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분자
프랜시스 크릭 지음, 이성호 옮김 / 궁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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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왓슨과 함께 1953년 인간 DNA구조가 이중나선임을 규명한 생명공학자 가 바로 프랜시스 크릭이다. 사실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이라는 책은 좀 실망이었다. <이중 나선>은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구조를 규명해 나가는 과 정을 그린 책인데 병원 입원 기간 중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읽은 책이라서 그런지 내용도 머리에 별로 남지 않고 특별한 감흥도 없었다. 다만, 이 책에서 계속 언급 되는 왓슨의 연구동반자 프랜시스 크릭과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두 인물에 대한 호기심은 잊혀지지 않았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X선 회절연구로 DNA 구조규명에 공헌한 여성물리학자로서 요절하였고 프랜시스 크릭은 DNA구조 규명이후에도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다 지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에서 프랜시스 크릭은 늘 활달하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으며 때로는 괴팍한 성품의 소유자로 묘사되어 있는데 크릭의 저서<인간과 분자>에서도 크릭의 그러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인간과 분자>는 지난 2010년에 궁리출판사에서 이성호씨에 의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궁리출판사에서 나온 과학책들은 모두 믿을만하고 특히 번역이 훌륭하다. 상업성이 떨어지는 이런 책들을 열심히 만드는 이런 출판사들이 있어 행복하다.

 

<인간과 분자>는 프랑스의 생화학자 자크모노의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을 떠오르게 한다. 둘 다 생기론(生氣論:생명현상의 발현이 비물질적인 생명력이며 자연법칙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원리에 지배되고 있다고 보는 이론)에 반대하고 생기론을 타파하기 위한 논의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과 필연>을 읽은 사람이라면 프랜시스 크릭의<인간과 분자>가 마치<우연과 필연>의 축약본처럼 느껴질 정도로 두 책의 내용과 관점은 거의 흡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현상을 이 우주와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인 물리, 화학현상과 구분되는 독특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위에서 말한 생기론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생명현상을 “생명의 신비”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비가 바로 생기론의 핵심인 셈이다. 인간의 의지와 자연법칙을 뛰어넘어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현상에

“신비” 현상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프랜시스 크릭은 이 책에서 주장한다. 우리가 신비한 현상이라 부르는 것들은 다만 아직까지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마땅한 이론과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또 이미 생명현상분야에서 우리가 모르는 것이 또 무엇이냐며 크릭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인다.

 

 크릭의 이러한 자신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양자물리학과 분자생물학의 성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 크릭은 당시의 양자역학과 생화학 지식이 이 책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반생기론적인 생물학의 확실성의 기반을 제공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당시의 생물학, 화학의 이론적 기반이 언젠가는 다소 부정확한 것으로 드러날 수 도 있지만 과학자들은 그러한 가능성에 얽매이지 않음에 주목하라고 한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느껴지기도 하는 대목이지만 과학적 방법에 회의를 가졌다면 오늘날의 현대문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크릭의 주장이 일개 생물학자의 기고만장한 과학예찬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크릭은 물리학과 화학에 대한 현재 우리의 지식이 이 세계를 바라보는 대단히 견고한 기반으로 작용하는데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다. 과학적 지식이 아니었다면 종교적 세계관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자신감은 충분한 근거가 있고 억지스럽지 않다.

 

 

 크릭은 사람들이 생기론적 세계관을 원하는 이유로 생명현상에서 관찰되는 고도로 복잡한 패턴이나 현상들이 인간의 직관과 이성으로 아직까지 잘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무기물에서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러한 믿음은 이미 오래전에 실험으로 반증되었다. 무기물로 유기분자의 합성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고집스런 일부 종교인들은 여전히 인간들을 신의 피조물로 여기는 확고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크릭은 이러한 믿음이 엄연한 실재적 지식인 물리, 화학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고 이 종교적 도그마를 깨부수는 작업을 당시의 분자생물학적 연구 성과에 기대어 진행한다. 생명현상에서 분자생물학이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생명현상에서 생기론이 자리 잡을 곳은 전혀 없다는 그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자연선택과 진화론이 우리의 새로운 문명의 기초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크릭의 주장은 단호하고 명쾌하다. 크릭은 생기론은 죽겠지만 그 유령은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생기론의 유령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것 같다. 크릭이 타파하고 싶었던 것은 생기론과 이와 관련된 기독교 사상의 일부였고 그는 공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에도 반대했다. 물론 나도 크릭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과학적 방법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절대적으로 배제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학이 또 다른 종교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2011년 7월 1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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