너희는 환장을 하지


                  ~중략~


뒤안길도 사라진 이 도시에서
지붕 위의 뒤안길, 말하자면 위안길에
살풋 호흡을 얹어본다.
                                                                                -<지붕 위에서> 부분

 

 고양이들은 인간과 삶의 영역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근원적 삶의 공간은 인간의 몸이 닿지 않는 “저 空中空簡”의 광대한 3차원이다. 이제 도시에는 작고 포근한 인간의 뒤안길은 사라지고 지붕위의 고양이가 다니는 뒤안길만 남았다. 고양이의 뒤안길은 시인에게 우리에게 위안길이 된다.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상상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우리 도시인들의 위안이자 상상의 원천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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